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등, 12일 '디디에 레인더스 EU집행위 법무청장' 초청강연

일정규모 이상 EU 역내외기업에 적용… "중소기업에 지원제공"

정부 권고에도 인권실사 '미미'… "제도화 및 인프라 구축 필요"

△ 디디에 레인더스 EU집행위원회 법무청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디디에 레인더스 EU집행위원회 법무청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최근 EU공급망에 '인권·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추진하면서, 우리나라도 이를 법제화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권·환경 실사'는 제품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공급 과정에서 관련 회사들(공급망)에 인권 및 환경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확인하는 제도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디디에 레인더스(Didier Reynders) EU집행위원회 법무청장(EU Commissioner for Justice) 초청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는 국회ESG포럼(공동대표 국회의원 김성주, 조해진),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참여단체: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환경운동연합 등)와 공동 주최했다.

벨기에 변호사 출신인 디디에 레인더스 법무청장은 EU 집행위원회에서 법무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벨기에 재무부장관,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 부총리 등을 지냈으며, 법무청장으로서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 마련을 주도했다.

이날 레인더스 청장은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사법제 도입의 필요성과 과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실사 결과)문제가 있는 기업을 유럽에서 철수하도록 유도하는 게 (실사의) 목적이 아니"라며 "이러한 (문제가 있는) 국가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기업은 자발적으로 인권실사를 적용하고, 일부 EU 회원국에서 인권실사를 의무화 하는 내용으로 법안이 만들어졌다"면서도 "더 본격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하도록 인권실사 의무를 입법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EU이사회가 인권실사를 의무화하는 '지속가능성 실사에 관한 법률'을 채택하면 EU 회원국에서도 국내법으로 적용된다"며 "순조롭게 논의가 진행되면 2024년에는 이 법안이 승인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현재로부터 5년 뒤에는 기업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디디에 레인더스 EU집행위원회 법무청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디디에 레인더스 EU집행위원회 법무청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지속가능성 실사에 관한 법률'에 대해 "일종의 치외법권이 되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공급망 실사법은 EU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EU에서 영업 중이라면 국내 기업 역시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레인더스 청장은 "법안을 모든 기업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EU 기업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대기업이 대상이 될 것"이라며 "중소기업까지 범위를 확대하진 않을 예정이지만 EU에서 영업 중이면서 매출 규모도 상당하다면 적용 범위에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기업이 해외활동을 하지만 EU에 진출하지 않으면 이 법을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치외법적으로 관할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라 많은 이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려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또 "(법의 영향을 받는 기업이라면)환경이나 인권에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도록 해야 한다"며 "공급망의 일원이면서도 대기업과는 멀리 떨어진 자회사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했다.

공급망에 포함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문제가 우려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는 "공급망 내에 문제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면 (대기업이) 직접 나서야 한다"며 "법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공급망에 포함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자문, 경제적 지원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임성택 변호사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디디에 레인더스 EU집행위원회 법무청장 초청 강연회’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임성택 변호사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디디에 레인더스 EU집행위원회 법무청장 초청 강연회’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토론에서는 인권실사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우리나라에도 인권실사를 입법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임성택(사법시험 37회)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한국어로 '실사'는 '조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인권실사(Due Diligence)'라고 하면 부정적인 뉘앙스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 영문 뜻은 '적절한 근면함'"이라며 "이는 기업이 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이고, 여기서 조사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유럽을 필두로 실사를 의무화 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고, ESG는 주류가 되고 있다"며 "공급망 선택 또는 무역의 기준으로 ‘인권’이 등장하고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이를 위기로 볼 것이 아니라 기회의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인권선진국이어서 이는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실사를 권고하고 안내했지만 실제 진행은 미미하다"며 "우리나라도 인권실사를 법제도화하고 관련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는 이미 인권실사를 제도화 한 국가가 많다. 프랑스는 2017년 상법을 개정해 인권실사를 의무화 했다. 시민단체가 기업에게 인권실사를 요구할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원에 제소도 할 수 있다. 독일은 2021년 ‘공급망 기업실사법(Act on Corporate Due Diligence in Supply Chains)’을 제정해 인권실사를 의무화 했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최대 연매출의 2%까지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임혜령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