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ACP 법제화 TF 구성 '초읽기'… 16개 로펌이 참여 의사 적극 밝혀

한국공법학회, 21일 학술대회… "변호인 자문 공개 우려… ACP 보장을"

IBA, LAWASIA, POLA 등 세계 변호사단체 "ACP는 필수요소" 한목소리

'ACP 도입' 변호사법 국회 계류중… "변호사 조력 받을 권리 실질보장"

변호사·의뢰인 비밀보호권(Attorney-Client Privilege, 이하 'ACP')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수사기관이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자제했지만, 2016년 진행된 로펌 압수수색을 필두로 매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비롯한 기본권 침해 논란이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최근 ACP 법제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하고 ACP법안 통과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16개 로펌이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힌 가운데, 지난달에는 입법컨설팅 전문가들이 모여 간담회를 열고 내부 의견을 수렴했다.   

이와 함께 학계에서도 "ACP 도입은 불가피하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올해는 법조계 숙원사업이 이룩될지 주목된다. 


● 21일 한국공법자학회 개최… "ACP 도입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보장을"

한국공법학회(회장 조소영)는 21일부터 22일까지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파크하얏트에서 '2023년 한국공법학자대회'를 열었다.  

△ 허성욱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21일 열린 '2023년 한국공법학자대회'의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도입에 관한 공법적 고찰' 세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허성욱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21일 열린 '2023년 한국공법학자대회'의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도입에 관한 공법적 고찰' 세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대회 둘째날에는 허성욱(사법시험 39회)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도입에 관한 공법적 고찰'을 주제로 발표했다.

허 교수는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을 권리를 의미하지만 변호인과 의사 교환한 내용이 공개될 우려가 있다면 충분한 의사 교환과 조력이 어렵다"며 "외국 사업자들은 ACP를 인정 받아 내부통제 체제를 충실히 구축하고, 일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규제당국의 증거 제출 요구도 거부할 수 있지만, 국내 사업자들은 ACP가 없어 법률 위반 리스크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상 법치국가원리와 적법절차원칙에 비추어 불이익 처분 절차에서는 대상자에게 방어권 행사를 보장해야 하나, 규제당국이 대상자의 모든 방어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ACP를 도입해야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헌법상 적법절차에 따른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사업자들의 국제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ACP 도입 시 실체적 진실 발견과 사후 통제 가능성을 저해하고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는 등 공익이 저해될 수 있다"며 "ACP의 과도한 보장으로 기존에 달성하고 있던 공익이 저해되지 않도록 조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재원(변호사시험 1회)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는 "미국은 적법절차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를 토대로 ACP를 인정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리를 도출해낼 수 있는 근거 규정에 따라 미국과 같이 ACP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근현대사에서 변호인의 조력권이 무시당하거나 침해되는 사례에 비춰보면 오히려 ACP를 인정해야 하는 역사적 아픔이 있는데 왜 이렇게 (ACP 도입에) 소극적인지 모르겠다"며 "국민의 권리 보호, 공권력에 대한 정당한 방어 차원에서도 ACP는 더더욱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자료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ACP를 인정하면 수사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ACP 도입 과정에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도 병행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법률시장 경쟁력은 점점 더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 변호사들 "ACP, 특정 변호사 보호 아닌 법치주의 보장 위한 전제" 한 목소리 

해외에서는 ACP가 필수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OECD 회원국 36개국 중 ACP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현재 우리나라 뿐이다.

올해 4월 29일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요 7개국 변호사 회담(G7 Bars Meeting; 일본, 미국, 캐나다, 영국 잉글랜드·웨일즈, 독일, 유럽연합)에서는 ACP를 사법 제도의 기본 원칙으로 정하는 결의문에 서명했다. 

G7은 결의문에 따라 △ACP에 대한 공격은 변호사와 의뢰인을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하며, 그러한 공격은 변호사의 직업적 독립성, 법원의 권위 및 법치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인식할 것 △의뢰인의 이익과 변호인의 효과적인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의뢰인의 대리에 관한 정보의 비밀, 의뢰인-변호인 관계, ACP 및 전문적 비밀을 지켜야 함을 강조하는 것 △의뢰인-변호사 관계의 비밀유지 원칙, ACP, 업무상 비밀유지 및 변호사의 효과적인 조력에 대한 권리가 적법하고 적절하게 보호돼야 함을 재확인했다.

지난해 1월 IBA(International Bar Association, 세계변호사협회)는 'ACP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ACP는 단순히 특정 변호사나 개별 의뢰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법치주의 자체를 뒷받침한다"며 "공정한 재판은 ACP 없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변호사의 역할은 의뢰인에게 독립적인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것인데, 비밀 누설이 허용되면 그러한 지원은 불가능하다"며 "만약 그러한 폭로가 발생한다면 변호사의 고객에 대한 조언은 더이상 법의 관점에서 '독립적'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CP는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어떤 의미에서도 변호사의 '자기 이익'에 관한 것은 아니"라며 "변호사와 의뢰인 간 관계는 완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태평양 50여 개 국가 법조인이 모인 로아시아(LAWASIA)에서도 2016년 "ACP는 사법행정의 청렴성을 촉진하고 보존하는 공익의 핵심"이라며 ACP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2015년 인도에서 열린 POLA(아시아변호사단체장회의; The Presidents of Law Associations in Asia)에서도 ACP 관련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에는 "ACP는 법조계의 독립성의 원칙을 촉진하는 요소"라며 "ACP를 국가가 침범하는 건 변호사-의뢰인 관계의 근본 요소인 변호사가 의뢰인을 조언하며 대변해주는 능력을 와해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 '범죄은닉 창구로 활용 가능' 우려에… "범죄 목적 자문은 ACP 제외대상" 반박도

국내에서도 ACP 도입을 골자로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꾸준히 발의되고 있다. 제21대 국회에서만 4개 법안이 발의돼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또 지난 2일에는 정우택 국회부의장이 ACP 도입 법안을 발의했다.

정 부의장은 제안 이유를 통해 "현행법은 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된다는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을 뿐, 변호사와 의뢰인 간에 이루어진 의사교환 내용이나 서류 등자료의 공개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해서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의뢰인에게 사실상 헌법상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며 "ACP 도입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원회는 19일 ACP 도입을 규정한 조응천·황운하·최강욱의원안에 대해 논의했다. 앞서 변협은 "헌법상 보장되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개정안"이라는 의견을 냈다.

법원행정처는 "변호인의 '비밀유지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려는 입법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보호 이익에 비하여 실체적 진실발견 등의 이익이 더 큰 경우에는 그러한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이익 형량 규정을 둘지 여부 등에 관하여 입법정책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법무부는 "비밀유지권리의 인정범위가 넓어 실체적 진실 발견 저해 우려가 있고, 변호사가 의뢰인의 증거은닉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왼쪽)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출처: 국회 영상회의록)
한동훈 법무부장관(왼쪽)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출처: 국회 영상회의록)

이와 관련하여 '의뢰인을 조력할 목적으로 생성하였거나 그 의뢰인과 주고받은 의사교환의 내용을 담고 있는 물건'을 압수수색 거부권 행사 가능 범위에 추가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발의된 상태다. 최강욱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차례 논의됐다.

이상영 대한변협 제1정무이사는 "2016년 이전에는 수사기관에서 로펌 압수수색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한 번 압수수색을 한 뒤로 변호사를 타겟으로 한 압수수색이 계속되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로펌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 단초를 마련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 측에서는 대형로펌 등이 범죄의 하수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데 '의뢰인이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법적 자문을 받은 경우 등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 등은 ACP 제외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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