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옥 변호사·임명공증인
박승옥 변호사·임명공증인

6월 호국의 달이다. 73년 전 6월에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나라를 지키라는 명령 앞에서 부모형제 처자식을 뒤로 한 국군병사들이 한목숨을 초개처럼 던져 산화한 희생 위에 우리는 있다. 자유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들을 우리는 기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선배 세대의 각고의 노력 덕분에 굶주리지는 아니할 만큼 된 오늘, 우리에게 그들은 말한다. 나라를 위하는 일은 목숨을 바칠 결단으로써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지난 2월에 유력 로펌 등에 취업한 전직 판·검사 37명과 그 로펌 경영주들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지난 5월에 시민단체 한 곳과 150여 명의 국민들이 형사고발 하였다. 판·검사들의 임용을 퇴임 후에 변호사직에 기타 법률이 허용하는 외의 유보수직에 종사하지 아니할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취지를 헌법에 넣는 단일조항 헌법개정안 발의를 구하는 청원서를 대통령과 국회의장 등에게, 역시 지난달에 시민단체 두 곳과 그 비슷한 숫자의 국민들이 제출하였다.

구체적으로 사법제도에 관하여 국민의 집약된 요구가 표출된 사례는 우리에게 드물다. 3·1 운동,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촛불시위 등 국권회복과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국민의 큰 걸음들에서 사법제도에 관한 명시적 요구사항은 거의 보이지 아니한다. 하늘을 대신하는 유덕자인 천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유가적 우주관에 익숙한 문화전통 속에서, 훌륭한 대통령을 뽑으면, 나라의 올바른 제도를 그가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가 크게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이번 국민의 형사고발과 헌법개정안 발의 청원은 그동안 불신됐으면서도 삼권분립 체계 속에서 국민의 요구 대상에서는 빠뜨려져 온 사법 시스템에 관하여 국민이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퇴직 판·검사들이 로펌으로 단독사무소로 변호사 개업에 나서는 일은 비단 퇴임 공직자 몇 명의 취업에서의 윤리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고발·청원의 배경에 담긴 우려는 보다 더 근원적이다.

국민의 희생 가운데서 독재에 편승하고 호의호식하면서 방관할 뿐, 저항다운 저항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이 주재하는 사법제도라는 것에 대하여, 그 주역들이 돈을 벌고자 관직을 더럽힘이 이어지고 확대되는 상황에 대하여,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이 나라의 정통성 자체에 대하여, 의문을 사람들은 표시한다는 데에, 형사고발이라는 직접적 조치를 취하게 된 배경이 있다.

이제 법은 아예 믿지 아니함에 정의가 있다고 국민의 상당수가 여기게 되었다. 법이 손을 대면 나쁜 짓을 벌이는 가해자가 되고, 법에 걸리는 사람은 정의로운 일을 열심히 해 오다기 찍힌 피해자가 된다. 누구든 법을 비난하면, 법에 맞서면. 그 자체로 점수를 얻고 표를 얻고 심지어는 돈을 얻기도 한다.

이 나라에 대하여 수치심을 갖고서, 역사적으로 수백 년의 퇴행인 것을 진보의 정수인 양, 해법인 양, 받든다. 이런 꼴을 보려고 저 호국영령들이 그 한 몸을 바쳤단 말인가? 이 나라에는 자유와 정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책임을 지닌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

역사의 방향이 늘 피치자의 항거로부터 결정됐던 것은 아니다. 국가의 운영을 국민과 함께하려는 지도자의 통찰과 결단으로써 국운 융성의 길이 열린 사례는 많다. 마그나 카르타가 있기 거의 50년 전인 1166년에 클라렌덴법으로써 범죄의 소추권한을 국왕의 관리들에게가 아닌 해당 지역민들에게 부여하여 대배심 제도를 마련하고 민주적 사법의 길을 연 영국의 헨리 2세 같은 인물은 그 예증이다. 우리는 벌써 세 번을 대통령으로 법률가를 뽑아 왔다.

퇴임 판·검사들이 자기 사건들을 들고서 현직 검·판사 앞에 나타나는(Appear) 상황에서 나라의 장래는 밝을 수 없을 것이다. 퇴임 판사들의 변호사 업계로의 진출이 허용되고서는 법원에 대한 불신의 소지를 그 어떤 제약의 설정으로써도 해소할 수 없음을 영국의 판사들은 만장일치로 인정하였다. 과연, 믿음(信)은 모든 덕성의 토대이니, 불신을 안은 채로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국민의 신뢰가 있는 곳에는 늘 감사로이 행복이 깃들 것이다. 

/박승옥 변호사·임명공증인
공증인 박승옥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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