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혜 대한변협 대변인 인터뷰

학창시절 미국과 한국 오가며 너른 시각 갖춰... 영어 능통

국회의원실 입법보조원 경험 계기로 법학전문대학원 진학

로스쿨 재학중 미스유니버시티 대회 출전... '2등' 선정 영예

사모펀드·다국적 기업 사내변호사로 첫 발... 기업금융 '관심'

해외법제 수출 등 직역확대 '김영훈號 '합류... 대변인 '긍지'

한국여성작가회화 공모전 입선... "그림은 나와의 대화 시간"

"VC·PE 경험 살려 국내 기업 돕고파... 동반자 같은 변호사로"

△신은혜 변호사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신은혜 변호사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붉은 배경의 ‘팝아트’ 스타일 그림에 묘한 공백이 자리한다. 수묵화에 담긴 여운과는 결이 다른, 생기발랄한 공백이다. 배경을 가로지르는 굵고 진한 선에 담백하고 깔끔한 화가의 성품이 묻어난다. 

"디테일한 터치가 많은 그림보다는 단색 추상화를 즐겨 그립니다. 채색을 자유롭게 구현하면서 고유한 스타일을 정립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색감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자연의 질감을 캔버스에 옮겨놓고 그 광대함을 체험하고 싶은 욕망과, 현상을 비틀어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 마음속에서 교차하곤 합니다."

직접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 신은혜(변호사시험 8회) 변호사는 남다른 구석이 많다.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에 선뜻 뛰어들어 깜짝 놀랄만한 성취를 거두는가 하면, 자신의 업적에 얽매이지 않고 홀가분하게 떠나기도 한다. 이지적이고 냉정한 편이지만, 어느 순간 뜨거운 열정을 쏟아부으며 과업에 몰입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미국의 미시간 앤아버(Michigan-Ann Arbor)라는 작은 동네에서 살았는데, 북부라서 눈이 정말 많이 옵니다. 눈부시게 하얀 설원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눈싸움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감각과 시야가 트인 것 같습니다. 상투적으로 표현한다면 ‘글로벌한 시각’을 갖게 됐다고 할까요(웃음)"

학창시절 해외 경험은 신 변호사에게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 첫째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바이링구얼(bilingual)이고, 둘째는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입체적인 시야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서로 다른 교육 시스템을 몸소 겪었다. 이는 국내 입시 제도를 둘러싼 다층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그가 교육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저의 배경 때문이었을까요? 학부에서도 다문화 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국제 학교와 외국인 학교, 탈북민 학교 등을 찾아 수업을 참관하고 실습도 하면서, 국내에도 다양한 교육환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덕분에 양질의 교육 인프라를 폭넓게 구축할 수 있는 정책 분야로 관심사가 자연스레 옮겨졌습니다." 

마침 국내 첫 이주여성 출신 국회의원인 이자스민 의원실에서 입법보조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다. 신 변호사는 주저 없이 지원해 국회에서 인턴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주요 업무는 국내외 다문화 교육 정책 관련 리서치와 비교법적 검토였다. 힘든 업무였지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다. 

"밖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제가 경험한 국회는 24시간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맡은 업무가 국내외에 산재한 다양한 법령을 조사하면서 각국의 법제를 비교하는 일이었는데, 법학적 기초가 없다 보니 문헌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고충을 비서관님께 이야기했는데, 마침 변호사 자격이 있으셨던 비서관님이 로스쿨 진학을 권하셨습니다."
 
"변호사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는 선배의 조언을 그는 “활동 반경이 크게 확대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세상을 향한 청년의 야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마침내 그는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졸업 직후인 2016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했다. 

하지만 '럭비공' 같은 신 변호사는 로스쿨에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다. 수려한 외모를 가진 그는 미스유니버시티 대회에 출전해 2등에 해당하는 ‘덕(德)’에 선정됐다. 미스유니버시티 대회에서 3등에 입상하면 세계대회 출전 권한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부에 집중하겠다”며 세계대회 진출을 포기했다. 늘 주변을 놀라게 하는 게 신 변호사의 특기다.   

△2016년 미스유니버시티 대회에서 '덕'에 선정된 신은혜 변호사(좌측 첫 번째).
△2016년 미스유니버시티 대회에서 '덕'에 선정된 신은혜 변호사(좌측 첫 번째).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정부법무공단에서 실무수습을 마친 그는 기업금융과 사모펀드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신 변호사는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주로 다국적 기업과 외국계 사모펀드에서 활약했다. 투자계약서 검토와 M&A 매도인 측 법률실사 대응, 해외 투자자의 인바운드(Inbound) 조력이 주 업무였다. 

"흔히 변호사를 떠올리면 법정에 출석하는 송무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송무 이외에도 변호사들의 직역은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사내변호사는 비즈니스와 법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맡습니다. 생경한 두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비즈니스의 언어를 법률 언어로, 법률 언어를 비즈니스 언어로 통역하고 의사소통을 촉진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신 변호사는 특정 산업군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관련 업계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외국계 사내변호사로 근무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외부 로펌과 협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지닌 출중한 변호사님들로부터 배울수 있는 게 많습니다. 외국계 기업에 있다 보면 해외 업무를 많이 하게 되는데, APAC, HQ 등과 소통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법률가들과 소통할 기회가 교류할 기회가 많아 법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신 변호사는 짬을 내어 미국 변호사시험(bar exam)에 도전해 합격했다. 2020년 캘리포니아주(州) 변호사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미국 서부에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외국 변호사들에게도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 놓는다. 합격률은 50% 안팎이다. 국내 변호사들은 워싱턴 D.C.나 뉴욕주,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시험을 많이 치른다. 

“외국에 있는 본사와 소통하는 일이 잦다 보니 규제 분야에 있어서 해외 동향을 숙지하고 비교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내친김에 미국변호사 자격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리걸 헤드에게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도전해 보라고 조언하면서 적잖이 배려해 주셨습니다. 취득 후에는 행여 미국변호사 자격증이 ‘장롱면허’가 될까 봐 우려도 했지만, 업무 특성상 해외 법제를 살펴볼 일이 많아 오히려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신 변호사는 지난 제51대 대한변협 집행부에서 국제위원회 위원으로 합류하면서 회무에도 참여했다. 국제위원회 영미소위원회에 소속돼 주로 미국변호사협회(ABA)나 영국사무변호사회(Law Society of England and Wales, LSE)와의 조인트 세미나에서 발표자나 토론자로 참여했다. 해외 내빈이 방문할 때는 통역이나 의전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신 변호사는 한국 변호사들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지난달 출범한 새 집행부에 대변인으로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

"대한변협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조용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집행부에서는 ‘직역수호를 넘어 직역확대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우리나라의 법제 수출과 같은 다양한 사업을 펼치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나아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변호사 비밀유지권(ACP) 통과에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영훈 협회장님의 이러한 뜻에 공감하는 바가 많아 회무에 참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집행부 내에서의 보직은 대변인이다. 대변인은 소속 기관과 단체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언론과 국민은 대변인을 통해 협회와 소통한다. 대변인의 품위와 자세를 통해 협회의 수준과 위상을 가늠한다. 그만큼 엄중하고 무거운 자리다. 대변인의 언행과 행동은 하나하나가 공무(公務)라고 할 수 있다. 바쁜 업무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어 기자들과의 접점을 마련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지 물었다. 

”대변인은 협회를 대표하여 언론과 접촉하고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기자님들이 저희 협회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미리 설명드리는 일도 하고,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작성하기도 합니다. 또 관련 기사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정정이나 반론이 필요한 경우에는 수정 요청을 드립니다. 중요한 보도자료가 배포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자님들과 통화하면서 입장을 잘 전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언론에 일관되고 선명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림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올초 신 변호사는 여성신문이 주최하는 한국여성작가 회화 공모전에 출품해 입선했다. 작품명은 '텍스처1(texture one)'. 취미를 넘어 작가의 반열에 오른 셈이지만,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대외적인 성취보다 내면 깊이 침잠하는 기제로 삼고 싶다고 했다.

"항상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면서, 복잡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온전히 저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적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림 그리는 시간은 저만의 ‘명상시간’입니다. 적어도 그림 그리는 시간 만큼은 휴대폰도 잠시 꺼놓은 채 캔버스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정신적으로 충전이 되는 느낌입니다.”  

최근 신 변호사는 몸담고 있던 기업을 나와 법무법인 에이파트 변호사로 새출발을 했다. 경험과 특기를 살려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 등 다양한 아웃바운드(outbound) 업무를 지원하고, 국내 기업이 해외로 더 잘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을 마련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여러 갈래에서 어려움과 좌절을 겪습니다. 저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면서 더 나은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동반자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VC/PE 업계에 몸담았었고,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해본 경험도 있다 보니 혁신을 추구하는 벤처기업과 파운더들을 지원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대한민국 변호사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서 일역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글=왕성민 편집위원, 사진=허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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