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근 변호사
손용근 변호사

오늘은 다소 생뚱맞은 기분으로 기본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왜냐하면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재판에 관한 것이다. 재판은 공정하면서도 신속해야 한다. 두말이 필요 없다. 너무 늦은 재판은 아무리 공정하더라도 전혀 효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 소송절차의 기본을 설명하고 있는 민사소송의 모든 교과서에는 재판의 이상(理想)인 공평과 적정, 신속과 경제가 누누이 설명되어 있다. 누구도 이의하지 아니한 기본명제이다. 그런데 공정과 신속은 상호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공정에 집중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쉽고, 신속을 강조하다 보면 공정한 결론을 얻기가 어렵다. 재판은 이 두 가지가 상호 잘 조화되는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것, 법조인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지난날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이상적인 재판을 하는 나라라고 자부하던 나라가 있었다. 일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일본의 재판이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듣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신속과 관련된 문제이다. 아주 가액이 큰 민사소송이 제기되면 그 결론을 얻기까지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아예 법정 밖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을 꾀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심지어는 ‘야쿠자해결론’이라고 하여 양쪽 폭력배가 나서서 협상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한마디로 ‘재판에 대한 조롱’이다. 물론 반론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과장된 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도 공정과 신속의 재판에 관한 한 ‘세계적인 모범국’이라고 자부하던 때가 있었다. 또 그렇게 인정받기도 하였다. 1980년 이래 법원에 30년 이상 근무하였던 필자가 직접 경험하기도 하였고, 그렇게 평가하는 글들을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염려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2010년 이래 지난 10여 년간 법원의 재판에 급격히 공정과 신속을 잃어 가는 체험이 많아진 것이다. 재판현장에서 그와 같이 느끼는 구체적 지적을 변호사들로부터 계속 듣기도 하였다. 그에 관한 글들은 더 여기저기에서 눈에 뜨인다.

재판의 공평이나 적정과 관련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근래의 글들은 ‘김학의 전 차관 관련 사건’ ‘곽상도 전 의원 사건’ ‘윤미향 의원 사건’에 관한 것이 많았다. ‘무너진 법치’라든가 ‘AI판사도 선고유예를 하였을까?’ 또는 ‘김명수 대법원의 초라한 레거시’ 등등 민망한 글들을 읽었다. 당혹감이 지금도 마음을 흔든다.

‘신속이 무너진 재판’에 관한 글들도 많다. 법조의 경험이 많은 분들의 지적 가운데 늦어진 재판에 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단순한 재판 현장의 감성적 느낌만이 아니다. 관련된 글 가운데는 재판지연의 문제가 이제는 ‘중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는 단정적인 표현도 있다. 그러한 지적에 상당히 정확한 분석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글도 있다. ‘재판의 실패,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글이다. 상당히 충격적인 글로 생각된다. 현직 고법판사가 썼는데 재판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글쓰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그런 글을 발표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오직 재판의 신뢰회복을 염두에 둔 사심 없는 동기에서 고해성사(?)의 마음으로 검토하고 발표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그 글에는 두 개의 표와 세 개의 그래프가 있는데 이것들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의 재판지연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거의 반론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 생생함의 증표로서 표와 그래프의 내용을 요약하여 원용한다.

표Ⅰ은 1심 ‘민사합의 처리건 수’에 관한 것이고, 그래프Ⅰ은 ‘1심 민사합의 사건처리기간’에 관한 것이다. 그래프Ⅱ는 ‘1심 민사합의 사건 중 2년 이상 미제사건 추이’이고, 그래프Ⅲ은 ‘형사합의사건 처리기간’에 관한 것이다. 민사합의 미제분표지수가 표Ⅱ로 생각되는데 표Ⅱ 표시는 누락되어 있다.

그래프 3개를 보면 그 즉시 재판의 지체현상을 직감하게 된다. 1심 민사합의 평균 처리 기간이 2017년에는 294일이었는데 2021년에는 369일로 되어 있다. 1심 형사합의 평균처리기간은 구속사건의 경우 2017년에는 118.4일이었는데 2021년에는 138.3일이고, 불구속사건의 경우 2017년에는 168일이었는데 2021년에는 217일로 되어 있다.

민사합의 사건 미제건수는 2016년에 3만 4160건이었는데 2021년에는 4만 7720건으로 늘어났다. 2022년에는 3만 7849건으로 줄었으나, 그 이유가 사물관할의 변경 때문이라는 설명이 부기되어 었는데 사물관할을 2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변경한 결과라는 것이다.

2년 6개월이 넘은 장기미제사건은 2016년에 1231건, 2021년에는 2836건, 2022년에는 3512건인 것으로 되어 있다. 2년을 기준으로 하면, 2016년에 2355건, 2021년 5113건, 2022년은 6065건이 된다. 6년 사이에 약 260% 증가를 보여 주고 있다.

형사사건 관련 그래프는 없으나, 1심 형사합의를 기준으로 한 재판지체의 설명이 추가되어 있기도 한다. 2017년 1만 9587건(피고인 수 기준)에서 2021년 1만 8769건으로 접수가 줄었는데도 미제는 2017년 8993건에서 1만 2630건으로 약 40%가 늘었고, 2년 초과 사건은 398건에서 735건으로 약 80%가 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소위 말하는 악성미제가 단순한 미제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증가한 것이다. 쉬운 사건만 처리하고 오래되고 어려운 사건은 미루는 재판이 가장 걱정스럽다는 지적이 따갑게 다가온다.

그 글에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관한 언급도 있다. 법원 당국이 재판지연의 현황파악과 그 대책을 세우지 아니한 법원당국자의 침묵 등이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최종 사법행정권자가 법원의 재판 현황을 정확히 알았는지,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대책은 수립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하였다.

필자의 견해로는 판사라는 직위에 대한 사회적 인정감의 하향과 그에 따른 재판에 대한 사명감 저하의 법원 내부 조류, 더불어 재판의욕을 상실시키는 결과를 낳은 제도의 깊은 검토 없는 시행, 무엇보다 사건처리에 관한 ‘전체적인 면밀한 분석과 애정 어린 독려가 결여된 법원행정의 시행’이 그 중요원인라고 생각한다.

과거 법조인 귀족시대의 사명감이나 열정적 사건처리를 법조인 대중시대가 된 지금에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재판의욕을 고취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법원 당국자가 연구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해당 글에서는 재판의 실패라고까지 단정하면서 재판실패에 대한 반성과 국민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까지 적고 있다.

필자로서는 실패를 앞두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법원에 대한 애정을 남기는 표현을 쓰고 싶다. 지금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시비도 많으나, 신속한 재판에 대한 논란이 더 많다. 신속의 문제 위험지수가 도를 넘었다고 본다. 이에 대한 시급한 회복, 적어도 2000년 이전의 재판속도 정도는 시급히 회복되어야 한다. 사법당국자들께 빨리 대책 마련하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 9월 퇴임을 앞둔 대법원장의 사법부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종합검토를 하기 바란다. 그래서 새로 사법부의 수장이 되신 분의 어깨가 가볍게 되기를 희망한다.

세대와 계층 간, 이념과 이념 간 갈수록 극단적 대립만 심해지고 있는 요즈음의 우리 사회, 사법당국이 사회유지 기본조직으로서 그야말로 기본을 지켜야 사회의 기본도 지켜질 것이다. 기본이 무너지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 ‘신속한 재판’이라는 재판의 기본원칙, 이것은 법원의 기본을 지탱하게 하는 말 그대로 기본원칙이다. 이것부터라도 조속히 회복하자.

끝에 몇 가지 더 적는다. 역시 기본적인 말들이다.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27조 제3항).”
“사법은 신속해야 그 향기를 잃지 않는다. 지연된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법 격언).”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때로 정의 자체보다도 중요하다(George Wickersham).”

다시 강조한다. ‘신속한 재판’. 2023년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우선 과제라는 따가운 지적, 공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화급한 과제임이 명백하다. ‘시급하다’. 시급하다는 끝말, 오늘의 글 내용과 관련하여서는 전혀 생뚱맞은 말이 아니다.

/손용근 변호사
前 사법연수원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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