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근 변호사
손용근 변호사

얼마 전 두 분의 대법관이 새로 취임하였다. 사법부 변화의 시동이라는 신문기사 제목도 보았다. 「대법관 중도·보수 7명 vs 진보 6명 구도」가 되었다는 표현이 딸려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도 9월이면 끝나게 된다. 2017년 9월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래 진보성향의 대법관이 다수 임명되었고 그에 따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진보우위의 구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즉 2023년 7월 18일 두 분의 대법관이 퇴임할 때까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13명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민주사회변호사회 출신 등 진보 성향 대법관 7명이 과반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내내 대법원의 구성변화는 계속 된다. 윤 대통령은 김 대법원장 후임을 포함해 총 12명의 대법관을 교체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일부의 교체가 변화의 시동이라는 것이다.

오는 9월 새 대법원장의 임명을 앞두고 김명수 대법원의 그늘과 새로운 사법부에 대한 기대를 적은 글들이 눈에 띈다.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김명수 대법원 6년을 돌아보면 사법실패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한 글 가운데 뼈아픈 지적이 있는 일부를 옮겨 본다. 「그 결과 일반법관들은 워라벨에 빠지는 경향이 심화되고, 소위 엘리트 법관들은 대형로펌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재판지연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우 선고된 판결들 가운데에도 국민들이 전혀 공감하기 어려운 일련의 판결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결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은 국민의 신뢰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솔직히 옮기는 것도 민망하다. 전부 공감할지 여부는 차치하고 법원에서 30년 넘게 재직했던 필자로서는 「뼈가 더 아플 수밖에」 없다. 부디 실력과 덕망을 갖춘 새로운 대법원장이 임명되어서 쇠퇴한 사법신뢰의 회복 내지 증진의 선두에 새 대법원장이 앞장 섰으면 한다.

오늘 필자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사건처리의 적체 해소가 사법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다시 하고 싶다. 필자는 이미 김명수 대법원의 사건 적체에 관한 글을 쓴 바가 있다. 그 글에는 구체적인 통계가 원용되어 있다. 현직 고법판사가 용기를 내어 사법부 신뢰의 관점에서 「재판의 실패,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 나와 있는 두 개의 표와 세 개의 그래프를 원용한 것이다. 그 두 개의 표와 세 개의 그래프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의 재판지연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확실히 김명수 대법원의 그늘 중 하나가 「사건처리의 적체」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 종전보다 확실히 늘어진 재판처리의 속도, 사법신뢰 저하의 여러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회적 주목을 받는 사건의 처리지연, 사법신뢰 저하에 가속도를 부친 것이었다는 지적, 전적으로 동의한다.

근래에 지나친 사법지체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건으로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이 있다. 소위 ‘별장 성접대 의혹’이 처음 불거진 때가 2013년 3월이었고, 대법원에 의하여 모든 혐의에 대한 무죄 및 면소판결이 확정된 것이 2022년 8월 11일이었다. 무려 9년 5개월여 만에 사건이 종결된 것이다. 위 사건의 처리과정은 ‘무너진 법치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고 할 만한 것이었다. 9년이 넘은 최종판결, 용두사미라는 지적도 있었고, 그 와중에 사법신뢰는 급격히 잠식되었다.

진행 중인 지체된 사건으로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 조국 전 장관은 2019년 12월에 기소되었는데 2023년 2월에서야 1심 판결을 받았다. 3년 3개월 여가 걸렸던 것이다. 이제 1심이 끝났고 조 전 장관이 항소를 제기하였고 재판은 결국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김학의 차관 사건의 9년 넘는 기록을 넘길 것 같다. 사법 최대의 비극으로 기억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기소된 사건도 아주 오래된 사건이다.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인데 2019년 2월 기소로부터 4년 6개월 여가 지났고, 1심 최장심리기간 기록을 만들어 낼 것 같다. 신문기사 소제목 기네스북 도전감 소송지연이라는 지적,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위 3가지 사건은 모두 법조와 관련된 인물들의 사건이다. 법조 자체의 자기검증 같은 특성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거나 소요될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법조와 관련된 인물들의 사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나 여론과 관련된 사건들 중 너무 철 지난 장기미제 사건도 눈에 띈다. 황운하·한병도 의원이 기소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3년 6개월여 이상 1심에 머물러 있고, 2023년 2월, 2년 5개월 만에 1심이 선고된 윤미향 의원의 재판도 언제 끝날지 하세월이다는 지적에 마음이 뜨끔하다. 하급심만 그런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6년째 판결이 나오지 않는 박유하 교수의 사건도 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의 저자인데, <나눔의 집>으로부터 고발된 사건이다. 편향된 역사관이나 치우친 여론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닌가? 박 교수의 10여 년 동안 「내 삶을 계획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사건의 처리가 너무 길어지면 사회적, 정치적 논란까지 끼어들어 재판절차를 절차 그대로 보지 아니하고, 일방적 시각에 따른 지연원인 해석이 가능할 여지가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만큼 사법신뢰는 저하되게 되어 있다. 의견과 신념의 내전상태인 정치권의 편가르기 시각에서는 재판절차가 정치권력의 향배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편의절차 쯤으로 여길 지도 모르겠다. 아니 국민 모두가 양분되어 있는 느낌도 있고, 그런 분파의식으로 재판절차를 세력적 시각으로 분석하기 시작하면 재판절차에 대한 의심은 끝을 보기 어렵게 된다.

지리한 장마 보다도 더 끈적거리는 사건의 지체 상태, 속히 끝내야 한다. 새롭게 임명된 대법원장께서는 부디 「‘지연된 정의’ 막을 대법원장 절실」이라는 신문기사의 제목, 명심해 주시기를 당부 드리겠다. 특히 사회적 주목을 받는 오래된 사건은 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 재판지연에 관한 기네스북의 기록을 한국 법원이 기록해서야 되겠는가? 어느 고위법관은 기고문에서 「진실이 모욕당하고 정의가 살해당하는 아수라장」으로 법원을 인식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고 하면서 사법에 대한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참담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토로하였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사회적 주목을 받는 사건의 법과 원칙에 따른 적시처리가 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사회적 주목을 받는 오래된 사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속히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특별한 방안을 간구하여야 한다. 그 사건을 가지고 있는 법원의 법원장들께서 깊이 고민하셔서 대법원에 의견을 내시기 바란다.

끝에 필자의 경험을 간단히 적는다. 필자가 법원에 재직하면서 아주 오래된 사건을 처리한 경험 중 하나다. 제소된 지 15년이 넘었고 당사자가 너무 많아 송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던 부동산등기관련 사건이었다. 인사이동 직후 당시 사건배당권을 가지고 계시던 고등법원장께서 그 사건을 담당할 부에 그 사건이 끝날 때까지 다른 사건을 일체 배당하지 아니하는 파격적인 조건,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거신 다음 사건처리에 책임감이 강하다고 소문난 부장님의 동의를 얻어 그 사건을 그 부에 배당하셨다. 필자는 그 부의 배석판사였다. 결국 처리지연으로 말썽이 참 많던 그 사건은 종결되었다.

지금 당장 사회적 주목을 받는 사건을 속히 끝낼 수 있는 특단의 파격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태에서 「사건의 종결을 위한 파격적 방법」을 대법원장과 해당사건을 가지고 있는 법원의 원장이 함께 강구하시고 실천해 주시기 바란다. 실천이 없는 공허한 법치주의나 법의 지배, 그 허상이 지금 한국법조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법조에 대한 자긍심 하나로 재판을 담당하였던 법조선배님들이 마음을 감추고 아무도 몰래 흐느끼시는 느낌, 부디 감정과잉의 착각이었으면 한다.

/손용근 변호사
前 사법연수원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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