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변호사
김광현 변호사

제21대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발의 법률안의 숫자다. 9월 초, 제21대 국회의 의원발의 법률안 수는 21805건으로 이미 제20대 국회의 그것을 넘어섰다. 물론 법률안을 발의한다고 하여 모두 통과되는 것은 아니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부 제출 법률안이 의원제출 법률안보다 많았던 때도 있었다. 이를 고려하면 분명 반길만한 일이다. 다만 법전의 한 구석에는 여전히 정리해야 할 몇몇 조항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법에도 청소가 필요하지만, 청소는 언제나 힘들고 꺼려지는 일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2015년 2월 26일, 배우자 있는 자의 간통행위 및 상간행위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제241조가 위헌임을 확인하였다. 「형법」 제241조가 있었던 자리에는 '삭제'라는 짤막한 글자만이 남았다. 그로부터 8년 여가 지났으나, 여전히 「형사소송법」 제229조는 「형법」 제241조를 잊지 못했다.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가 아니면 간통죄로 고소할 수는 없다고 외치고 있다. 물론 이 조항이 계속 법전 한 구석에 있다한들 우리네 삶이 달라질 것은 없다. 간통죄가 사라졌으니 간통죄 관련 형사절차의 특칙 또한 적용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을 볼 때마다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모습이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고, 새로운 10년이 지나도 여기 외롭게 있을 것만 같아서.

긴가민가 싶은 조항도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의2제1항은 19세 이상의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아동·청소년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를 처벌한다. 과거 「형법」상 미성년자 의제 조항 대상 연령이 13세 미만이었으니 청소년의 성보호를 위해 분명 의미있는 조항이었다. 그러나 2020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19세 이상의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사람에게 간음을 한 경우 같은 처벌이 가능하게 되었다. 궁박한 상태도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법」의 사정이라 생각했는지 「청소년성보호법」은 제8조의2제1항을 그대로 두고 있다. 물론 적용 범위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청소년성보호법」에는 「형법」과 다른 여러 특칙들이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궁박한 상황에 처했었는지를 확인해서 달리 취급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법을 청소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삭제와 정비를 통해 법체계상의 혼란을 막는 것 또한 국회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시간이 들고, 번거로워도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청소다. 다만,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복잡한 대청소를 가끔 하기보다는 어지러워진 부분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는 상시적인 시스템의 마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치울 것도 눈에 띈다.

/김광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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