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역·서현역 칼부림 사건 이후 온라인 '살인 예고' 급증… "사회불안 증폭"

윤 대통령, 흉악범죄 강력처벌 지시… 법무부, 공중협박 처벌규정 마련예고

한동훈 장관 "정당방위 적극 적용"… 경찰청, 흉악범죄 예고글에 강력 대응

법조계 "엄격한 정당방위 요건, 흉기공격에 대처 어렵게 만들어... 완화해야"

△ 칼부림 예고 홈페이지 '테러리스(terroless)'
△ 칼부림 예고 홈페이지 '테러리스(terroless)'

# 7월 21일, 서울 신림역 인근에서 흉기난동이 벌어졌다. 피의자 조선 씨는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이유로 한 20대 남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렀다. 이후 30대 남성 3명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해를 입었다.

# 8월 3일 분당 서현역 AK플라자 앞에서 22세 최원종 씨는 어머니의 차를 끌고 나와 인도로 돌진하면서 사람들을 들이받았다. 곧바로 백화점으로 향한 최 씨는 준비해온 흉기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찔렀다.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총 2개였다. 차에 치인 5명과 흉기에 찔린 9명을 포함해 모두 1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칼부림 사건 이후 '살인 예고' 게시글까지 온라인 곳곳에 버젓이 올라와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잇따른 칼부림 사건과 살인예고 범죄에 대해 정부가 강력 대응하겠다고 나섰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경찰은 묻지마 테러를 예고한 장소와 주요 다중밀집지역에 경찰특공대를 배치하고 24시간 순찰을 돌며 경계활동을 강화했다.

살인 예고 위치와 일시, 사건 경과 등을 업로드하는 '테러리스(terrorless)' 이용자는 7일 기준 5만 명을 넘어섰다. 경찰에 따르면 7일 기준 올라온 살인예고 글은 194건에 달한다.

지난 5일 한국야구위원회 모바일 앱에 LG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대구 경기장에서 무차별 살인을 예고하는 게시글이 올라오자, 경찰은 전술장갑차까지 동원해 주변을 수색하고 경계하는 등 치안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초조함이 팽배해 사회 불안을 촉진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묻지마 테러·흉기 난동'에 일반인이 완력으로 대응할 경우 '쌍방폭행' 내지 '과잉방위'로 되레 처벌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불안감 증폭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공포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형사법상 정당방위 요건을 완화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남역에 방문한 40대 여성은 "사람이 많은 곳을 가면 더 두리번거리게 되고 휴대폰은 덜 보게 된다"며 "경찰이 인권을 중요시하다보니 (흉악범죄자에게) 강력하게 대응하기 어려운데 경찰을 포함한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범죄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 경찰들이 8일 강남역 지하상가를 순찰하고 있다
△ 경찰들이 8일 강남역 지하상가를 순찰하고 있다

정부도 공중협박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신설, 정당방위 적극 적용 등을 추진해 칼부림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칼부림 사건 등 강력범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와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이 범죄자의 출소 이후 보복을 걱정하지 않도록 보복 범죄에 대해서는 초강경 대응하고, 모방범죄 시도는 신속한 수사로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부(장관 한동훈)는 9일 살인예고글 업로드 등 공중협박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중협박 행위를 직접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미비하여 처벌 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다.

이와 함께 다중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나 공중밀집장소 등 공공장소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살인, 상해 등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 흉기를 소지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근거 규정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앞서 7일에는 대검찰청에 '폭력사범 검거 과정 등에서 정당행위·정당방위 등 적극 적용'을 지시했다.

한 장관은 "법령과 판례에 따르면 흉악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의 정당한 물리력 행사는 정당행위·정당방위 등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위법성 조각사유에 충분히 해당한다"며 "검찰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에서의 물리력 행사에 대해, 경찰 및 일반시민의 정당행위·정당방위 등 위법성 조각사유와 양형 사유를 더욱 적극 검토하여 적용해 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본부장 우종수)도 6일 전국 수사부장 긴급회의를 열고, 무분별한 흉악범죄 예고 글 게시행위에 대한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형법상 협박·살인예비·위계공무집행방해 등 적용 가능한 처벌규정을 적극 의율할 예정"이라며 "경찰과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수사 사항을 상호 공유하고, 범행 동기·배경·수단과 방법을 철저히 파악하여 구속수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정당방위 요건을 완화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형법 제21조에 따라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현재성 △상당성 △부당성이라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천주현(사법시험 48회) 형사법 전문변호사는 "법원은 정당방위가 필요성의 법리에 따라 추진되는 위법성 조각사유인데도 실무 해석상 현재성과 상당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다"며 "현재성을 중시하면 흉기를 들고 다가올 때 예방적 상태에서 정당방위를 행사하는 걸 주저하게 되고, 방어수단과 방법을 과도하지 않은 상당한 방법에서 찾게 되면 흉기 공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험에 임박한 순간에 바로 반격할 수 있도록 현재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상당성만 강조하면 종국에는 법익균형성과 보충성을 요하는 꼴이 되므로 이 역시 완화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무부가 전향적 입장을 밝힌 것은 검찰이 (흉악범죄에 대한 정당방위에) 적극 무혐의 처분 하겠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이와 관련한 대법원의 입장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 밖에도 반사회적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국가가 치료에 관여하도록 법을 정비하고 살인예고글 등 사회유해표현에 대해 인터넷차단을 실시하는 등의 대책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묻지마 칼부림' 범죄는 범인의 정신병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라며 "이러한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 정신질환자가 대로를 활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사법입원제를 도입하고 2004년 8월 5일 폐지된 사회보호법상 치료감호 제도 부활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온라인에서는 살인예고글이 올라오면 최북단부터 최남단까지 실시간으로 국민이 글을 읽을 수가 있다"며 "과거와 달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공포와 두려움은 실시간적이고 전국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온라인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형사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므로 예방대책과 진압정책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지키기 위한 적법한 공권력의 행사를 했을 때는 경찰 내부에서 그 경찰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한동훈 장관이 정당방위를 적극 적용한다고 했으니 경찰이 지금 걱정하고 있는 과거의 (정당방위로 판단받지 못하는) 이야기는 조금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현재 우리나라는 정당방위의 현재성을 굉장히 엄격하게 판단해서 예방적 정당방위는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며 "현재성을 급박한 위험에 한정하고 방해 의사를 좁게 인정한다면 상당성의 개념은 조금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정당방위 요건 완화보다 검사가 재량껏 흉악범죄에 대처한 경찰관을 기소하지 않는 방안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김면기 경찰대 교수는 "정당방위 요건 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현재 정당방위 요건하에서도 충분히 (흉악범죄에 대응한 경찰을) 처벌하지 않을 수 있다"며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보다 공소제기권이 있는 검사가 재량껏 기소를 하지 않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당방위 요건 완화를 추진한다도 해도 법률 개정이나 판례 변경이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며 "검사가 기소 재량권을 적극 행사하고 그 사례가 보도되면 일선 경찰관들의 입장에서는 한결 부담이 덜해질 것"이라고 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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