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운영비 빼면 신입 어쏘변호사 월급보다 못한 보수… 기록복사비용도 부담"

월 20~30건 배정… "변론기일 직전 선임, 연락두절 피고인과 상담없이 출석하기도"

법원행정처, 지난해 관련 연구용역 실시… "보수 및 사무실 운영비 증액해야" 결론

김영훈 변협회장 "물가 상승률과 연동해 보수 높이는 방안 필요... 의견 수렴할 것"

△ 서울 지역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오퓨런스 빌딩
△ 서울 지역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오퓨런스 빌딩

위촉을 받아 법원에서 지정하는 사건만 담당하는 국선전담변호사. 2004년 시범 시행된 이 제도는 2005년 11개 지방법원 본원에서 시행됐다. 제도가 전국 지방법원 본원 전체로 확대된 건 이듬해인 2006년이다.

제도 도입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사건은 점차 고도화되고 물가도 크게 상승했지만, 국선전담변호사 보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이들은 법원에서 받는 보수에서 직원 급여와 관리비 등 사무실 운영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열악한 국선전담변호사 처우를 높이고, 업무량을 조절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1년차 어쏘보다 적은 월급... 직원 월급부터 관리비까지 지출"

2006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3100원에서 올해 9620원으로 3배 이상 올랐다. 하지만 국선전담변호사 보수는 전혀 늘지 않았다. 근무경력에 따른 월급 체계만 바뀌었을 뿐이다. 2015년 3월 이전에 위촉자는 국선전담변호사로 2년 미만 근무 시 월 600만 원, 2년 이상 근무 시 월 800만 원을 받았다. 2015년 3월 이후부터는 국선전담변호사로 처음 위촉될 때 월 600만 원, 2년 이상 4년 미만 근무 시 월 700만 원, 4년 이상 근무 시 월 800만 원을 받는다. 이 외에 사무실 운영비로 매월 60만 원이 지급된다.

△ 2011~2024년 최저시급 변동 추이(자료: 최저임금위원회)
△ 2011~2024년 최저시급 변동 추이(자료: 최저임금위원회)

얼핏보면 적지 않은 액수처럼 보이지만 실제 노동 강도와 비용 지출을 고려하면 매우 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직원 월급과 관리비 등 운영 비용 대부분을 월급을 쪼개 변호사가 지출하기 때문이다. 

국선전담변호사가 지출하는 금액은 △직원 월급 △직원 및 본인 4대 보험료 △통신비 △복사기 부품비 △비품비 △종이컵 등 소모품비 △재활용수거비 등 용역비 △건물관리비 △기장료 등이다. 법원 사정에 따라 국선전담변호사가 한 건물에 머물기도 하고, 여러 건물에 나눠 업무를 보기도 한다.

이 중 직원 월급과 소모품비, 세금 등 고정비만 서울 기준 평균 180만 원 가량이 지출된다. 여기에 구치소 등 접견 교통비, 증거기록 복사비 등이 추가로 들어간다. 법원에서 A4용지를 제공하지만 그 양은 턱없이 부족하다.

사무실 책상과 의자는 물론 컴퓨터도 개별 구매다. 수리 등 유지 보수도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직원이 퇴직하면 퇴직금도 지급한다. 반면 변호사는 1년 이상 일해도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국선전담변호사는 "물가가 급격히 상승하고 직원 인건비도 계속 늘고 있는데 국선전담변호사 보수는 계속 제자리니 사실상 보수가 줄어드는 셈"이라며 "구치소에 있는 피고인들에게 판결문, 사건기록, 합의서 양식 등 발송하는 비용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국선전담변호사는 "구치소 방문 때문에 한 달 기름값도 만만치 않게 드는데 연차에 따라 보수에 차등을 두면서 더 힘들어졌다"며 "1년차 보수 600만 원은 정말 적은 금액"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검찰에서 열람복사를 할 때 한 사건당 복사비용이 40만 원 이상 들기도 하는데 기껏 다 복사해놓으면 사선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법원에서는 복사비를 받지 않지만 사무실이나 검찰 등에서 사용하는 토너비용이나 프린터 수리비, 종잇값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3년차 국선전담변호사는 "어쏘 변호사와 비교했을 때 소득이 낮은 건 맞지만 헌법정신을 수호할 수 있다는 사명감에 계속 일을 하고 있다"면서도 "물가는 오르는데 보수는 계속 동결되는 상황에 업무량이 크게 늘어나니 3월부터는 거의 월마다 1명씩 그만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원 월급도 큰 부담이 되는데 국선전담변호사 선임될 때 직원 관리를 포함한 사무실 운영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하며, 실제 업무량도 많아 사무직원을 고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구조"라고 했다.


● "한달에 20개 내외 배당, 하루 8건까지 변론... 집에서도 업무 열중"

업무량도 급증해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선전담변호사는 한 명당 한 달에 사건 20개 내외가 배정된다. 법원 사정에 따라 월 30건까지 배정될 때도 있다. 이때 사건 난이도는 고려되지 않는다. 한 번에 종료되는 사건은 거의 없기 때문에 계속 누적돼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만 1인당 60건~90건 내외다. 재판이 많은 날은 하루에 7~8건 정도 변론을 하기도 한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국선변호인 선정 건수는 2012년 10만 9571건, 2014년 12만 4834건, 2016년 12만 1527건, 2018년 11만 9569건, 2020년 12만 664건 등으로 최근 10년간 평균 건수는 11만 8900건이다. 한 사건당 피고인 수가 2명 이상인 경우도 있어 피고인 수는 그보다 더 많다. 2021년 기준, 형사공판사건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한 피고인 수는 11만 8579명으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한 피고인 8만 9018명보다 월등히 많다.

△ 연도별 국선변호인 선정 건수(표: 사법연감)
△ 연도별 국선변호인 선정 건수(표: 사법연감)

사건 배정 시기도 제각각이다. 심한 경우 사건을 받은 지 3일 만에 재판정에 서야 할 때도 있다. 간혹 국선과 사선을 넘나들며 변호사를 자주 변경하는 사람도 있다.

한 40대 국선전담변호사는 "변론기일 2~3일 전에 사선변호사가 사임하고 국선변호사 선정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특히 피고인이 구속된 상태면 구치소도 가야하는데 갑자기 일정을 내기도 힘들고 전화가 안 되는 불구속 피고인도 꽤 있다"고 했다.

이어 "어쩔 수 없이 사건 내용과 증거기록만 파악하고 변론기일에 처음 만나서 급하게 상담을 하기도 하고 정말 급박한 경우 증거도 제대로 못 보고 들어가기도 한다"며 "피고인이 재판 지연을 위해 의도적으로 급하게 국선변호인을 선임했을 수 있으니 기일 변경은 하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 국선변호인 선정 사건수 및 피고인수(자료: 사법연감)
△ 국선변호인 선정 사건수 및 피고인수(자료: 사법연감)

한 국선전담변호사는 "피고인 수가 수십 명이 되는 사건을 배정 받기도 하는데 이럴 때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며 "그렇게 수십 명에게 연락해서 합의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돈이 없다며 합의를 못한다는 연락이 오면 허탈하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운 피고인이 많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사사건건 트집을 잡거나 폭언을 하는 피고인을 만날 때는 지치기도 한다"며 "법원은 까다로운 피고인을 국선전담변호사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는데, 힘들다고 사임해버리면 다른 국선전담변호사가 이 피고인을 맡게 될 것이 뻔해서 그만두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른 국선전담변호사는 "선정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첫 기일이 오는 경우가 꽤 있다"며 "기본적으로 형량이 높거나 무게감 있는 사건은 법리적으로도 복잡해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는데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반 어쏘 변호사가 사건을 20~30건 맡고 있으면 '사건이 많다'고 하는데 국선전담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배정되는 사건 수가 너무 많아 평일 밤이나 주말에도 집에서 일한다"며 "복잡한 사건일수록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들어가는 비용도 높아져 사건 하나당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 "사무실 운영비 2배로… 물가상승률과 보수인상 연동 필요"

국공선변호사 수당 현실화와 업무량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법원행정처에서도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국선변호사 업무 및 보수에 대한 연구용역사업'을 실시하기도 했다. 연구에는 서울시립대 산학협력단과 대한변협 국공선변호사회가 참여했다.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는 국선전담변호사가 국선변호사건의 최소 3분의 1 이상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월 60만 원의 사무실 운영비가 실비 변상의 전부여서 실제 수령하는 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국선전담변호사의 월 보수는 50만 원~100만 원을 증액하거나 월 적정 사건 수를 현재 수준에서 5건 정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이와 더불어 사무실 운영비를 현재 6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증액해야 실비 변상이 현실화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따라 최근에는 일반국선변호사 보수가 45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오르는 등 변화가 생겼다. 국선전담변호사 보수 100만 원 인상안은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이미 확정됐고, 현재 기획재정부에 상정된 상태다.

한 국선전담변호사는 "내년에 보수 100만 원이 오른다는 소식에 모든 국선전담변호사가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사무실 운영비용 등이 충분하게 충당된다고 보긴 어렵지만 800만 원 상한을 조금이나마 정상화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직원 월급 등 변호사업무에 꼭 필요한 비용만이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조정전담변호사는 직원이나 물품 비용 등을 다 법원에서 제공해서 수당을 100% 본인이 갖게 되는 구조인데 국선전담변호사도 수당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도록 개선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 30대 국선전담변호사는 "직원 급여와 4대 보험료는 계속해서 그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운영비는 100만 원 이상 필요하고, 보수도 현실화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다른 변호사는 "국선전담변호사 업무량 조절을 위해 더 많은 변호사를 충원했으면 한다"며 "업무량 부담이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업무 부담이 줄어들어 좀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훈 대한변협회장은 "국선전담변호사 보수가 계속 현실에 맞춰 결정될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춰야 한다"며 "실제 운영비 증가 추이를 살펴보고 물가상승률과 연동해서 보수나 운영비를 늘리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변협이 개입해서 법원에 일률적으로 국선전담변호사 업무량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경우 의견을 주시면 법원행정처에 전달할 것"이라며 "업무량 등과 관련하여 법원행정처와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업무량 등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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