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지 변호사
권민지 변호사

추석 연휴에 제주를 여행했다. 어쩌다보니 올해만 4번째인데, 날씨 때문이었다. 날이 맑으면 그 날을 잊지 못해서, 날이 궃으면 그 날이 아쉬워서 돌아갔다. 이번에는 흐리고 개이기를 기막히게 반복하였는데 너무 좋지만도 나쁘지만도 않았다는 점에서, 또한 변화무쌍한 제주의 일기를 제대로 겪었다는 점에서 올해의 마지막 방문으로서는 가장 적절한 날씨였다고 느꼈다.

제주를 자주 찾을수록 낯익은 장소가 늘어갔다. 그리고 낯익은 장소에 더욱 자주 찾아갔다. 좋은 줄 알면서도 지나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었다. 중산간 지대의 삼나무 숲들, 구좌의 작은 마을들을 품은 해맞이 해안로, 구불구불한 고갯길 아래로 펼쳐지는 대평리의 전경… 제주살이를 몇 번이고 생각하게 만드는 풍경들이다.

다만, 여행은 낯선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동선을 그릴 때는 항상 새로운 장소를 중심에 두었다. 이번에는 한남시험림(국립산림과학원 산하 연구소에서 연구 목적으로 조성, 관리하는 숲), 대평리 근처 군산오름과 안덕계곡을 처음 돌아보았다. 제주에는 수많은 오름과 숲과 샛길이 있으므로 이후에도 여행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한편, 자주 보더라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풍경도 있다. 이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조망하는 제주 전역. 제주의 가장 수려한 모습이기도 하다. 특색없는 내륙 도로, 평범한 제주시내 주택가 같이 시선을 끌지 못하는 요소들이 상공에서 순식간에 연결되어 전혀 다른 차원의 서사로 변모하는 모습은 항상 감동스럽다. ‘전체’라서 아름답다기 보다는, 전체를 이루어가는 ‘연결’, ‘조화’를 아름답게 느꼈다고 생각한다.

여행과 휴가의 끝은 다시 일상이다. 그렇지만 여행과 일상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늘 출근길 전철이 한강을 건너는 동안 하늘을 뒤덮은 솜털구름떼를 한참 구경했고, 퇴근길에는 새로 찾은 샛길을 걸으면서 석양빛이 건물에 느슨한 음영을 드리우는 장면을 발견했다. 감각은 경험을 일깨우고, 그 경험은 다시 감각을 일깨워줄 것이다. 일상의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섬세하게 알아차리는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

/권민지 변호사
(주)LG헬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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