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출간한 '시인' 강태훈 변호사 인터뷰

정년까지 24년 간 법관 생활… 법원서 솔로몬 문학회 활동

작은 일상도 소홀하지 않고 관찰... 이면에 담긴 의미 찾아

법관 생활 중 스님 간 송사 기억 남아... 원만한 화해 뿌듯

상대의 '작은 흠'에 집착 말아야... '측은지심' 반드시 필요

장마가 끝난 뒤 도로 곳곳에서 죽은 지렁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침에는 분명 살아 꿈틀대던 지렁이가 저녁에 보니 그 자리에서 죽어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시인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한다. 죽은 지렁이가 몸짓으로 말을 거는 듯 하다.

"디귿(ㄷ), 니은(ㄴ), 기역(ㄱ) = 다(ㄷ) 놓고(ㄴ) 간다(ㄱ)"

강태훈(사법시험 32회) 변호사의 시 '지렁이2'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시상(詩想)의 출발점은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강 변호사는 강조한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오전에 꿈틀꿈틀하던 지렁이가 저녁이 되니 햇빛에 말라죽어있었습니다. 몸을 구부려 죽어있는 모양이 마치 '기역, 니은, 디귿' 자음처럼 보였습니다. 자음 형태로 죽어있는 몸짓을 유서라 생각해 알맞은 시구를 떠올려보니, '다 놓고 간다'는 문장의 앞글자가 되더군요. 사람이 죽었을 때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것처럼, 지렁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강 변호사는 시와 수필을 즐기는 문학인이다.  2015년 '가까이 있는 보물', '이모' 등의 시를 통해 대경문학회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판사 시절에는 법원 문학동호회인 솔로몬 문학회에서 활동했다. 

"처음에는 사물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사물 자체보다 이면에 담긴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합니다. 가령 에스컬레이터를 인생으로 의인화한다면, 계단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모습은 젊은 시절 혈기 넘치는 모습,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나이가 들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떠올리는 방식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예외를 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늘 '올곧은 직선이 옳다'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상황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강 변호사는 2015년 시집 '가까이 있는 것들(희망 刊)'에 이어 재작년에는 두 번째 시집 '눈을 기다리는 이유'(희망 刊)'를 펴냈다. 올해 3월에는 에세이집 '시간의 앙금(희망기획 刊)'을 출간했다. 그에게 시와 에세이(수필)의 차이점을 물었다.

"시보다는 에세이가 덜 어렵게 느껴집니다. 평소 산문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에세이가 접근성이 더 좋아요. 시는 글자 수에 한계가 있어 감상을 축약해야 하고, 그 표현은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켜야 합니다. 반면 에세이는 표현이 조금 미진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시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강 변호사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중앙지법 판사, 대전지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국제규범연구반장 등을 지내며 24년간 법복을 입었다. 정년퇴임 후에는 법무법인 민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관 생활과 변호사 생활의 차이를 물었더니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관이 사건을 중립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라면,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상대적으로 법관은 객관적이고, 변호사는 그보다는 주관적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또 당사자에게 정보를 입수해 서면을 작성한다는 점에서 변호사는 1차적 법조인, 법관은 변호사나 검사에 의해 다듬어진 서류를 검토하는 측면에서 2차적 법조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웃음)."

법조인으로 지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2001년 경주지원 근무 당시 스님들 간의 화해를 도운 사건을 언급했다.

"사찰 인근 토지 매매를 둘러싸고 스님들 사이에서 송사가 벌어졌습니다. 조정 과정에서 저는 속세를 떠난 분들이 왜 속세에서 재단을 받으려 하느냐고 반문하고,  2차 조정 기일에는 두 스님들께 반야심경을 독송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이 처음에는 머뭇거리다 독송을 하셨고, 순간 법정이 숙연해졌습니다. 독송이 끝나자 저는 피고 스님에게 진리를 구하는 도반으로서 원고 스님을 위로해줄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한층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두 분은 원만하게 화해를 하고 재판이 마무리됐습니다. 보름 후 제게 소포가 하나 왔는데, 다기(茶器)와 함께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는 붓글씨가 적힌 편지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강 변호사는 법조인들을 향해 '측은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딱딱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마음까지 굳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일면에 어두움을 가지고 있다며, 상대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주위에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비난보다는 포용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어두워 질 수 있습니다. 매사 논리를 강조하는 법조인의 생활은 너그러움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다른 사람의 허물을 측은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합니다. 살면서 눈(雪)과 같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작은 흠에 집착하지 않고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임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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