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근 변호사
김원근 변호사

필자가 미국에서 법률실무를 하면서 예전에 한국에서 일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게 무척 많은데 그중 몇 가지를 꼽는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 판례에서 확립된 기존의 것을 받아들이는데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명예훼손과 배임, 사기죄 등이다.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으로 보장된 말할 권리가 있는데 왜 하위법인 형법에서 명예훼손을 처벌하고 과연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혹은 기망행위와 같은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규정을 형법에 만들어 놓고 민사적인 성격의 행위를 형사처벌 하는 게 올바른 것인지 이러한 의심을 우리나라에서는 공부할 때나 실무 할 때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배우고 익힌 바로는 하위법인 형법에서 사실적시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서 말할 권리라는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형벌규정인 배임죄, 사기죄에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혹은 기망행위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적어 놓고 법조인들의 해석에 근거하여 처벌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형법의 기본원리인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상위법인 헌법의 기본 가치를 존중하기 위하여 형법에서 사실적시를 처벌하는 법률규정은 이미 없어졌거나 혹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적용하는 예가 없는 사문화된 규정으로 전락했는데 이는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관련된 판례와 법률규정의 역사를 보면 오랜 세월 동안 법조인들이 치열한 도전과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다. 배임죄는 개인 간의 법률 간의 분쟁을, 형법을 적용하여 해결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형법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아 형법에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민사 불법행위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사기죄의 기망행위를 각 행위별로 죄형법정주의에 맞게 세분화하여 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망행위라는 개념을 둘러싼 해석논쟁은 불필요하고 명문으로 정해진 형법규정을 적용할지 여부를 중심으로 실무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형법에서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사기죄의 구성요건이 여기에서는 여러 개의 조문으로 나누어서 세밀하게 구성요건을 정하고 있다. 형법은 적용하는 것이지 해석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게 죄형법정주의에 충실한 형법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와 같은 헌법위반의 내용을 가진 형법규정 혹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형법규정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일까. 나도 그랬지만 우리 법조인들의 사고방식이 기존의 것을 받아들이는데 더 익숙해 있고 도전하고 설득하는 과정에는 덜 익숙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라고 반문해 본다. 더 나아가서 그게 우리의 법조문화로 뿌리내려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위와 같이 의문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우리나라의 실무와 법률규정들은 무한하게 많이 있다. 다른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재판절차에서 집중심리제로 증거를 한꺼번에 제출하게 해서 최초의 변론기일 혹은 그 이후 한두 번 정도 연기된 변론기일에 케이스를 해결할 수 있는데 왜 번번이 무익한 변론을 열게 하고 결론을 내지 못한 채로 계속 진행을 하여야 하는지, 또 첫 변론기일을 시작하는데 기다리는 동안 당사자들이 증거조사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안 되는 것인지. 왜 정밀한 증거법을 마련하지 않고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한 재판원칙을 고수하는지 이런 것들이다.

또한 형사재판에서 양형과 선고를 동일한 재판부에서 하게 되면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권리가 침해되는 것은 아닌지, 형사사건에서 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하게 되면 이는 동일한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이해관계상충으로 피고인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인지 이런 의심을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것들이 각국에 고유한 법률문화 제도차이에서 기원한 것이라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절대 아니다. 법률의 기본원칙은 동서양 어느 곳에서든 같다.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 죄형법정주의는 형법규정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원칙이 그러한 것들이다. 자유롭게 말할 권리 등 국민들이 최우선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각국에 고유한 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동산 관련 혹은 가족법에서 전통적인 원리를 적용하는 것들이 일부 있을 뿐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법조문화가 의심과 도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가 미국에서 형사사건의 국선변호사로 선정되어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맨 처음 이런 교육을 받았다: 절대로 검사와 판사가 얘기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지 마라. 너희들의 이슈를 만들어서 도전하라.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들을 절대 놓치지 말고 의문점을 가지고 너희들의 논거를 만들어 문제를 제기하라. 좋은 논거를 제시하면 판사도 너희들을 존중할 것이다. 문제 제기하지 않고 기존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아무도 너희들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너는 쉬운 상대이니까.

/김원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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