사법부가 위기다. 법원 재판이 영향을 받고 차질을 빚는다면 대한민국에 정의가 비어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가 대통령 임명권과 국회 동의권이 충돌하며 끝내 낙마했다. 임명동의안 부결은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 이후 35년 만이고 대법원장 공백사태는 1993년 최재호 대법관 권한대행 이후 30년 만이다.

임명동의안 부결로 대법원장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국민의 근심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재판 지연과 졸속 재판 등 심각한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 법원의 캐비넷에 쌓여있는 기존 사건과 새로 증가 추세에 있는 분쟁 사건 수를 고려하면 전반적인 사법시스템 마비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대법원장 공백은 대법원은 물론 법관의 자격을 요구하는 헌법재판소 구성까지 영향을 받는다. 대법원의 사법행정과 법관 인사 등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옴은 물론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년 1월 1일 퇴임을 앞둔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의 후임조차 임명하지 못한다면 대법관 2명의 공석이 더해진다.

현재 안철상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권한대행의 자격으로 대법관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할 수 있는지 법적 권한 여부를 두고 대법원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논란이 논란을 낳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검경 수사권 조정 입법(이른바 ‘검수완박’) 이후 수사지연 등 국민 피해와 시름이 깊어지고 있었다. 수사기관에 의해 기소, 처벌되어야 할 사건이 무혐의, 증거없음 등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기소되지 않아야 할 사건이 졸속수사로 기소, 처벌되는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대법원장 공백에 따른 재판 지연과 졸속 재판까지 더해진다면 국민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여기에 그치면 다행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신뢰 훼손이다. 사법부의 위상이 떨어져 법관을 믿지 못하고 재판과정과 결과를 믿지 못한다면 누가 재판 결과에 승복하겠는가. 누가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겠는가. 온 국민이 끝없는 분쟁으로 고통 받을 것이 명백하다.

정부와 국회의 정치 다툼에 왜 국민이 재판 지연, 졸속 재판 등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 물론 대통령의 임명권과 국회의 동의권이 모두 존중되어야 하므로 어느 한쪽 탓을 하긴 어렵다. 그러나 국민 피해가 눈에 불을 보듯 명확한 만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두고 볼 수는 없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대리하는 법정단체 대한변호사협회가 지체 없이 나서야 하는 이유다.

변호사 회원과 국민의 의견을 듣고 21세기 대한민국의 공정한 재판을 담보하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재판해야 할 사법부의 수장 후보를 적극 발굴, 추천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을 관철할 확고한 의지가 있고, 청렴 공정하면서 정의 관념이 투철하며, 풍부한 법률지식과 행정능력을 가진 후보자를 서둘러 찾아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는 대한변호사협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국민 앞에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아야 한다. 사법부의 위상 확립과 신뢰회복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최후의 보루임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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