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세계한인의날' 국무총리표창 수상자 선정… 8월 시상 예정

캐나다·미국·영국·홍콩 유학 후 홍콩 정착… "중재·금융허브 개척자"

한인네트워크 '나눔포럼' 설립… "동일 출발선 설 수 있는 기회제공"

"재판은 증거싸움… 미국외 국가 '디스커버리제도' 분석 필요 높아"

"ACP 보장없이 법률조언 어려워… 사법정의 수호의무도 논의해야"

"해외에서 어려움에 처한 크고 작은 한국기업들과 사업가 및 자산가들을 대리해 분쟁해결을 위해 노력한 점과 비영리단체 '나눔포럼'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한국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해준 점을 높게 평가해주신 듯합니다. 단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2018년 경제부총리표창을 받은 지 5년 만에 다시 국무총리표창 수상자로 선정된 홍콩의 박완기 리버티 체임버스 법정변호사(Barrister)는 이 같이 수상소감을 말했다. 제16회 세계한인의날 유공 정부포상자 중 유일한 법률가다.

이른 나이에 해외생활을 시작한 박 법정변호사는 미국 보든 칼리지(Bowdoin College)와 영국 런던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를 졸업하고 홍콩 중문대학교(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에서 J.D.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홍콩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을 커버하는 변호사로 활약 중이다. 다만 군복무 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어 중간에 해군장교(OCS)로 근무한 뒤 전역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한번도 의무를 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장교로 복무했던 시절은 소중한 기억들과 함께 제 마음 한켠에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습니다."    

법정변호사는 희소성이 높다. 홍콩에서 사무변호사(Solicitor)는 약 1만 2000명, 법정변호사(Barrister)는 1500명 정도다. 극소수 한국인 법정변호사 중 한 명으로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에 능통해 그를 찾는 의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무변호사가 아닌 법정변호사를 선택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런던 유학 시절 고등법원과 항소법원(Royal Courts of Justice) 근처를 지나다니던 법정변호사들의 고색창연한 모습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변호사가 된 저의 모습을 보고 '꿈을 이룬 게 아니냐'고 하더군요. 어린 시절 링컨 대통령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막연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법정에서 멋지게 변론도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검정색 두꺼운 가운을 입고 한 손에는 두가닥 꼬리가 달린 흰색 가발을 쥐고 다른 손에는 서류뭉치를 들고 바쁘게 걸어다니는 법정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박 법정변호사가 영국이나 미국에 남지 않고 홍콩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부모님이 늘 강조하던 '개척 정신'의 영향이 컸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 길처럼 보였지만,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해군장교로 근무하면서 국제해상안전과 해적들의 테러 대응을 위해 청해부대 파견하는 건에 대해 미5함대사령부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국제해상분쟁이 발생하면 국제중재로 해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통적으로 국제중재 허브는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이지만, 당시에는 아시아 국가들의 국력이 신장되면서 홍콩과 싱가포르로 그 역할이 넘어올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기왕이면 영국 유학시절 인상 깊었던 법정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아시아를 거점으로 삼아 분쟁해결 업무를 하고 싶은 마음에 홍콩으로 건너 오게 됐습니다."

△ '나눔포럼' 멘티들과 박완기 홍콩 법정변호사(사진: 박완기 변호사 제공)
△ '나눔포럼' 멘티들과 박완기 홍콩 법정변호사(사진: 박완기 변호사 제공)

그는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지정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해외·다국적 기업의 대륙 진출 관문이자, 중국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 통로라는 양면적 속성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반환 이후에도 영국의 사법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대외 신뢰도가 높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홍콩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6~7년 전부터 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박 법정변호사는 국내 학생들을 돕기 위해 2017년 한인 네트워크인 '나눔포럼'을 설립했다. '나눔포럼'은 정보 부족으로 외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못하는 유학생들에게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다. 작은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80명에 달하는 멤버들이 활동하고 있다. 법조계와 금융권, 컨설팅업체 등 다양한 분야의 선배들이 멘토 역할을 하는데, 도움을 받은 멘티들이 자리를 잡으면 다시 멘토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홍콩에서는 로스쿨 학생이 방학에 인턴생활을 하고, J.D. 과정을 마친 뒤 곧바로 연수과정(Training Contract)을 밟습니다. 연수는 대부분 인턴을 했던 곳에서 이뤄집니다. 따라서 좋은 로펌에 취업하려면, 해당 로펌에서 인턴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홍콩은 로스쿨 1학년 때부터 인턴지원을 받기 때문에, 아무런 네트워크 없이 유학생활을 시작하는 분들께는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중 인턴지원 시기를 놓친 한국 유학생을 영국계 로펌 파트너 변호사에게 소개해줬습니다. '정원 외' 합격이라도 가능하도록 인터뷰 기회를 마련해 최소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다행히 인턴에 합격한 학생은 뛰어난 역량을 선보여 9월부터 해당 로펌에서 정식으로 연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홍콩 법조계에 비추어 볼때 우리나라에 하루빨리 도입해야 하는 제도가 있는지 묻자 '디스커버리 제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체적 진실 발견과 법률 비용 절감에 큰 역할을 한다는 이유다.

"영국이나 홍콩에서 재판은 증거싸움입니다. 디스커버리를 통해 증거가 드러나면서 사실관계 및 분쟁의 쟁점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재판기일 전에 조정을 통해 당사자 간 합의가 도출되는 경우가 70~80% 정도 됩니다. 미국 제도만 분석해서 한국 법 체계에 맞는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다른 영미권 국가들의 디스커버리 제도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과의 접점을 더 많이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에게 법정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에 대해 묻자 '비밀유지권'을 이유로 답변이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마케팅을 목적으로 로펌이나 개인변호사가 비밀유지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부분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과 홍콩에서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의뢰인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이러한 의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변호사·의뢰인 비밀보호권(Attorney-Client Privilege)'을 도입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ACP는 의뢰인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사안을 자세히 설명하고, 정확한 법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ACP가 보장되지 않으면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자신의 사안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정확한 법률 조언을 받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는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 의뢰인 비밀 보호권뿐 아니라 사법정의 수호를 위한 신성의무 역시 함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영미법 체계에서 변호사는 'Officer of the court' 역할도 수행하며, 이에 따라 사법정의를 수호하는 신성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에게 불리할 수 있는 사실이나 증거를 법원에 그대로 알리고 제출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겁니다. 의뢰인의 사건을 자문할 때 이 부분에 대해 알리고, 의뢰인을 대리해 조력하는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현재 도입을 추진 중인 디스커버리 제도와 함께 고려돼야 할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종합적으로 여러 제도 도입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리버티 체임버스 사무실에서 박완기 홍콩 법정변호사의 모습(사진: 박완기 변호사 제공)
△ 리버티 체임버스 사무실에서 박완기 홍콩 법정변호사의 모습(사진: 박완기 변호사 제공)

마지막으로 박 법정변호사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국내 변호사들에게 "희소성의 가치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은 안전하게 보일지 몰라도 경쟁이 치열하고 능력만큼 두각을 나타내기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 많지만, 전세계가 움직이는 흐름을 조금 먼저 읽을 수 있다면 더욱 다양하고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보인다면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임혜령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