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겸 변호사'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대표변호사 인터뷰

대학교 마지막 학기, 수화동아리서 장애인 법률지원 의지 다져

법구공 8년 근무… 수사입회 개입 불가 등 한계 느껴 개업 선택

사건 영향력, 자력구제 가능여부 등 따져 프로보노 사건 수임

"고 김홍영 검사사건, 논리 아닌 힘으로 돌아가는 검찰에 충격"

"소송비용 패소자 부담원칙, 공익소송 걸림돌로 작용… 개선을"

△ 사진=권영환 기자 
△ 사진=권영환 기자 

"딱 난리를 친 만큼 변화가 일어납니다. 조용히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언론의 관심을 받는 사건과 아닌 사건이 똑같이 논리에 따라 진행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최정규(사법시험 42회) 법무법인 원곡 대표변호사는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유령 대리 수술 사건, 고(故) 김홍영 검사 사망 사건 등 굵직한 공익소송을 맡아온 '활동가 겸 변호사'다.

시작은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들어간 수화동아리였다. 일주일 중 이틀은 수화를 배우고, 이틀은 인근 복지관에서 중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또 하루는 특수학교를 방문해 직접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했다.

"대학 생활 끝무렵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포부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으니, 문득 수화를 배워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수화가 세계공용어인 줄 알았거든요(웃음). 월화수목금 정말 알차게 수화 공부를 하면서 보냈어요. 사법시험 2차 합격 발표가 났던 날까지도 특수학교 아이들을 만나러 갈 정도였죠."

수화 활동은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구체적 생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후에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장애우대학을 수료하는 등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재 그는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비상근)을 맡아 장애인 인권 옹호에 힘쓰고 있다.

본격적인 공익변호사로서의 출발점은 대한법률구조공단이었다. 공익법무관으로 2년, 안산출장소에서 3년, 서울중앙지부에서 3년을 보냈다. 하지만 소송 외의 영역에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데 한계를 느껴 개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공단에서 동시에 200건 내외의 소송을 맡아 처리한 경험은 '홀로서기'에 큰 자양분이 됐다.

"공단에서는 소송 진행조차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분들이 많았습니다. 임금체불소송을 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서 체불금품확인원을 받는 과정부터 지난한 싸움을 겪게 됩니다. 연장근로수당을 받기 위해 초과근로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형사사건도 수사단계에서는 개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변호사가 정말 필요한 시기인데도, 공단 변호사로서는 한계가 있었죠.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공단을) 퇴사하게 됐습니다."

제1회 홍남순 인권상을 수상한 최정규 변호사(사진: 최정규 변호사 제공)
제1회 홍남순 인권상을 수상한 최정규 변호사(사진: 최정규 변호사 제공)

개업 후에는 차분하게 저변을 넓혔다. 장애인과 이주노동자만 돕기에 프로보노(Pro Bono)는 과한 '블루오션'이었다. 이에 법무법인 원곡에서는 사건결과가 당사자 권리 구제를 넘어 사회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또 자력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는지 등의 기준에 따라 프로보노 사건을 맡는다. 이렇게 꾸준히 활동한 덕에 2020년에는 광주지방변호사회가 수여한 '제1회 홍남순 변호사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간의 이미지처럼 공익사건을 '무료'로 수행하는 건 아니다. 보통은 성공보수를 약정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맡는다. 수임료를 지급할 자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착수금을 받는다. 약자를 돕기 위해서는 로펌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익사건을 구체적으로 몇 %만 맡는다거나 하는 기준은 없습니다. 하지만 찾아오는 모든 약자 사건을 맡지는 않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맡은 사건을 제대로 마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사건을 맡고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수임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으로는 '고(故) 김홍영 검사 사망 사건'을 꼽았다. 법이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게 한 계기였다고 했다. 이 사건을 겪고 '얼굴 없는 검사들(블랙피쉬 刊)'도 저술했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죽음은 그냥 묻히는 게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었습니다. 사건 발생 후 3년이 지나 변협이 고발하고 저희가 검찰 수사심의원회에 소집 요청을 하니 언론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제서야 기소가 되고,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이게 진짜 힘이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에 씁쓸했습니다. 그간 군에서 사망한 장병,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회사원이나 공무원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건이 조용히 묻혔을지 모르겠습니다."

공익소송이 활성화 되기 힘든 이유로는 '소송비용 패소자 부담 원칙'을 꼽았다. 그가 맡았던 '신안 염전 노예 사건'도 법원이 1심에서 8명 중 7명의 배상청구를 기각하면서, 피해자들은 신안군청이 지출한 변호사 비용 등을 부담하라는 결정을 받기도 했다.

"최근 이주노동자 소송에서 '일부승소'를 했습니다. 당연히 항소를 하고 싶었지만 의뢰인분들은 소송비용이 부담돼 포기하셨습니다. 항소심에서 지면 1심에서 인정 받은 금액 대부분을 상대방에게 변호사비용으로 줘야 하니까요. 정치적인 법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만 정말 서민에게 필요한 법은 입법에 동력이 붙지 않습니다. 공익소송 개념이 추상적인 면이 있지만, 판례를 통해 그 개념은 충분히 구체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변호사는 우리나라에 프로보노가 활성화 되려면 프로보노 활동 지원뿐 아니라 변호사에 대한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익사건을 맡다 보면 날카로운 말들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머리로는 '오죽하면 같은 편인 나에게도 이럴까'하면서도 마음은 힘이 듭니다. 직접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것처럼 변호사는 '대리 외상 증후군'을 겪기도 합니다. 간접외상도 지속적으로 치료와 상담을 받아야 하죠. 대부분 변호사가 상담 기법은 전혀 배우지 않은 상태로 업무에 뛰어들어 상담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등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뢰인 전화를 받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것부터 위험신호입니다."

그는 대한변협 프로보노지원센터장으로서 더 많은 변호사들이 더 건강하게 프로보노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이시정(사시 51회) 대한변협 제2인권이사, 프로보노지원센터운영위원들과 함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사진=권영환 기자 
△ 사진=권영환 기자 

최 변호사는 프로보노 활동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변호사들에게 "내가 해온 일과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용기있게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공익소송이라고 해서 평소 하는 송무와는 또다른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겁니다. 다만 그 사건 의뢰인이 정말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운 약자일 뿐입니다. 특별히 어떤 스킬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대부분 영업비밀은 숨기는 분위기지만, 프로보노는 서로 같이 하기 위해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매뉴얼도 만들어놨습니다. 프로보노를 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사건은 어디에나 널려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지식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으면 자존감도 높아질 겁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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