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사 41만명 시대, 시험 통과 행정사는 3016명… "전문성 확인 없는 혜택 '문제'"

윤석열 정부, 공직경력 특례 인정제도 개선 추진… 시험과목 면제 폐지 입법안도

'행정사에 행정처분 이의신청권 부여' 행정사법안 발의… "변호사법 제109조 위반"

"행정사의 직역확대 시도, 로스쿨 도입취지에 반해… 법조유사직역 통폐합 추진을"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가 제58회 세무사 시험을 둘러싼 ‘세무공무원 특혜 논란’에 반발하며 2021년 12월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본부에 근조 화환을 놓는 시위를 벌였다.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가 제58회 세무사 시험을 둘러싼 ‘세무공무원 특혜 논란’에 반발하며 2021년 12월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본부에 근조 화환을 놓는 시위를 벌였다. 

공무원 출신에게 '행정사' 문턱은 유난히 낮다. 단순 행정지원 등 간단한 업무만 수행했어도 공직 경력을 인정해 시험 과목을 감면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 행정사의 99%는 시험과목의 전체 또는 일부를 감면 받은 전관 출신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공무원 출신에 대한 국가시험 특례'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치러진 제58회 세무사 시험에서 국세청 공무원에 대한 '몰아주기' 의혹이 발생해 고용노동부에서 특정감사에 착수하고, 수험생들이 집단 소송을 내는 등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무원 생활을 해봤다"는 사실만으로는 전문성을 보증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무원 출신들이 경력을 내세우며 공정한 평가를 제도적으로 우회·회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상가상 최근에는 행정사에게 '행정처분 이의신청 시 의견진술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공무원 출신에 대한 과도한 특혜이자, 변호사법 제109조와 정면으로 충돌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행정사 41만명 '훌쩍'... 시험감면 혜택 공무원 출신이 99%

행정사는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서류 작성 △권리·의무나 사실증명에 관한 서류 작성 △행정기관 업무에 관련된 서류 번역 △인가·허가 및 면허 등을 받기 위하여 행정기관에 하는 신청·청구 및 신고 등의 대리 △행정 관계 법령 및 행정에 대한 상담 또는 자문에 대한 응답 등의 업무를 맡는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제한된 업무는 수행할 수 없다.

세부적으로는 △일반행정사 △해사행정사 △외국어번역행정사로 나뉜다. 이 중 해사행정사는 해운 또는 해양안전심판에 관한 행정기관 제출 서류 작성 등을, 외국어번역행정사는 행정기관 업무에 관련된 서류 번역을, 일반행정사는 앞의 두 행정사가 하지 않는 이외의 업무를 다룬다.

행정사는 2013년 제1회 시험이 실시된 후 꾸준히 증가해 왔다. 첫 시험에서 6만 6485명이 최종 합격했으며, 2017년에는 4만 6989명, 2021년에는 1만 6918명, 2022년에는 9172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10차례 치러진 시험을 통해 누적된 행정사는 총 41만 3689명으로 집계됐다. 시험감면 혜택이 다른 어떤 자격사보다 폭넓게 주어져 "일단 따놓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제 영업 활동 중인 행정사는 982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사시험 합격자의 99% 이상은 시험 과목을 일부 또는 전부 감면받은 이른바 '전관'들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행정사시험 합격자 41만 3689명 중 단 0.73%(3016명)만이 시험을 통해 선발됐다. 

한 청년변호사는 "행정사 제도 자체가 공무원들의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공무원 시절 직접 수행했던 부분적인 업무 말고 어떤 전문성이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혜택을 주는 것은 과도하다"고 꼬집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공정한 채용기회의 보장’을 선정했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전현희)는 지난 2월 대통령 서면 업무보고에서 세무사·변리사·법무사 등 전문자격사 시험의 공직경력 특례 인정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징계 처분을 받은 공직자는 시험 응시와 관련해 불이익을 주고, '전관' 자격사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수임을 제한하는 근거도 마련할 계획이다.

△법무사 △세무사 △관세사 △보세사 △행정사 △공인회계사 △손해사정사 △보험계리사 △변리사 △경비지도사 △공인노무사 △감정평가사 △손해평가사 △소방시설관리사 △소방안전관리자 등 도합 15종의 자격사 시험이 공직경력에 따라 시험의 일부 또는 전부를 면제하는 혜택을 부여한다.

이와 관련 권익위는 지난해 11월 한국정책학회와 함께 '공직사회의 기득권 카르텔 방지 및 전관특혜 관행 개선' 토론회를 열고, 공직 경력을 지나치게 인정해주는 현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공무원 특혜를 폐지하는 법률 개정안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서울 마포구갑)은 공무원에 대한 시험과목 일부 면제제도를 폐지하는 공인노무사법‧공인회계사법‧관세사법‧변리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노 의원은 "공무원에 대한 국가전문자격시험 시험 또는 시험과목 면제는 공무원 응시생과 일반 응시생 간 자유경쟁 및 형평성을 저해하고 공무원에 대한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이 계속돼왔다"며 "해묵은 공무원 특혜를 폐지하기 위해 하루빨리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 '이의신청 의견진술권 부여' 행정사법 개정안은 위법 소지 

올초에는 행정사 업무범위를 법의 테두리를 넘어 대폭 확대하는 법안까지 발의돼 시선이 쏠린다. 행정사 자격증을 두고 공무원 특혜 시비가 잦아들지 않는 상황인만큼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행정사가 행정기관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행정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제안이유에서 "행정사의 업무에 거부처분에 관한 이의신청 과정에서 행정기관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추가함으로써 행정사의 업무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자 한다"며 "인가·허가 및 면허 등의 행정절차에서의 실질적인 조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지난 12일 국회에 전달했다. 비변호사의 법률사무를 금지하는 변호사법 제109조와 충돌하며, 운용상 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취지다.

변협은 "변호사법 제109조에 따라 행정사이든 다른 자격사이든 공히 ‘변호사가 아니면서 이익을 위하여 일반의 법률사건에 관하여 감정·대리·중재·화해·청탁·법률상담 또는 법률 관계 문서 작성, 그 밖의 법률사무를 취급하거나 이러한 행위를 알선할 수 없다"며 "행정사 업무범위는 연혁상으로나 현행 법령 및 관계법령상으로나 행정기관에 대한 서류작성, 번역, 제출대행, 신청·청구·신고대리 등에 국한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행정사가 서류를 작성하거나 제출하고, 신고나 신청 등을 했으나 행정기관의 판단(처분)이 불이익하거나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를 선임하고 향후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노동위원회 사건을 공인노무사가 진행한 이후, 변호사가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에서 그 법률적인 판단을 받도록 하는 법률사무 취급 관행과도 비교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안은 행정사의 권한을 임의적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라며 "현재 행정사법은 타 자격사와 달리 업무범위가 명확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기존 규정을 명확하게 한정해석할 수 있도록 더욱 그 정교한 입법기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스스로 규정한 법규사항을 위반해 불법으로 변호사, 공인노무사, 세무사 등 타자격사 업무를 수행하거나 표시·광고하는 행정사의 사례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며 "실제로 변호사법, 공인노무사법 위반죄뿐 아니라 행정사법 위반죄로 처벌되는 사례까지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6년 9월, 행정안전부는 행정심판 대리권과 정책과 법제에 대한 자문권을 행정사에게 부여하는 행정사법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변협 등의 반대로 개정안 내용이 변경됐다.

이은성(변호사시험 4회) 변협 제1정책이사는 "행정사 등 유사직역제도는 과거 변호사 수가 극히 적었을 때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임시로 도입된 것으로 안다"며 "계속해서 행정사가 직역을 확대하려고 시도하는 건 로스쿨 도입 취지뿐 아니라 해당 자격제도 도입 취지에도 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후로 다양한 직역이 변호사시험 합격 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며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서 법률사무를 하고 싶다면 로스쿨에 진학해서 변호사가 되는 길이 열려있다"며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미 로스쿨을 통한 변호사 배출 수도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행정사 등 유사직역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유사직역 통폐합을 통해 대국민 사법접근성을 높이고 유사직역과의 갈등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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