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효정 변호사
배효정 변호사

필자는 10년 차 변호사이다. 3년 전부터 부산지법에서 조정전담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의뢰인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판례와 법리를 바탕으로 서면을 쓰고,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것이 소송대리인으로서 나의 일이었다면, 최근 3년 동안은 조정실에서 여러 당사자들을 만나고 얘기를 듣는 것이 ‘조정위원’으로서 나의 일이 되었다.

조정전담변호사로 근무하고 꽤 오랫동안은 변호사로서 가지는 내 식견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조정’을 만나며 곤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선생님, 서면에서 언급하신 대로 3년의 소멸시효가 경과하였는데… 지금은 원고에게 3000만 원을 변제하시겠다는 말씀이시죠?” “선생님, 상대방에게 확정된 형사 판결이 있는데 손해배상금을 받지 않고 이 사건을 끝내시겠다는 거죠?” “선생님, 상대방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소를 취하하신다는 거죠?”

변호사로서 그동안 쌓아 온 판례와 법리의 선에서 이해되지 않은 사건의 결말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이해한 결론이 조정에 참가하고 있는 여러 당사자들의 결론과 맞는지 재차 확인을 구했다.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에 관한 조정을 마친 날이면 ‘그 당사자는 그대로 재판을 하러 갔으면 승소할 것이 뻔한데, 왜 그런 손해 보는 조정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퇴근길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변호사들은 법률 전문가이고 그 업무의 특성상 법적 분쟁의 상황을 바탕에 깔고 사건에 임한다. 따라서 그 치열한 법적 분쟁의 상황에서 판례와 법리를 창과 무기로 하여 하나하나의 승패를 쌓아가는 것, 그리고 그 상황에 전투자로 참가한 대리인으로서 승패를 양보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이상한’ 조정 사건들을 겪으며 깨달은 것은 -특히 민사사건의 경우- 소송이든, 조정이든 ‘법적 분쟁’은 인간의 삶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조정실의 일부 당사자는 법적 분쟁 그리고 그 분쟁에서의 승소 판결보다 더 소중한 인생에서의 가치를 우선하자고 결정할 때, 그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법적 분쟁을 포기하는 순간이 생긴다. 아주 가끔은, 그렇게 법적 분쟁에서 판례와 법리를 넘어서, 사람들의 마음이 치열했던 사건의 결말을 이끄는 경우가 발생한다.

/배효정 변호사
부산지법 조정전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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