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백 변호사
박종백 변호사

블록체인과 AI같은 새로운 기술들은 파괴적 혁신을 가져온다. 그 파괴에는 기존의 직업들을 없애거나 대체하는 효과도 포함한다.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활용으로 인한 일자리의 감소효과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2022년 3월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현재 일자리의 1/4을 대체하고, 특히 EU와 미국의 일자리 3억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가의 다양한 법률자문과 계약서 작성업무도 예외는 아니다. 인공지능이 변호사보다 판례 분석을 더 정교하게 하고, 계약서 작성을 하며, 블록체인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인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한 계약의 체결과 이행으로서의 토큰 이전이 동시에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계속 확산되면 계약을 둘러싼 법률가의 역할도 축소되는 방향으로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법률가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사회, 경제적 현상들을 따라잡기가 힘들 뿐 아니라 그 바탕이 되는 딥러닝, 생성형 인공지능, 블록체인 합의알고리즘, 전자지갑 등등 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회를 구성하는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는 이런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기술과 그에 기초한 현상을 잘 모르게 되면, 법률가로서 그에서 비롯되는 법적 쟁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고, 관련법률업무를 할 기회는 차단된다. 여기서 많은 개별 법률가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나 한 직업인으로서 시대의 새로운 흐름에 뒤쳐질지도 모를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큰 변화들은 현재 우리의 사회, 경제, 정치 제도로 포괄할 수 있는지등의 거대담론과 함께 현재 법체계에서의 법적 논의와 고민을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법의 지배가 확립된 국가사회에 완전히 편입될 수 없다. 매우 포괄적이거나 특정 분야에 국한한 새로운 입법논의를 가져오고 의회의 법률안 심사와 행정부의 규제정립 움직임도 가져온다.

인공지능이나 암호자산을 활용한 서비스나 제품을 판매하려는 사업자들도 법과 규제를 준수하면서 사업성공을 하려는 과정에서 많은 법률자문을 필요로 한다. 신기술 사업자와 이용자간, 규제당국간등 다양한 법률분쟁에 대해서도 기술과 사업구조를 이해하는 법률가를 필요로 한다. 법률가 집단은 그 이전에 없던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는다.

이런 파괴적 변화는 매우 글로벌하고 전 세계에 동시에 확산되는데 어느 나라에서든지 비슷한 법적이슈를 불러온다. 인공지능의 가장 큰 법적과제로 법적 인격을 부여할 것인가와 한다면 어떤 요건하에서 인정할 것인가 부터, 인공지능이 가져다 쓰는 데이터가 타인의 지식재산권이나 개인정보침해할 여지가 없는지와 인공지능의 생성결과물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없는지 등 법적 이슈를 안고 있다.

블록체인기반 암호자산에 대해서는 우선 자금세탁방지, 자본시장이나 금융라이선스, 외국환 규제등이 주로 가시화 되고 있지만 암호자산의 민사법적 지위를 입법과 해석론으로 해결해야 하고, 암호자산의 다양한 기능들을 사회,경제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법체계에 대한 논의와 정비작업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사회에 확산될 때 법률가들보다 기술전문가, 벤처캐피탈 같은 투자자와 사업자들이 먼저 감지하고 참여하며 그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전파한다. 법률가들 중 특히 변호사 집단이 제대로 역할하려면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내는 다른 시장참여자와 시간적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범위에서 기술과 서비스의 구조의 기본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법적 이슈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세상이 필요로 하는 법적 분석을 제공하고 입법론을 제시하는 것은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이 우리 삶 깊숙히 제도화되는 방향은 물론 구체적인 규범을 정립하는데 큰 기여가 된다.

예로써,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활용이 범람하거나 증권형 성격을 갖는 토큰의 무분별한 발행과 투기가 너무 확산되어 현재 질서를 지나치게 흔들기 전에 방지하는 것은 제도적 불확실성을 겪는 공동체에 법률가집단이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나라마다 신기술과 그를 이용한 서비스에 대해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자문하고 법 제,개정논의에 참여하는 정도는 다르다.

법의 지배의 역사가 오래되고, 계약사회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에서 변호사들이 변화의 초기 단계부터 관여하는 정도가 높고 역할이 더 구체적인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법률가들이 비교적 잘 정비된 법 체계하에서 구체적인 법률해석과 분쟁대리를 주로 해왔지만, 앞선 나라에 비해 사후적인 법률분석과 지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기존에 해오던 역할에 추가하여 기술의 혁신이 가져오는 법의 공백과 입법논의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더 많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

입법과 제도수립에 대한 포괄적 논의는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의 알고리즘이 당장 대체하기 힘들다. 다른 나라들의 동향을 살펴보고 법률가들의 상호논의와 교류의 장도 넓혀 나가는 것도 글로벌한 현상에 너무 좁거나 치우진 관점에 빠지지 않는 좋은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박종백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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