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변호사, 검사, 판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고, 과로가 심하며, 성과에 대한 압박이 심한 직업군이 바로 법조인분들이십니다. 흔히 비견되는 전문가 직군중에 의사가 있지만,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나면 오버로딩, 당직근무가 상당부분 줄어드는 의사와 달리, 법조인분들은 파트너 변호사가 되어도, 차장, 부장검사가 된다고 한들, 일의 종류가 다양해질뿐, 전체적인 일의 볼륨이 크게 줄지 않습니다.

아무리 일이 손에 익으시고, 조직에서 높은 직책을 맡으신다 한들, 시스템적으로 동료나 직원들이 해줄 수 있는 일과, 자신의 에너지를 주입하셔야 하는 일이 엄연히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주말없이 재판을 준비하시고, 새벽에도 전화를 받으셔야 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다양한 요구, 때로는 무리한 감정노동, 갑질에 시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은 조금씩 마모되어 가지요.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사시는 방법도 있겠으나, 승소율, 인센티브, 승진, 고과등의 숫자에 얽매이다 보면 대부분 휴식을 미루고 본인의 정신력을 극한까지 쥐어짜는 선택지를 택하십니다. 법조인분들은 핑계를 대거나, 미루는 것,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평생토록 이기고 증명해온 인생을 살아오셨기에, 완벽주의에서 기인한 엄격한 초자아적 기준을 본인에게 강요하시곤 합니다. 쉰다는 것이 곧 나약함, 패배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인지하며 살아오신 것이지요.

물론 법조인분들은 감당하기 힘든 노동력의 착취와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으로 사회적 존경심, 경외감을 받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삶을 지탱해주는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센티브나 승진, 주변의 인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번아웃입니다.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란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탈진(또는 소진) 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어떤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다가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무기력증이나 불안감, 우울감, 분노, 의욕 상실 등의 증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번아웃을 뇌과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뇌의 에너지원 역할을 하는 도파민이 바닥나버린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몸은 눈치 없는 주인을 대신해 반복적인 시그널을 보내게 됩니다.

‘너 진짜 지쳤어. 괜찮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신체적인 신호로 전달합니다. 즉 감정적인 피로를 느끼는 것을 넘어 신체적인 통증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식욕이 떨어지고, 가슴이 뭔가 꽉 막힌 듯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두통이나 근육통이 생기고, 심장이 빠른 속도로 두근거립니다. 소화불량과 변비, 설사. 생리불순이 생기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거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를 자주 까먹기도 합니다. 불면증이 만성화되며, 동료나 부하직원의 아주 작은 실수에도 버럭 화가 나게 됩니다.

√ 번아웃 체크리스트

◻ 일을 마치거나 퇴근할 때 완전히 지쳤다고 느낀다.
◻ 속이 텅 빈 것 같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진다.
◻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중력이 자꾸 떨어진다.
◻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생각만 하면 피곤해진다.
◻ 회사에서 항상 긴장되어 있고 압박감을 느낀다.
◻ 업무를 수행할 때 무기력하고 싫증이 난다.
◻ 어떤 일을 하는 데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꾸 실수할 것만 같다.
◻ 짜증이 많아지고, 초조하고 불안하며 여유가 없다.
◻ 면역력과 회복능력이 떨어지고, 불면증, 두통, 소화불량이 만성화된다.

총 10가지의 체크리스 항목중에
3개 이하 해당 : 정상
4-6개 해당 : 번아웃에 해당
7개 이상 해당 : 심각한 번아웃, 당장 휴식과 상담이 필요

번아웃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은 1주일 이상의 휴가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와 기회비용으로 인해 법조인분들께서 쉬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에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3가지 팁을 공유해 드리려고 합니다.

1. 일상 루틴에 변화주기

출퇴근 방법(지하철, 자가용, 택시, 버스)을 바꿔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우리 뇌는 매너리즘, 즉 매일 똑같은 자극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사소하지만, 시각적, 공감각적 자극에서 새로운 신선함을 주는 것이 뇌의 도파민수치를 높이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평소 아침 식사를 하시지 않았다면 아침을 먹고 출근하신다거나, 식사시간과 메뉴를 바꿔보는 것도 좋습니다. 점심시간, 퇴근후에 10분 정도 산책이나 운동을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뇌의 무료함을 환기하고 부정적인 사고 방향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 멀티 태스킹을 최대한 줄이자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시려고 하시면 집중력, 기억력, 주의력이 분산되어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제로태스킹이 됩니다. 번아웃이 왔거나, 평소보다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느끼신다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신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deep thinking 으로 한가지 일을 정확히 완료하신 후 다음 업무로 원바이원으로 수행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3. 일과 가정의 경계 관리하기

‘야근을 한다면 최대 몇시까지 일할 것인가’, ‘퇴근이후 집에서 업무 카톡, 메일이 온다고 해도, 밤 11시부터는 읽지 않는다’는 원칙과 경계를 세우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있어줘야 하는 순간, 우리는 기회비용에 대한 일체의 고민 없이 일을 중지하고 가족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 절친한 친구의 부친상, 가족의 중요한 모임등을 일 핑계로 계속 빠지신다면, 결국 인생의 많은 부분이 위축되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되실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모든 법조인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이 지쳤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것은 나약한 것도, 뒤처지는 일도 아닙니다.

무기력과 우울감을 빨리 극복하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자책하지 마세요.

지금 여러분이 하실 일은 최선을 다하고 지쳐버린 나 자신에게 그저 따뜻하게 물어봐주시는 겁니다.

지금 괜찮냐고, 정말 괜찮냐고.

/박종대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신촌세브란스 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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