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백 변호사
박종백 변호사

인간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들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 불린다. 우리 삶과 경제에 새로운 가치와 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이전의 방식과 시스템의 상당한 부분을 버리거나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혁신적 기술을 두고 대부분의 국가는 한편으로 혁신의 효과는 극대화하여 취하되 신기술 사용으로 인한 혼란과 위험들은 제거하거나 관리하기를 희망한다. 문제는 혁신장려와 위험억제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주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뾰족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을 주도적으로 개발, 활용하려는 국가간 경쟁도 존재하여 정책선택의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다. 특히 이런 기술들은 오픈소스 기반이고, 디지털 형태로 글로벌하게 쉽게 확산되는 성향이 있어서, 정책, 법과 규제가 정립되기 전에 법적 이슈와 분쟁이 먼저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알고리즘 형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의 생태계를 만든 권도형은 미국과 한국에서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되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스테이킹 서비스를 제공한 크라켄과 이더리움 등을 상장한 쿠코인(KuCoin) 같은 암호자산거래소에 대해서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제재를 가하려고 한다.

새 기술과 서비스가 우리에게 많은 효용과 가치를 준다고 하는데도 법률과 규제위반 이슈와 제재가 강해지는 듯해 혼란스럽까지 하다. 예로써, 여러 노드(컴퓨터)들이 데이터를 특정한 합의 알고리즘에 의하여 블록체인에 기록, 저장하면 사후 변경할 수 없게 되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막상 블록체인 기반 토큰과 증권형 토큰의 판매, 거래와 투자 관련하여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여러 규제가 가해지고 있다. 파괴적 기술이 구현하는 서비스와 사업이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혁신가치를 가져준다 하더라도, 제도와 규범 속에 안착되지 않으면 혁신의 실행은 그림의 떡에 그칠 수 있다. 혁신기술이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분야에서 혼란에 대처하면서도 혁신을 살리는 제도화를 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지나친 기술예찬론이나 이용자 보호 일변도의 태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

여기서 법률가들이 해야 할 역할은 많아 보인다. 새로운 기술 기반 서비스 제공이 현행법에 문제 되지 않도록 자문하고, 가상자산과 증권형 토큰에 관한 법등을 제정함에 있어서 전체 법체계에 정합적인 법안을 제안하며, 분쟁사건에서 기술과 법리에 대한 이해에 바탕한 균형 있는 결론에 기여할 수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법률체계가 명확해야 하고 좋은 법률가가 많이 필요하다는 바램과 푸념이 많다.

그럼에도 현실은 혁신기술과 관련되는 법률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들이 수요에 비하여 많이 부족하고 막상 변호사들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해야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법률가들이 혁신기술과 관련된 법률업무를 잘 처리하고 국가가 혁신의 효과를 취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

첫째, 법률가들이 기술의 기본작동구조는 물론 기술이 사회, 경제적으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고, 어떤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 이해를 쌓아야 한다. 요즘 기업과 법률수요자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하여 잘 모르는 변호사들과 일을 하는 것을 힘들어하거나 꺼려한다. 블록체인을 구성하는 기술들, 토큰과 가상자산의 종류, 탈중앙화 금융(DeFi), Play to Earn 같은 개념을 익힐 필요가 있다. 기본을 모르면 사람들이 가진 법률적인 고민을 듣고 논의의 장에 참여할 기회가 제한된다.

둘째, 법률 제도는 사회, 경제, 문화 현상에 비하여 후행적이고 그 점이 사회의 안정성유지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파괴적 혁신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법률가는 기존 제도나 현행법의 관점에만 머물지 않고 입법론이나 제도개선 방안도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영국이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자동차 산업에 뒤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던 적기법(Red Flag Act)은 마차가 중심인 기존 교통질서를 위하여 신 산업을 희생시킨 대표적 사례다. 보상의 방법으로 토큰을 지급하여 플랫폼을 활성화시키는 토큰경제나 탈중앙화 금융에 사고가 발생할 때에 현행 형사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가지는 순기능은 무엇이며 그를 제도화하기 위하여 어떤 법령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도 법률가들이 고민할 부분이다.

셋째, 그때 그때 이슈가 되는 개별 분야의 법령만 쫓지 않고 자산의 토큰화나 토큰경제의 확산과 관련하여 전체 법체계가 어떻게 보완, 정립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암호자산거래가 가지는 자금세탁위험방지나 가상자산이용자 보호법안만으로 혁신의 효과가 보장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민사법 체계에서 가상자산이나 토큰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필요하다. 워낙 전 세계적으로 처음 맞는 기술이 주는 전반적 제도변화의 시기여서, 아직 그런 법체계를 완성해 낸 국가는 없지만 국가마다 나름의 진전이 있을 것이고, 그 진전에는 뛰어난 법률가들의 노력이 큰 바탕이 될 것이다.

/박종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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