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영화 '폭로'로 감독 데뷔한 홍용호 법무법인 원 변호사 인터뷰

첫 장편, 보스턴국제영화제 최고스토리상 수상… 각종영화제 초청

한예종 영상원에서 영화계 본격 입문… 단편영화도 영화제서 수상

"저예산 영화, 설자리 없어… 공적 영화제작지원제도 활성화 해야"

△ 사진=오인애 기자
△ 사진=오인애 기자

장편영화 '폭로(2023)'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 홍용호(사법시험 34회) 법무법인 원 변호사를 만나러 서초동 변호사회관을 찾았다. 서리풀홀 한 켠에서 다이어리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고 있는 그를 마주했다. 무엇을 쓰고 있었는지 묻자 "요즘 쓰고 있는 시나리오 관련 메모"라고 답했다. 이미 반쯤 쓴 빽빽한 다이어리에서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홍 변호사는 첫 장편 데뷔작부터 영화계 주목을 받았다. 2023 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스토리상을 수상하고, 2023 벵갈루루국제영화제, 2022 전주국제영화제, 2022 인도국제영화제 등에도 초청됐다.

"영화 완성 후 처음 참석한 영화제가 전주국제영화제였습니다. 초청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계속해서 영화를 개봉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 등 여파로 극장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개봉을 기다리면서 다른 영화제들에 계속 출품을 했습니다. 규모가 큰 인도국제영화제에서의 경험도 좋았고, 상을 받은 보스턴국제영화제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단번에 이런 성과를 얻은 건 아니다. 그는 진지하게 영화 세계에 입문하고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가 기초부터 다졌다.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도 쌓았다. 단편영화 '배심원들' 연출을 맡았고, 상업영화 '증인' ,'침묵' 등의 시나리오 각색을 맡았다. '배심원들'은 2019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 대상, 2019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8년 넘게 영화계에 한발 한발 다가선 홍 변호사에게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영화라는 세계에 조금씩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했다. 

"이야기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과정 자체에 쾌감을 느꼈고요. 머리 속에서 구상한대로 세계를 만들고, 인물을 표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원초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창작하는 재미도 있고요. 배우들과는 시나리오를 두고 꾸준히 의견을 나눕니다. 이번 작품 '폭로'에서도 배우들이 마지막 증인의 증언 장면을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잘 표현해준 사실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 홍용호 변호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19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영화 '폭로' 시사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오인애 기자)
△ 홍용호 변호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19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영화 '폭로' 시사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오인애 기자)

그는 영화 '폭로' 제작을 할 때 현실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변호사인 만큼 법정 영화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싶은 욕심과, 감독으로서 관객의 흥미를 끌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느낌으로만 법정 영화를 연출하면 지루해지기 쉽습니다. 주로 실내에서 대사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굉장히 정적이거든요. 아무리 이야기가 좋고 의미 있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긴장감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과제였죠."

그는 대사 하나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마지막에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내레이션을 담았다. "나한테 중요한 건 사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진실을 지키는 것이다(영화 '폭로' 중)."

"우리는 영화에서 변호사 정민(강민혁 분)의 눈으로 상황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스토리는 피고인인 윤아(유다인 분)가 중심이죠. 그래서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에 정민의 심정을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젊은 변호사인 정민이 일을 하면서 객관적인 '사실'을 밝히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가치 판단이 가미된 '진실'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변호사업을 하면서 막상 이런 드라마틱한 사건은 겪지 못했지만요(웃음)."

법정 영화뿐 아니라 '인생'을 담은 영화를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으로는 '박하사탕' '오아시스' '초록물고기' 등을 만든 이창동 감독과 '하나 그리고 둘' 등을 만든 에드워드 양 감독을 꼽았다.

"막연한 얘기지만,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처럼요. 이제 제 이야기를 조금씩 형성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다음의 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갈 겁니다 ."

△ 촬영장 한 켠에서 영상을 모니터 하고 있는 홍용호 변호사의 모습(사진: 홍용호 변호사 제공)
△ 촬영장 한 켠에서 영상을 모니터 하고 있는 홍용호 변호사의 모습(사진: 홍용호 변호사 제공)

우리나라 영화계에 필요한 제도나 정책이 있냐고 묻자, 영화계에 대한 공적인 지원제도가 계속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경제적 곤란을 겪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사려 깊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적절한 영화 제작 지원 제도가 있어야 영화인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OTT 흥행 등으로 인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국민이 줄어들면서, 예산 10억 이하 '저예산 영화'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계를 더 힘들게 하는 '불법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는 당연히 근절돼야 하고요."

영화계에 입문하고 싶어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자, "아직 무슨 조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 쪽은 결국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겠다는 열정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어느 순간까지는 생업과 영화 사이에서 타협이 가능하겠지만, 결국 한 쪽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그런 기로에 서 있는 셈이고요.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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