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31일 '2021-2022 이주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보고대회'

"행정청의 주장만으로도 입증 없이 난민 불인정된 사례 많아"

이일 변호사가 31일 서울 서초구 대한변협회관 세미나실2에서 열린 '2021~2022 이주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보고대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일 변호사가 31일 서울 서초구 대한변협회관 세미나실2에서 열린 '2021~2022 이주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보고대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난민소송에서는 생명권이나 신체의 자유 외에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박해(Persecution)'를 인정 받는 사례가 드물다. 이에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등 다른 기본권을 침해받은 경우에도 이를 박해로 인정하고 난민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31일 서울 서초구 대한변협회관 세미나실2에서 '2021~2022 이주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보고대회'를 열었다.

이날 이일 (사법시험 48회)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가 '명예살인 위협을 이유로 한 난민 인정'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변호사는 "행정청은 난민을 보호하겠다는 의사보다는 난민을 거부하겠다는 의사가 더 확고하다"며 "법원에서 판례가 나오지 않으면 난민 인정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난민소송 95% 이상이 변호사 없이 홀로 진행하는 본인소송이어서 결국 기각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법원 판결에 계속 이러한 상황이 반영돼 좋은 판결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며 "특히 행정청은 항상 ‘사인에 의한 박해이므로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데 실제 법리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잘 해석한 판례가 2021~2022년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사인에 의한 박해'를 이유로 난민 인정을 한 서울고법 판례(2021누34345)를 예로 들고, 각 쟁점과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이 사건에서 가족 의사에 반하는 연애결혼을 한 A씨는 명예살인 위협에 처하자, 정부에 법적 구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를 거절 당하자 A씨는 어쩔 수 없이 도피를 하게 됐고, 우리나라에서 난민신청을 했다.

이 판례에서는 강제결혼(Forced Marriage) 자체를 '박해'로 인정했다. 서울고법은 "의사에 반하는 결혼을 강요하거나 스스로 선택한 혼인 상대방과 결혼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 강제로 이혼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모두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성적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하고 본질적인 침해"라고 판시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박해’를 생명 또는 신체의 자유와 관련지어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생명권이나 신체의 자유만 독특하게 보호를 받아야 될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생명권, 신체의 자유, 고문, 사생활의 자유 등 기본권 등을 침해했을 때도 박해로 인정한다"며 "이러한 주장들이 판례에 반영되지 않는 한 행정청은 (생명권이나 신체의 자유뿐 아니라 다른 기본권을)다 무시하고 넘어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강제 결혼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죽을 수 있어 생명권이 침해된다'라는 주장이 아니라 '결혼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자체로도 난민 인정이 될 수 있도록 다퉈봐야 한다"며 "더 이상 행정청이 강제결혼 사례가 박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사적 박해에 해당한다는 등의 이유로 난민 불인정 결정을 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변호사는 서울고법은 국적국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판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행정청은 설령 난민에 해당하더라도 다른 곳에 갈 수 있지 않냐고 하지만 이는 행정청이 입증해야 할 문제"라며 "그간 행정청의 입증 없는 '주장'만으로 박해 위험을 부정하는 형태로 판단이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행정청은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입법하는 등 형식적인 부분이 갖춰지면 (난민신청자가 해당 국가에서)보호받을 수 있다는 주장하기도 한다"며 "(이러한 제도가)외교적 비난을 막기 위한 조치일 뿐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제도라면 아무런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 법원에서는 실제로 개별 난민이 보호를 기대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판례 역시 ‘형식설’이 아닌 ‘실질설’ 입장을 택하고 일정 수준 제도 개선은 과거 확인된 명백한 박해 위험을 부정하는 근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 법리를 가져와 타당하게 해석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는 앞으로 예비법조인 등도 난민사건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진수 사단법인 피난처 활동가는 "이 판례는 각기 소속이 다른 변호사들이 공동대리하고 다수 로스쿨생이 참여했다"며 "이들이 조사한 방대한 양의 해외 판례와 국가정황정보조사결과가 법원에서 판단근거로 인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법률대리인 없이 본인소송으로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사건에서 승소한 기록은 없다"며 "이번 판결의 연대가 선례가 되어 더 많은 예비 법조인이 난민 사건에 참여하고 난민에게 정당한 지위가 부여되는 선순환이 나타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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