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변호사
김상욱 변호사

1년 중 국회가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때가 언제일까? 실질적 의미의 국회는 때를 가리지 않고 미움을 받고 있지만, 장소적 의미의 국회는 꽃피는 봄이 오면 절대적 사랑을 받는다.

여야의 정쟁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국회를 둘러싼 여의도 ‘윤중로’는 평소에는 인적이 드물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지만,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이 되면 전 국민의 발걸음이 향하는 축제의 현장이 된다. 여의도에서 세 번째 봄을 맞는 필자도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 이 축제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윤중로 한 가운데 육중하게 자리잡은  국회의사당의 봄은 어떨까? 의회의 ‘입법’ 활동이 국회의 꽃이라면 봄의 국회는 축제를 즐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걸까?

국민을 위해 입법 생산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상시 국회를 열고, 상임위원회·소위원회 등의 개최 수를 늘리도록 한 소위 ‘일하는 국회법’이 통과됐지만, 계류 법안의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2022년 말 기준 국회 상임위에 계류된 법안만 1만 3198건으로 상당수는 임기만료 폐기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숫자를 이렇게만 바라본다면 국회의원과 국회의 구성원들은 봄을 즐길 자격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숫자 놀음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제21대 국회는 무려 2만 건이 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입법 과잉’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활동을 했다. 우리 국회가 단순히 발의만 많이 한 것도 아니다. 제20대 국회는 연평균 2200여 건의 법안을 처리하면서 미국의 341건, 일본의 34건, 독일의 135건 등을 압도하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자랑했다. 여타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발의 건수, 처리 건수 어느 항목을 비교해봐도 일 안 한다는 손가락질은 억울할 만하다.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라는 지적에도 할 말은 있다. 법안 발의 건수로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며, 법안의 내용은 외면하고 양으로만 평가하려는 경향부터 변화되어야 ‘질’도 따라서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인재를 기용하려면 그에 부합하는 채용 기준이 있어야 하듯, 우리가 원하는 국회를 만들려면 평가 기준부터 정합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 구성원들에게도 이 봄을 온전히 즐길 자유가 주어지면 행복하겠지만, 끊임없이 터지는 이슈와 ‘일하는 국회법’은 보좌진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날이 따스해진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역 행사를 소화해야 하고, 성큼 다가온 내년 4월 총선을 대비하는 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그래도 올해는 봄바람 휘날리는 윤중로의 아름드리 벚꽃 나무 아래에서 벚꽃 가지를 올려다보고 싶다. 얼마나 ‘많이’ ‘풍성하게’ 피었는지 바라보기보단 꽃 봉우리 하나가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는지 감상해볼 생각이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천덕꾸러기들이 모여있는 전쟁터일 수도 있고, 헌법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불 꺼지는 시간 없는 치열한 현장이 될 수도 있는 곳. 다가올 벚꽃 시즌에는 아름다운 벚꽃에 둘러싸인 국회의사당을 조금은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상욱 변호사
국회의원 선임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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