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절 해직 교사 출신 父... 사회정의 중시 '가풍'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읽으며 '공존과 협치' 떠올려

인생 화두는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사회 만드는 것"

국회 비서관 시절 '수제맥주 규제 개선'에 큰 기여

서울시 감사담당관실 근무... 입법·행정 경험 갖춰

"어깨 무거워... 입법부와의 원활한 소통창구 될 것"

"엄마, 우리는 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거야?" 
이상영(변호사시험 2회) 변호사가 질문을 던진 건 8살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막 학교에서 ‘가나다라’를 배우고 있던 시기다. 당돌한 질문에 어머니는 말문이 턱 막혔다. 

"솔직히 저는 이 질문을 그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툇마루에 앉아 뭔가 이야기했던 기억은 어렴풋이 있는데. 어머니가 그때 제가 이런 질문을 해서 많이 당황했다고 여러 번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생각할 따름입니다."

아버지는 해직 교사였다. 4.19 혁명 당시 고대생 신분으로 시위에 앞장섰던 부친은 이후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시국 성명을 내자, 이들을 끝까지 옹호하다 파면당했다. 오랜 소송 끝에 복직해 명예를 되찾았지만, 아버지는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셨다고 한다. 이 변호사가 줄곧 인생 화두로 삼아온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이러한 가풍 아래 만들어졌다. 그리고 법학과에 진학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와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회를 좀 더 밝게 바꾸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규범력과 강제력을 가진 법을 공부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도 이 변호사는 주로 도서관에 파묻혀 살았다. 책벌레였던 그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투키디데스가 지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해외 출장을 가며 손에 들고 다녀 주목받은 바로 그 책이다. 

"전쟁사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지만 이 책의 본질은 국제 정치입니다. 우리가 알던 찬란한 그리스 문명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두 그리스 강대국이 서로 치열하게 다투면서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분쟁 원인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는데, 저는 두 나라가 서로를 두려워하고 불안하게 여기는 마음이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우위에 서기 위해 국지전을 벌이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나라(민주파와 과두파 모두가)는 아예 상대를 재기 불가능하게 만드는 말살 정책으로 나아갔어요. 그 결과 그리스 전체가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상호 공존하는 방식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것은 제가 유년 시절부터 가져온 질문,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던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다. 졸업 후에는 한 기업에 들어가 사내변호사로 활동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려고 변호사가 된 게 아닌데"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조금 더 공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던 찰나, 때마침 홍종학 의원실에서 낸 정책 비서관 채용 공고를 보게 됐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홍 의원은 경제 민주화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그는 미련없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국회로 진출했다.   

"정책 비서관은 상임위원회 질의서 작성 및 행정부 대상 자료요구, 법안 검토·발의와 예산심의 등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국회의원에게 정무적이지 않은 게 없지만, 상대적으로는 정치색이 덜한 업무이고,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가 강점을 보일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민생에 관심이 많았던 이 변호사는 국회 근무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수제맥주 규제 완화’ 사업을 꼽았다. 당시 의원실 역점 사업 중 하나였던 수제맥주 활성화 정책은 일제 강점기에 초안이 마련된 시대에 뒤떨어진 주세법 규정을 완화·보완하여 영세 기업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당시 법제로는 대기업에 세제 혜택이 몰리고, 기술력이 좋은 영세 업체가 성장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산업 구조를 막을 수 없었다.  

"소규모 양조업체가 대규모 자본과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생산하는 맥주를 이른바 ‘크래프트 비어’라고 부릅니다. 제가 비서관으로 입사하던 당시만 해도 수제 맥주는 지정된 장소에서 탭(tap)에서 따라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불법일 정도로 엄격한 규제를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마련된 주세법 규정들이 오로지 세금 탈루를 막는 데 방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술을 외부로 가지고 나갈 수도 없으니 독일의 ‘옥토버페스트’같은 축제는 기대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개정안을 꼼꼼하게 작성하는 한편, 직접 맥주 50종을 가져와 의원회관 홀에서 시음회를 열고 개정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시행령이 합리적 수준으로 개정되었고 누구나 쉽게 캔입 맥주를 구매하고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편의점에 가서 이러한 크래프트 비어를 볼 때마다 혼자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웃음)."

△주세법 개정 논의 당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수제 맥주 시음회 현장 모습. 이상영 변호사가 비서관 당시 기획했던 행사다
△주세법 개정 논의 당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수제 맥주 시음회 현장 모습. 이상영 변호사가 비서관 당시 기획했던 행사다

규제 개선이 이뤄진 후 그의 활약을 들은 몇몇 식당에서 이 변호사에게는 맥주값을 받지 않을 정도로 고마워했다. 그는 당연한 일을 했는데, 이렇게 과분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깊은 의문을 품었다. 

"이미 나라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내가 국민분들의 감사를 받는 게 합당한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진작에 이런 일을 했어야 하는데, 우리 정치가 실생활과 너무 유리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팠어요." 

이후 원내대표실로 자리를 옮긴 이 변호사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 국정감사 40일 동안에는 기본적으로 2~3시에 퇴근한 다음 오전 7시에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힘들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오랜 꿈이었다. 이 변호사는 “내가 언제 또 국록을 받아 보겠느냐”는 심정으로 한풀이하듯 실컷 일했다고 한다. 아쉬움은 없었는지 물었다. 

"법안을 잘 만들고 정책질의를 잘한다고 해서 선거에서 꼭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점, 행정부에  비해 입법부의 정책 역량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 여당이 다수당일 때 야당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점 등이 다소 아쉽습니다."

국회를 나온 그는 국민연금공단에 잠시 근무하다 서울시 감사담당관실로 옮겼다. 감사담당관실은 시청과 산하기관, 구청 및 수탁·용역사업체에 대한 감사 권한을 행사한다. 이 변호사는 25개 정도의 감사팀에 대해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결과보고서를 검토하는 역할을 맡았다. 감사 활동을 심의·재심의하는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지적질을 잘하는지 지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근무 당시의 소회를 묻자 이 변호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법률전문가를 행정부에 적극 영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치 행정의 원칙에 따라 모든 행정업무는 법률에 근거해 이뤄지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들이 행정부에서 커리어를 지속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관료 사회가 공채 중심의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폭넓게 문호를 열고 변호사 인력을 장기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최근 대한변협은 정무(政務) 이사직을 신설했다. 입법부와의 소통 저변을 넓혀 변호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협회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다. 이 변호사는 협회의 1호 정무이사에 내정, 발탁됐다. 다만 아직 법무부 인가가 나오지 않아 현재 그의 공식 직책은 정무특별보좌관이다. 그는 "무거운 자리임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거듭 말했다.  

"제52대 집행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대외활동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정책과 실력, 사회적 관점을 가졌다고 해도 실제 입법을 하고 집행을 하는 곳은 국회와 정부입니다. 따라서 입법부와 행정부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 최고의 법률 전문가들인 변호사의 사회적 기여와 역할을 확대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국회 보좌진과 공공기관, 행정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국회나 정부와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맡을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입법과 행정 컨설팅 업무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민의가 전달되고 집행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로비스트'라고 하면 누군가의 청탁을 받고 음험하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의회를 상대로 입법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로비스트가 합법적으로 양성화되어 있습니다. 변호사법의 취지도 이러한 점과 맥락이 닿아있습니다. 암암리에 불투명하게 이뤄졌던 일들을 법률전문가가 양지에서 수행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동안 기득권을 누리지 못한 분들도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공론장에 내어 도움을 받는 건 민주적 소통 방식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에 투신하고 싶습니다" 

/글= 왕성민 편집위원, 사진= 우문식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