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지 변호사
권민지 변호사

법정에 앉아 재판 순서를 기다릴 때면 가끔 앞선 재판에서 대리인끼리 날선 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보곤 했다. 대리인끼리 저렇게까지 말하나 싶다가도, 저런 건 나도 못 참지 싶은 때도 있었다. 여기에 당사자들까지 가세하여 법정 밖에서 언쟁을 이어나가는 모습도 한두 번 목격했었다.

민사소송에서 첫 기일이 잡히기도 전에 합의를 제안받아 상대방 대리인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디테일은 잊혔으나 만족스러운 합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상대방 대리인이 합의서를 쓰는 내내 “판결로는 원고가 절대 이기지 못하지만 피고측 사정으로 합의해 주는 것이니 운이 좋은 줄 알라”면서 반말투로 온갖 신경질을 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대리인들만 있는 자리였고 합의 체결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고구마 먹은 기분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몇 년 후, 다른 사건에서 피고 대리인으로 조정기일에 출석했다. 피고는 빠른 합의를 원했으나 조건이 까다로워 성립 여부는 불투명했다. 그리고 예의 그 대리인을 마주쳤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온화한 얼굴, 침착한 목소리, 상대를 배려하는 표현까지 무엇 하나 예전과 비슷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적극적인 조정위원이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논리적인 설득으로 당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까다롭다고 여겼던 조정을 결국 성공시켰다. 조정실을 나와 한숨 돌리면서 생각했다. 만약 그 때 그 신경질에 대거리를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전문성을 갖춘 조정위원이 개인적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정실에서 마주친 그 순간부터 나는 고구마에 목이 콱 막힌 기분이었을 것임이 확실했다.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제 때 적절히 항의하는 능력은 변호사의 덕목 중 하나이다. 다만 부득이 인내를 발휘하여야 할 순간들도 찾아온다. 명백하게 참아야 할 때도 있지만 애매한 상황에서 속으로 고구마를 삼켜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뜻밖의 재회를 겪은 후 부터 이 한 가지는 기억하려고 한다. 목에서 메인 고구마가 몸에는 좋을 수 있듯, 인과의 고리는 단순하지 않다고.

/권민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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