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화정 아이파크' 부실공사 배상협의 숨은 주역, 최대연 변호사 인터뷰

입주 10개월 전 붕괴사고 발생… "우리 집 지킨다"는 일념으로 비대위 참여

법률가 겸 활동가 역할… 합의안 분석부터 집회, 국회의원실 방문 주도까지

"공사 감리자와 건설사 간 암묵적 합의에 부실공사 계속… 독립성 부여를"

△사진= 권영환 기자)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 내리자 짓다 만 아파트가 덩그러니 놓인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현장에는 'HDC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 IPARK 신축공사'라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붕괴되지 않았다면 '부실시공'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7월 14일 시작된 '전면 철거'는 시공과는 달리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대연(사법시험 51회) 변호사는 지난해 1월 11일, 그의 첫 집인 광주 화정 아이파크가 무너졌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입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최 변호사는 순간 머리 속이 하얘졌다.

"입주 예정일 10개월 전이라 시공이 거의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아파트 붕괴 기사를 카톡으로 보내 별 생각없이 '뭐지' 하다가 자세히 들여다 보니 다름아닌 제 집이었습니다. 너무 당혹스러웠어요. 거기에 여섯 분이나 실종됐다고 하니 더 놀랐고요. 변호사로서 어떻게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국토교통부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사고 건설사고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동바리(임시지지대) 조기 철거로 약화된 콘크리트 강도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2주간 양생(굳힘)을 해야 했지만,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무리한 탓이다. 당시 낮은 기온에 눈까지 오는 날씨가 이어져 콘크리트 강도가 정상적으로 확보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타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국토부 사고조사보고서는 콘크리트 강도를 지적하며 "건물을 짓다가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입주 후에 무너질 수 있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겼다.

"2019~2020년 지어지기 시작한 아파트 상당수는 콘크리트 강도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구심을 받고 있습니다. 시공사 입장에서 당시 인건비가 급격히 올라 다른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도였죠. '순살 아파트'가 철근을 뺀 것처럼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여러 차례 법 개정으로 건축법령상 기준은 엄격해졌지만, 실제 건설 현장은 다릅니다. 규정을 조금 안 지켜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을 공사하는 분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감리와 협의만 하면 철근을 덜 넣어도, 양생을 짧게 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거죠."

처음에는 최 변호사도 현대산업개발(현산)과의 협상에 직접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배우자가 "이건 우리 집"이라고 하는 순간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했으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 우리 집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개인적 욕심 없이 모두에게 더 나은 방향을 고민했습니다. 우리 집을 위해 움직이지만 결국 847세대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그는 입주예정자들이 실질적인 보상을 얻는 데 중점을 뒀다. 초반에는 집단소송을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사람들을 일일이 설득했다. 소송을 진행하면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실익 없는 판결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사람은 "현대산업개발에게 돈 받아서 이렇게 설득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최 변호사가 자비를 써가며 활동하는 등 사리사욕 없는 모습을 보이고, 협상도 긍정적으로 진행되자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시공사에 가압류를 걸거나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법률자문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업무를 하면 변호사로서 일한 티는 더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송 때문에 오히려 사건이 망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법적 분쟁이 시작되면 공사는 그대로 멈춰서서 몇 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승소하더라도 이러한 손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최대연 변호사가 주도했던 집회 모습 (사진: 최대연 변호사 제공)
△ 최대연 변호사가 주도했던 집회 모습 (사진: 최대연 변호사 제공)

현산과의 협상에서 그의 역할은 법률가에 그치지 않았다. '활동가'로서 역할도 톡톡히 수행했다. 비대위 내부의 건설 등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현산이 제시한 합의안을 분석하고, 향후 방향을 설정했다. 그 과정에서 서울시청광장 집회, 국회의원실 항의 방문 등을 주도했다.

"실제로 현산이 내민 대책안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억지로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설득력을 더 얻을 수 있으니까요. 보다 나은 결과를 얻으려면 변호사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여론을 형성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협의 시작 직후 그는 먼저 입주지원배상금과 관련해 현산이 시행사 HDC아이앤콘스의 입주지연배상금 지급의무에 대해 연대 보증을 설 것과, 무너진 2단지뿐 아니라 1단지만을 따로 사용승인(준공)을 받아 입주시킬 수 없도록 광주 서구청에게 동별 사용승인을 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자력으로 배상금을 지원할 여력이 없는 시행사 보다는 자산 규모가 큰 현산의 의무 부담을 강화해 리스크를 최대한 줄였다. 1단지·2단지 입주예정자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 협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현산은 연대보증을 서기로 했다. 광주 서구청도 "현산으로부터 행정소송을 당할 각오를 하겠다"며 동별 사용승인 불가 통보를 내렸고, 현산은 지난해 5월 4일 전면 철거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현산이 제시한 초기 주거지원 대책안은 '이자 놀이' 논란에 휩싸였다. 명목상으로는 주거지원비 1000억 원(무이자 대출)과 중도금 대위변제 금액 1630억 원을 입주예정자에 대한 주거지원 대책으로 마련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용을 검토해보니 대위변제금 이자(약 연5~6%)를 입주예정자에게 부담을 시켜 오히려 입주지연배상금을 당초 예정된 금액의 5분의 1 가량으로 줄어버린 것이다. 나아가 현산이 당시 예정했던 공사기간이 61개월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더라도, 현산은 건설사의 유일한 책임인 입주지연배상금 지급 책임을 사실상 면하게 된다고 입주예정자들은 판단했다.

"당시 국내 상당수 시행사, 시공사에서도 주거지원안 진행 경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대책안이 통과되면 공사 진행 중 예상치 못한 이슈가 발생해 공사기간이 연장될 경우 대위변제 내지 환급 조치를 통해 입주지연배상금 지급 책임을 면하고 공사기간 연장의 리스크를 입주예정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선례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현산은 통보 직후, 2630억 원의 주거지원안을 마련해 마치 각 세대당 3억 3000만 원을 지원해 주는 것처럼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했다. 비대위는 입주예정자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 후속 절차 진행을 일단 멈춰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산은 일방적으로 입주예정자들과 상담해 의향서 접수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면서 대치 국면이 발생했다.

이후 끈질긴 협상과 세 차례에 걸친 상경 집회 끝에 입주예정자들은 현산이 내민 첫 협의안보다 650억 원 가량을 더 받게 됐다. 입주지연배상금을 대위변제에도 불구하고 기납입금액인 계약금에 중도금까지 포함해 받기로 한 것이다. 결국 대위변제로 인한 중도금 이자는 현산이 부담하게 됐고, 가구당 주거지원금은 84㎡ 기준 약 1억 1000만 원(무이자 대출)이 됐다.

△ 전면철거가 진행 중인 광주 화정 아이파크 공사현장 (사진= 권영환 기자)
△ 전면철거가 진행 중인 광주 화정 아이파크 공사현장 (사진= 권영환 기자)

잘 마무리 됐다고 생각한 찰나,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전면 철거'를 약속했던 현산이 올해 7월 언론사를 대상으로 철거계획을 설명하며 상가 부분인 1~3층은 철거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이 들끓자 8월 현산은 '전면 철거'를 하겠다고 결정을 번복했다. 화정 아이파크의 완공 예정일은 2029년 2월이다.

그는 '순살 아파트' 같은 부실시공이 계속되는 이유로 공사 감리자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를 꼽았다.

"건설사에서 돈을 받으면 건설사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엄격하게 감리를 하면 건설사가 좋아하지 않겠죠. 그래서 '국가지정감리제도'가 필요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어야만 소신껏 감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가 법률감리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최 변호사는 앞으로 시공 전 과정을 모두 검토하고, 감리 과정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산이 다시 부실공사라는 우(愚)를 범하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합니다. 다만 앞으로는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반 국민이 관련 지식을 공부하고 대응을 하지 않아도 될 사회 시스템이 조속히 마련되길 바랍니다."

'순살 아파트' 등 부실시공으로 고통을 받는 피해자들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조언이 필요한 경우 자문 역할은 할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집은 대부분 사람들이 평생 구매하는 것 중 가장 비싼 재화입니다. '내가 살 집이 무너졌다'는 고통에 같은 피해자로서 크게 공감합니다. 배상, 철거 등 과정에서 많은 난항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희와 같은 선례를 참고하시고 합당한 보상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임혜령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