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희 전 주 핀란드대사
장동희 전 주 핀란드대사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인 이창위 교수가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책 제목부터가 상당히 도발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민정수석을 비롯한 여권 정치인들은 운동권 가요인 ‘죽창가’를 소환, 반일정서를 고양시키고, 이에 토를 다는 사람은 ‘토착왜구’로 매도했다. 책 제목은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죽창가’와 ‘토착왜구’ 사이 어디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저자의 견해를 압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부제 <국제법과 국제정치로 본 한일관계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일관계의 문제를 국제법과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토착왜구와 죽창이라는 반문명적 표현이 주목받는 21세기 한국사회의 상황은 비정상”이라고 규정하고, “국익을 위해서라도 전근대적인 토착왜구 주장이나 친일 프레임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위안부나 강제징용공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 요구와 관련하여, 일본이 천황이나 총리급에서 한 사과만 해도 50회가 넘는다는 것을 도표로 깔끔히 정리하여 보여준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2015년의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함으로써, 한국은 국제법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로 매도되고, 위안부 문제에 관한 도덕적 우위마저 상실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한·일간 갈등과 관련된 이슈로서 65년 국교정상화, 위안부 및 강제징용공 문제, 독도 문제 등을 국제법과 국제정치적 맥락을 함께 짚어가며 다룬다. 이 책을 관통하며 흐르는 저자의 주장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이후 전개되는 사안을 보자는 것”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대일평화조약은 패전국 일본에게는 대단히 관대한 조약이었다. 한국은 이 샌프란시스코 협정에 초대받지도, 전승국의 지위도 부여받지 못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조차 연합국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연합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5장)에 따라 배상을 받았으나 한국은 조약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과 개별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이라도 명시되었다면,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교섭 시 한국이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다수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교정상화를 밀어 붙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에 대하여 저자는 “경제발전에 관한 한 옳았다”고 평가한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은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소양강 댐 건설 등에 사용됨으로써 한국의 경제발전과 사회 변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체결된 청구권협정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공 문제와 관련, 그 해석 문제를 두고 아직도 한일 간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은 청구권 협정 제2조 제1항에 따라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중략)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 우리 법원 측은 일본의 불법행위에 기한 배상책임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춘식 씨를 비롯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2005년 2월 28일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 2012년 5월 24일 자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저자는 “외교적·섭외적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내린 우물 안 개구리 식 판결”이라고 혹평한다. 이후 신일철주금이 피해자 1인당 1억 원씩 배상토록 한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이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의해 최종 확정됨으로써 이 사건은 종결된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와 대법원의 접촉이 나중에 사법적폐로 몰려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킨 데 대하여도 이 교수는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다. 외교적 사안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때 미국 법원이 국무부의 의견을 구하는 ‘법정의 친구(Amicus curiae)’ 제도를 들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대법원과 외교부가 의견을 나눈 것을 재판거래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선진국은 사법부가 행정부의 입장을 존중하여 주요한 외교적 사안을 판단한다”며, “우리 대법원이 ‘사법자제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한다. 이 교수는 이런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조약과 협정의 불완전한 내용 때문에 발생한 것인 만큼, 조약의 해석과 실행에 대한 분쟁은 ‘국제법상 인정되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식’으로 해결할 것을 주문한다. 더구나 청구권협정은 본문에 분쟁해결 조항까지 있다는 것이다.

독도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2조에서 일본이 권리를 포기하는 대상에 ‘독도’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였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 조약은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이라 표현, 독도에 관한 부분을 누락시킴으로써 논란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반면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SCAPIN 677과 SCAPIN 1033을 통하여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행정권 행사를 정지시켰다. 그러나 이 조항이 일본의 영토 범위에 대한 최종적 결정으로 해석될 수 없다고 한 7항 규정을 들어 한국 측의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는 일측 주장에 대하여,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192조(d)를 들어 재반박하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적절하다. 즉, 평화조약의 동 조항은 일본이 미군정의 조치를 승인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 저자는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 선포는 신의 한 수였으며, 그의 선견지명이 아니었으면, 지금 독도에 대한 한일 간의 공방은 뒤바뀌어 있을 것”라고 평한다. 이어 저자는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주장, 역사적 문서의 증거능력, 관련된 국제판례 등을 살펴본 후, 독도를 분쟁지역화한 후 국제재판으로 끌고 가려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민족 감정과 정치적 시각을 배제하고 독도에 대한 현상유지를 지속할 것’을 권유한다. 우리 정치권과 극우 단체들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저자는 친일·반일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 전반을 ‘국제정치와 역사적 맥락에서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일본의 한국지배에 대한 책임과 사과 문제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열강은 유럽 중심주의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했으며, 국제법은 그들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도구였다. 이러한 서구열강의 세계관을 받아들인 일본에 대하여 식민지 지배 전체에 대한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났을 때 한국은 전승국은커녕 독립국도 아니었다. 일본의 패망으로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에 불과했다.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 문제를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처벌과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프랑스는 나치 지배 기간에도 독립국 지위를 유지했기 때문에 독일의 패전 후 건국의 부담이 없었다. 반면,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에 불과했던 우리는 분단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의 틀을 만들어야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을 무 자르듯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이창위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 박영사, 2023. 1.)
△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이창위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 박영사, 2023. 1.)

저자는 주장한다. 역사는 뜨거운 가슴으로 느끼더라도, 차가운 머리로 평가할 것을. 북한의 핵무장으로 동북아 안보지형이 확연히 달라진 현 상황에서 80년이 넘게 지난 과거에만 매달려 있을 것이냐고. 한미일 동맹 강화뿐만 아니라 미·중·러·일·남북한 6개국이 핵무장을 함으로써 핵무기로 서로 위협할 수 없도록 ‘6자 상호확증파괴의 균형’까지 주장한다.

이 책은 국제법과 국제정치 이론을 통섭적으로 적용하며, 논란도 많은 한일관계 제 이슈를 국제정치와 시대적 상황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풀어나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외교 행위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 국제정치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평가해야지 현재의 관점에서 함부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여 흐르는 저자의 일관된 입장이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 “우리는 일본과 싸워서 독립을 쟁취하지도 않았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당사국이 되지도 못했다”며, “승전국이 패전국에 할 수 있는 정도의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저자의 견해에 우리 모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시 한일 합방조약의 무효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20세기 초 강대국에 의한 식민지배를 인정하는 것이 당시 국제법의 입장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1945년 이전 국제법에서는 국가대표가 아닌 국가에 대한 강박은 조약의 무효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감안할 때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는 불가피하면서도 잘한 선택이라고 하면서도, 저자가 제4장 제목에서 왜 국교 정상화를 ‘잘못 끼운 첫 단추’라고 하였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저자가 북핵 대응방안으로 제시한 ‘6자 상호확증파괴의 균형’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는 한일 양국도 핵 무장할 것을 요구하는데, 우선 우리가 일본의 핵무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한일 양국의 핵무장을 NPT 체제가 과연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최소한 미국의 동의 없이는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생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태평양 전쟁 개전과 종전 때 공히 일본 외무대신을 지낸 ‘도고 시게노리’ 이야기가 계속 귓전을 맴돈다. 일본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1953년 7월 스가모 형무소에서 병사한 그는 조선인 도공의 후예다. 출생 당시 이름은 박무덕. 저자가 만난 적이 있는 그의 손자의 독백으로 이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조부부터 3대가 외무성 고위 관료로 일본을 위해 일한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일본인이라고. 그러면서 한국에 뿌리를 둔 일본인으로서 한일관계를 통해 동북아의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장동희 前 주 핀란드 대사
前 경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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