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준 변호사
이강준 변호사

1. 비판 여론에 휩싸인 ‘근로시간 개편안’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연일 쟁점이다. 주 최대 69시간까지 가능한 근무 방안을 내놓았다가 비판적 여론이 거세지자 입장을 바꾸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변경하면서, 주 52시간제를 최대 69시간까지 늘리는 방안을 밝혔다. 다만 장시간 근무하면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근로자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취지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종속’ 관계이므로 ‘근로자의 선택권’이 작동되기가 극히 곤란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등으로 바쁜 기간에 연장근로를 하는 것은 사용자의 필요에 의한 것이지, 근로자가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장기 노동’을 하면, 과연 ‘장기 휴가’를 사용할 수 있을까? 기존의 법정 휴가도 눈치가 보여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정책에 다수의 여론은 비판적이다. “지금도 일주일 이상 휴가 쓰면 눈치를 받는데, 어떻게 한 달을 쉬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푸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현재 근로시간도 이미 많아서 ‘건강권’ 침해 우려가 크며, 특히나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는 위와 같은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많다. 또한, 회사 일이 바쁠 때만 바쁘고 한가할 때 일이 없는 등 기간별로 나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즉,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는 정부의 구상은 현재의 근로 환경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따라서 ‘1달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노동 환경이 우선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2. 정당한 보상 체계의 확립 필요

정부 구상에 찬성하는 근로자들도 ‘조건부 찬성’이 많다. 즉, 어차피 야근을 많이 하는 현실에서 연장근무수당을 제대로 잘 챙겨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현 제도에서도 바쁠 때는 어차피 주 52시간 이상 일하는데, 법정 최대 근로시간이 늘어나면 오히려 (주 52시간제로) 못 받았던 수당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 근무시간이 늘어나면 자발적으로 더 일하고 더 많이 벌 수 있어 좋을 것 같다는 견해들도 제법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보상 체계’가 작동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노동 현실이 그러한지는 다소 의문이다. 많은 기업에서 포괄임금제 등을 통해, 연장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가로막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이른바 ‘공짜 야근’을 근절하기 위해 관리 감독을 강화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을 자유롭게 신고할 수 있도록 익명 신고센터를 신설하고, 포괄임금 오남용 등 불법 의심을 받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기획 감독을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포괄임금 등 오남용에 대한 감독으로는 부족하고, 포괄임금제 자체를 아예 금지하여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포괄임금제는 정당한 연장근로수당을 가로막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3. ‘고정OT’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포괄임금제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만 허용된다. 이러한 포괄임금제와 구별되는 것으로 ‘고정OT’ 제도가 있다. 고정OT는 월 20시간 등 일정한 시간의 연장근로수당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월 20시간 등 합의된 시간에 미달하더라도 약정한 연장수당을 지급하고, 합의된 시간을 초과한 경우에는 차액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포괄임금제와 고정OT는 이와 같이 구별되므로, 고정OT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포괄임금제보다는 덜 하겠지만, 고정OT는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근로자에게 원래 책정된 임금 총액 중 일부를 ‘고정OT’라는 항목으로 나누어 지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어차피 지급하여야 할 월 급여에‘고정 시간외수당’으로 월 20시간에 해당하는 수당을 미리 지급한다고 항목을 넣기만 하면, 그러한 야근에 대해서는 추가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경우에는 총급여에서 ‘기본급’은 그만큼 적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약정된 시간을 초과하여 지급해야 할 연장근로수당마저도 낮아진 기본급을 기준으로 지급하므로, 사용자에게만 유리하고 근로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4. 정당한 보상과 휴가 담보책 마련해야

많은 여론 수렴과정 등을 거치면서, 근로시간 개편안이 성공하려면 정당한 휴가·보상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것에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대통령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임금과 휴가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킬 담보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를 위해서 ‘포괄임금’ ‘고정OT’ ‘연차 소진 부조리’ 등 정당한 보상을 가로막는 수단들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사업주가 연장근로 보상을 휴가로 주겠다고 한 뒤 회사 사정을 내세워 휴가 사용을 막을 수 있으니 이에 대한 규제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즉, ‘사업주 규제’가 필요하다. 

현재까지의 방안에는 사업주 규제가 빠져 있어, 실효성이 적은 대책이라는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근로시간 개편은 필요하다. 현행 제도는 ‘경직’된 근로시간으로 업종과 근무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규율될 필요성도 크다. 그러나 근로시간 개편안은 근로시간의 과도한 확대 우려, 공짜 야근 및 휴가의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부족하다. 근로시간 개편안이 원래의 계획보다 다소 늦어지고 있으나, 정당한 보상과 휴가가 확실하게 담보되는 실효적인 대책이 되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근로자의 건강권 등이 조화를 이루게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이강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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