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운영방식·직원 처우 등 놓고 일반직·변호사 의견 대립

변호사,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2018년, 변호사노조 설립

대법원 "조합원 출장소장, 지소장 등에 사용자성 인정 안돼"

변호사 부족 등 문제 '여전'… "변호사 채용 규모·처우 개선을"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전경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전경

최근 대법원이 대한법률구조공단 노동조합(위원장 장동준, 이하 ‘제1노조’)이 소속변호사 노동조합(위원장 신준익 변호사, 이하 ‘제2노조’)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 설립 무효확인 소송에서 "공단 변호사 노조는 근로자인 소속 변호사 등의 이익을 대표하기 위해 설립됐고, 그 설립 목적에 따라 활동하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제2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이 선고되던 날 제1노조는 제2노조의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1000시간을 인정하겠다는 공문을 정식으로 공단에 제출했다. 2019년부터 이어진 4년여간의 긴 소송전이 제2노조의 완승으로 끝난 셈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공단 내 일반직 근로자와 변호사 간 해묵은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지 법조계 눈길이 쏠리고 있다. 


● 변호사·일반직 갈등이 본질... 초유 '변호사 파업'까지 단행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인력 구성은 크게 변호사와 일반직으로 이원화 돼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공단의 상임임원 '정원'은 2명, 변호사는 162명, 일반직 517명, 서무직 159명, 무기계약직 32명이다. 실제 소송업무를 담당하는 변호사에 비해 일반직과 서무직이 훨씬 많다. 

제2노조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1988년 설립된 제1노조만 공단에 존재했다. 그러나 제1노조가 일반직·서무직에 대한 처우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속 변호사들의 목소리가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공단 변호사들은 '공단 소속 변호사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2018년 3월 5일 별도 노조를 설립했다.

제2노조는 곧바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 단위 분리 신청서를 냈지만,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기각 결정을 했다. 제2노조는 다시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해 같은해 6월 교섭단위 분리 결정을 받았다(중앙2018단위6).

하지만 '변호사의 처우' 등을 놓고 제1노조와 제2노조의 의견차가 첨예하게 불거지면서 갈등이 확산했다. 특히  2018년 공단 측이 △변호사의 계약직 채용 △비변호사의 사무소장 보직 허용 △비변호사에 의한 법률상담 강화 등을 추진한 것이 갈등을 폭발시킨 도화선이 됐다.

이전까지 공단은 변호사를 정규직으로만 채용했다. 또 법률사무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호하기 위해 "비변호사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한 변호사법 취지에 따라, 법률사무를 처리하는 공단도 지부장·출장소장·지소장 보직은 실제로 구조결정과 소송업무를 진행하는 변호사만 맡을 수 있었다.

나아가 법조인 수가 극히 적었던 시절에 어쩔수 없이 허용했던 '비변호사에 의한 법률상담'을 변호사 숫자가 급격히 늘고 있던 시기에 되레 확대하겠다는 방침은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제1노조는 "변호사들이 성과나 능력 검증 없이 기관장을 독점하고 있다"며 "변호사 자격이 조직을 이끄는 필요 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법률구조법 시행령에 따라 법률구조업무 수행 시 법률지식과 능력을 갖춘 상담직원을 둘 수 있으므로, 일반직이 법률상담을 하는 것도 위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반면 제2노조는 "공단이 임의대로 변호사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청년변호사 처우를 떨어뜨리고 양질의 일자리 확대라는 정부정책에 반하는 것"이라며 "변호사 자격자도 일반직으로 채용됐다면 법률구조법 제19조 등에 따라 제3자 소송을 대리하지 못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변호사법 제34조에 따라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를 고용해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해서는 안 되므로 어쩔수 없이 변호사가 지부나 지소를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2018년 2월 21일 논평을 내고 "일반직원이 공단 지소 소장까지 맡는 것은 사실상 법률사무소를 비전문가가 운영하는 셈이므로 변호사법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갈등이 극에 달하자 결국 제2노조는 2020년 2월 40일 넘게 파업을 단행했다. 변호사들이 단체로 파업을 감행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당황한 공단은 파업을 막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쟁의행위금지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들이 파업하자 공단 업무가 일시 마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공단도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소수노조인 제2노조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변호사와 비변호사 직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책추진은 지양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정무직으로 임명되는 공단 경영진이 다수의 말만 듣고 소수를 무시하며 완력으로 누르려다 실패한 사건"이라며 "변호사와 비변호사 직력의 갈등이 커지면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할 수뇌부가 일방적인 행보를 보였던 점이 아쉬웠다"고 전했다.  


● 변호사노조 설립 둘러싼 소송戰… 대법원 "지소장 등 사용자 아냐"

파업까지 단행했지만 제2노조가 공단에서 자리잡는 길은 쉽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 뿐 아니라 수많은 소송을 거쳐 설립 4년 만에야 법적 투쟁이 완전히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시작은 공단이 제2노조를 상대로 청구한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이었다. 출장소장과 지소장 등의 보직을 맡는 변호사는 '사용자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노조를 설립하거나 노조원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은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재판장 박성인)는 2021년 1월 15일 원고패소 판결하며 제2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출장소장과 지소장은 소속 직원 근태 관리 권한을 갖지만, 이는 상위 직급자에게서 근태관리를 받으며 하위 직급자에 대한 기본적 근태관리 권한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며 "출장소장 및 지소장 변호사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에서 제1노조와 제2노조의 주장
△ 노조설립 무효확인 소송에서 제1노조와 제2노조의 주장

공단이 패소하자 이번에는 제1노조가 다시 노조설립 무효확인소송을 냈다. 사측과 제1노조가 소수노조를 상대로 동시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법률구조공단 사례가 유일하다.  

제1노조는 "출장소장, 지소장의 보직을 부여받은 변호사들은 출장소, 지소의 최고 책임자로서 해당 출장소, 지소의 업무를 통할하고 소속직원을 지휘·감독한다"며 "이들은 노동조합법 제2조 제2호의 ’사용자’에 해당하므로 노동조합법상 그 설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제2노조는 "법률구조공단의 출장소, 지소는 지부의 산하기관으로 지부에 종속되어 있어 지부의 지휘․감독을 받아 사업을 진행할 뿐"이라며 "출장소장, 지소장의 보직을 부여받은 변호사들은 독자적으로 업무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 받지 못했으므로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대법원 민사3부(재판장 노정희 대법관)는 항소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출장소장이나 지소장은 소속직원의 업무분장 조정에 관한 전결 권한을 갖지만 현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구체적으로 분배하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라며 "소속 직원의 휴가, 출장, 조퇴, 외출 등 근태를 관리할 권한도 있지만 임금 및 소정근로시간의 결정과 같이 핵심적인 근로조건에 관한 결정 권한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권한이 출장소장이나 지소장에게 일부 부여됐다는 점만으로 출장소장이나 지소장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 "변호사를 '희소재'로 취급하는 공단의 인력구조 개편 시급" 

대법원 판결로 제2노조 설립이 공식 인정되면서 변호사 노조가 노조법상 노조냐, 아니냐에 대한 다툼은 더이상 제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이제 그간 깊어진 갈등을 해소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법률지원이라는 공단의 설립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6월 27일, 공단과 제2노조는 경북 김천혁신도시에 위치한 공단 본부에서 '공단 재무구조 건전화를 위한 노·사 협력 상생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라 제2노조는 공단의 재무구조 건전화를 위해서 2년간 처우개선비를 동결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2025년부터 2031년까지는 처우개선비 인상시기를 2년씩 늦추기로 했다.

올해 초에는 4년 만에 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이번 단협에는 계약직 변호사들을 매년 일정비율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 김진수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왼쪽)과 신준익 공단 제2노조 위원장이 2022년 6월 27일 ‘공단 재무구조 건전화를 위한 노.사 협력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사진: 대한법률구조공단 제공)
△ 김진수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왼쪽)과 신준익 공단 제2노조 위원장이 2022년 6월 27일 ‘공단 재무구조 건전화를 위한 노.사 협력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사진: 대한법률구조공단 제공)

신준익(사법시험 46회) 제2노조 위원장은 "단체 협약을 통해 계약직 신규 변호사들의 불안한 지위 해결을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며 "법률구조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신규변호사 처우를 지금보다 향상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변호사를 '희소재'로 취급하는 공단의 인력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단이 설립된 1987년에는 한 해에 배출되는 법조인 수가 300명을 하회했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직원에 의한 법률상담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법률구조법도 이같은 상황을 반영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36년이 흐른 지금은 매해 1700명의 변호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공단은 여전히 설립 당시의 인력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공단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시장에 넘쳐 과거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채용할 수 있는데도, 변호사 채용 규모를 늘려 소송대리 뿐 아니라 공단 내에서 이뤄지는 법률상담 업무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인력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공익법무관 수 감소와 맞물려 2017년 263명이던 공단 소속 변호사 숫자는 2019년 12월 198명, 2023년 3월 132명으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제2노조는 그동안 공익법무관 감소폭을 고려하여 송무인력 부족을 대비해야 한다고 적극 요구했으나, 내홍과 예산 문제 등으로 인력 증원이 미뤄지고 있다. 

신 위원장은 "정원 및 예산 문제로 당장 변호사 채용을 늘릴 수 없다면 직원이 사건을 접수한 이후에야 변호사가 의뢰자와 대면하고 사건을 검토하는 업무처리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 재판까지 이어질 수 있는 법률상담의 경우에는 변호사가 법률상담 단계부터 관여하여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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