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변호사 /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김주영 변호사 /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의 8년 소송이 ‘담당 변호사의 불출석’으로 허망하게 끝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해당 변호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거세게 일었다. 더구나 당사자인 권 변호사가 재판에는 불출석하면서 주요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온 사실, 항소취하사실을 5개월 가까이 의뢰인에게 숨긴 사실, 해당 사건이 사회문제로 비화한 이후에도 자신이 임의로 정한 금액을 3년에 걸쳐 갚겠다는 각서를 쓴 후 연락 두절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정적인 여론은 더욱 심해졌다. 이렇게 3번씩이나 불출석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변호사가 부실변론을 할 위험성은 상존한다. 불변기간을 놓치거나 법정에 불출석하는 전형적인 경우 외에도 사실관계나 법률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를 게을리하는 것, 의뢰인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아 의뢰인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기회를 잃도록 하는 것, 의뢰인을 속이거나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것, 잘못된 법적 조언으로 손해를 입히는 것, 필요한 보전처분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는 것도 부실변론에 속한다. 변호사법이 규정한 ‘성실의무’를 위반하여 변협의 징계를 받은 사례는 많지 않지만, 이들 사례는 수임료 미반환 등 금전적 문제로 이어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의뢰인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부실변론에 대한 책임추궁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변호사들은 달라진 직업 환경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은 ‘무늬만 로펌’일뿐 구성원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소위 ‘별산제(別産制) 법무법인’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에 해당한다. 이번 사건이 터진 후 권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의 분사무소에서는 권 변호사가 법무법인 주사무소에서 탈퇴하였으며, 해당 분사무소는 권 변호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블로그 공지를 분사무소 대표변호사 명의로 올렸다. 하지만 권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은 구성원 3명으로 설립된 법무법인으로서 비록 주사무소와 분사무소로 나뉘어 근무한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 전원이 법무법인의 운영 전반에 걸쳐 무한 연대책임을 지기에 분사무소가 권 변호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더구나 분사무소 대표변호사라고 칭한 변호사는 해당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도 아니다. 

적어도 ‘법무법인’이라는 형태로 로펌이 운영되려면 아무리 작은 규모라고 하더라도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이나 수임제한 위반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건 수임에 관한 정보를 관리하고 구성원들 간에 이를 공유해야 하며, 법률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사건관리 시스템이나 횡령 등을 방지하기 위한 내부통제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실제로는 구성원 각자가 아무런 통제 없이 개인 변호사처럼 활동하면서도, 법무법인이라는 ‘간판’만 이용하려는 별산제 법무법인은 구성원들에게나 의뢰인들에게나 매우 위험하다. 실제로 별산제 형식으로 운영되는 로펌이 100억 원 대의 소송을 수행하던 구성원 변호사를 제명했음에도 계속 로펌 이름으로 사건을 맡게 하고 승소 후 40억 원의 수임료를 지급했다가 수십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은 사례도 있었고, 구성원 변호사가 구성원 회의를 거치지 않은 채 에스크로 계약을 체결했다가 의뢰인에게 피해를 입혀 법무법인이 17억 원을 배상하게 되자 결국 해산한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5일 기준으로 전국에 법무법인은 무려 1467개나 되고, 그에 소속된 변호사 수는 1만 4500명이 넘는다. 이 중 상당수가 별산제인 것으로 추정되며 최근에는 ‘분사무소’ 제도를 활용하여 사무실 공간도 각자 따로 운영하는 법무법인이나 전국 각지에 분사무소를 설립한 후 네이버 등에 광고비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쓰는 별산형 네트워크 로펌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으로서 의뢰인들을 오도하고 법률서비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번 사건이 변호사업계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한 엄중한 사건이라 보고 협회장 직권으로 조사위원회에 회부를 준비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단순히 어느 변호사 한 명의 일탈로만 보아서는 아니 된다. 이번 기회에 법률 플랫폼, 네트워크 로펌, 별산제 로펌 등 우리 법률서비스 시장에 있는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후 분사무소 개설요건을 강화하거나 광고 규제를 강화하는 등 제도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법무법인들이 그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교육과 경영지원에도 나설 필요가 있다.

/김주영 변호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