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못하게 해준다" 고성·폭언… 결국 접근금지명령 신청

"방화테러 이후 더 늘어난 신변위협… 입법만 기다려선 안돼"

변협, 결의문 발표… "정부·국회, 신변위협 대응시스템 마련을"

△ 최 변호사의 어머니를 찾아간 B씨의 모습
△ 최 변호사의 어머니를 찾아간 B씨의 모습

"왜 사람들이 변호사 사무실에 불 지르는지 알겠다."

전 국민을 경악케 한 '법률사무소 방화테러' 사건이 발생한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변호사에 대한 신변위협은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묻지마 칼부림' 등 잇따른 흉악범죄 이슈를 타고,  협박 수위가 더 높아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에는 여성 변호사의 가족까지 찾아가 위해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대구변회 소속 최 모 변호사는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사건을 수임했다. 의뢰인인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사무실 인근에서 진행 중인 아파트 공사 때문에 영업상 손해를 입었으며 아들인 B씨는 공사 관계자에게 맞았다고 주장했다. 공사중지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사건을 진행하고 있던 도중 부동산 경기 악화로 아파트 공사가 중단됐다. 가처분이 무의미해지자 사건도 그대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패소 시점부터 의뢰인은 돌변했다.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려 했으나 소리를 지르고, 사건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무조건 이기게 하지 않았느냐"며 역정을 내는 것은 물론 "너 잘 살 수 있겠어, 이 대구 바닥에서? 니 낯짝에 똥칠해줄까, 어?" "내 아들이 너 가만히 안 둔단다! 니 진짜 변호사 못 하도록 만들어준단다!" 같은 고성과 폭언이 이어졌다. 이후 휴대전화 메시지로도 협박 문자를 보내오는 등 괴롭힘이 이어졌다.  

△ 최 변호사가 의뢰인 아들(왼쪽)과 의뢰인(가운데, 오른쪽)에게 받은 문자
△ 최 변호사가 의뢰인 아들(왼쪽)과 의뢰인(가운데, 오른쪽)에게 받은 문자

심지어 아들 B씨는 홀로 살고 있는 최 변호사의 어머니도 찾아갔다. B씨는 최 변호사에게 "당신이 우리 어머니 욕 보였으니 나도 똑같이 해주는거야"라는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연락을 받고 최 변호사가 CCTV 영상을 확인하자 180cm에 100kg가 넘는 B씨가 어머니 가까이 서서 손을 올리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최 변호사가 맡고 있던 다른 형사사건은 그대로 진행하기 원했다. 모순적인 상황이었지만 최 변호사는 "또 어머니를 찾아갈까 두려운 마음에, 울며 겨자먹기로 형사사건을 진행했다"고 토로했다.

현재 최 변호사는 A씨 등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신청을 진행 중이다.

최 변호사는 "'변호사를 돈 주고 산다'는 개념이 팽배해지면서 갑질이 늘어나고 이러한 협박까지 늘어나게 됐다"며 "방화테러 당시에는 가해자가 사망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피해자에 대한 애도뿐이었으나, 이제 신변위협 방지를 위해 변호사단체에서 더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온라인에 올린 호소문을 보고 많은 변호사들이 탄원서를 보내는 등 지지해주고 계셔서 큰 힘이 된다"며 "입법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사는 변론주의 원칙에 따라 변호인이 주장하는 범위 안에서만 판단하기 때문에 세상 변화의 시작은 변호사"라며 "법치주의와 법조3륜의 한 축으로서 인식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도 이메일을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법조인 보호를 강화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법무부는 "법치주의 수호 관점에서 변호사에 대한 보복성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답변했다.

 

△ 최 변호사가 법무부 측에서 받은 답변
△ 최 변호사가 법무부 측에서 받은 답변

한편 법조인 신변위협 사례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여성변호사에 대한 공격이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진주에 사는 40대 남성 C씨가 자신의 국선변호를 맡았던 여성변호사 사무실에 기름통을 들고 찾아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약 한 달간의 스토킹 끝에 C씨는 "12시까지 사무실에 오지 않으면 사무실은 불탈 것"이라고 그 변호사에게 문자를 남겼다. 대법원은 최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씨에 대한 징역형을 확정했다.

한 30대 여성변호사는 "방화테러 사건 이후 변호사에 대한 위해가 쉽게 가능하다는 학습이 잘못 이뤄진 것 같다"며 "많은 사람이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는 이야기를 내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법정에서도 '상대방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 불을 지르겠다'고 말하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며 "사무실 직원에게도 '사무실에 찾아가 모두 불질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한 의뢰인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변호사 생명과 신체의 안전과 보호라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지켜지지 않으면 법치주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사건 당사자들로부터 부당한 협박과 위협에 노출되지 않도록 (변호사 테러사건) 가해자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변호사도 "밤새도록 카톡으로 욕을 보내거나 스토킹을 하는 등 위협에 노출된 변호사가 많다"며 "다들 공론화하고 싶어하면서도 계속 변호사업을 하려면 신상이 공개돼 있을 수밖에 없으니 두려워서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1일 열린 '제31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최 변호사 사례를 공유하고, 결의문을 발표했다.

전국변호사들의 총의를 모은 결의문에는 "기본권 보호의 최전선에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변호사들도 신변위협 및 부당한 압수수색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변호사들의 안전을 실효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변호사들이 테러와 폭력행위 등 신변위협에 노출됐을 경우에 대한 즉각 대응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하고 변호사의 안전을 실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라"고 강조했다.

변협이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박태근)와 함께 구성한 '전문인 대상 테러행위 대응 공동협의체'에서도 법조·의료인에 대한 보복범죄를 가중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획취재팀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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