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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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의 개인정보는 인터넷에서 단돈 500원이면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학력과 경력, 상세한 활동내용 등이 담긴 법조인 신상정보를 이용하는 사람은 비단 법률가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담당 재판부와 검사의 신상이 궁금한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 변호사 정보를 확인하고 싶은 잠재적 의뢰인, 법조계를 취재하고 있는 출입 기자에 이르기까지 법조인 정보 이용자의 스펙트럼은 넓고 광범하다.

현재 법조인 신상정보를 수집하고 유통하는 주체는 민간 신문사와 법률정보사이트들이다. 인사공고 등을 통하여 국민에게 소속과 신분이 공지되는 재조 법조인은 물론이고,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에 관한 정보도 일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는 측면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상세한 법조인 정보를 다른 상품·서비스와 엮어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불법 소개·알선 브로커나 중개사이트에서 재판부와의 ‘인맥지수’ 추출을 위해 악용하는 행태는 부적절하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신상정보는 단순한 기초 자료로서의 가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여러 상업 알고리즘의 운용 기반이 되는 빅데이터 구축의 핵심 소재이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개인정보를 ‘디지털 사회의 원유(原油)’로 부르기도 한다. 과거 법조인 수가 희소하고 개인정보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비교적 적었던 시절에는 법조인들이 자신들의 정보 수집과 이용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관대하였다.

그러나 개인정보가 고유한 활용범위를 넘어 민간 기업들의 유료구독 및 부가서비스 이용과 연계되고, 급기야 ‘인물 정보’를 보기 위해 필요도 없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본말전도(本末顚倒) 상황에 이르렀다면, 분명 개선이 필요한 변곡점을 맞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37년 발표된 김정한의 소설 ‘사하촌’에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뜬금없이 절에 시주해놓고, 다시 그 절의 소작인이 되어 비참하게 살아가는 ‘치삼 노인’이 나온다. 자기 소유물을 엉뚱한 사람에게 넘겨주고, 되레 ‘을’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개인정보를 선뜻 제공하고, 그 뒤에 다시 돈을 내고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법조인들의 상황과 맥락이 닿아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5일 법조인 정보 검색서비스를 출시하고 베타테스트에 돌입하였다고 밝혔다. 법원과 검찰의 인사공고와 배치표를 일일이 기입하여 제작했으며, 소속 회원들에게 무상으로 열람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공익 목적으로 법조계를 취재하는 언론사에게도 열람 허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나마 변호사단체에서 법조인 정보 관리와 운용을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재화로서의 가치와 오·남용의 위험성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는 개인정보의 특성상, 예전처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개인정보를 넘기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차제에 법원과 법무부, 검찰을 설득하여 온전한 법조인 정보 데이터망을 구축하고, 법조인 정보 유출로 인한 부당한 피해나 법조브로커에 의한 악용 가능성을 일소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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