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홍기 변호사/법무법인(유한) 에이펙스 대표변호사
민홍기 변호사/법무법인(유한) 에이펙스 대표변호사

변호사에게 법률은 어떤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 내지 틀(Frame)이다. 소송과 같은 사회적 분쟁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는 과거에 발생한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법률적 해결방안을 찾게 된다. 즉, 법률 규정을 대전제로 하여 그런 병리현상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Dark side)에 집중하여 분해한 사실관계들을 서로 묶거나 일정한 순서로 배열함으로써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일견 잡다하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사실관계들이 변호사의 손을 거쳐 법률 규정을 통과하게 되면, 민사·가사·행정 등의 경우는 요건사실 또는 항변사실로, 형사의 경우는 구성요건 해당성 또는 위법성·책임성 조각사유로 구분되고, 그 밖의 나머지 사실 등으로 분해된다. 그 밖의 사실 등은 이른바 사건의 경위 또는 정황, 정상(情狀) 등으로 불리며, 요건사실 또는 항변사실 등의 외곽에 놓이게 된다. 마치 무색투명한 빛이 분광기 즉, 프리즘(Prism)을 통과하는 순간 아름다운 무지개 빛깔로 분해되며, 빨간색 안쪽으로 적외선, 보라색 바깥으로 자외선이 각 위치하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어린이가 프리즘을 가지고 놀듯이 변호사는 법률 규정을 가지고 사회적 병리현상에 내재되어 있는 혼란스럽던 사실관계들을 논리적으로 아름답게(?) 정리한다. 이번에는 좀 더 복합적인 사실관계들이 유기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어떤 기업을 분석하고 평가한다고 가정하여 보자. 변호사는 아마도 법률 프리즘으로 그 기업 경영진의 횡령이나 배임 여부, 경영권 분쟁 여부, 지배구조 즉, 이사회를 포함한 경영진과 주주 구성 비율, 내부통제제도의 존부 및 작동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분해하고 재배열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변호사가 선택하여 분석하고 정리한 것으로 과연 그 기업 등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법률이 아닌 다른 프리즘으로 기업을 분해한다면 어떤 요소들이 선택되고 어떻게 배열될까? 예컨대, 대상이 된 기업의 분석과 평가를 위하여 그 기업이 속한 업계의 현장 실무자, 관련 학계의 학자, 공인회계사 등은 어떤 요소들을 선택하고 평가를 할까?

업계의 현장 실무자는 그 기업 영업의 지속 여부라는 관점에 바라볼 것이다. 영업활동에 따른 매출은 지속 가능한지, 수익성은 어떤지 등 그 기업의 밝은 면(Bright side)을 우선 보면서 그 기업을 평가할 것이다. 관련 학계의 학자의 시각은 그보다 좀 더 거시적일 수 있다. 그 기업이 속한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어떤지, 현재 및 미래 시장에서의 그 기업의 경쟁력 및 점유율(Market share)은 어떨 것인지 등을 살펴보면서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기업을 진단하는 공인회계사는 어떨까? 기업회계기준에 따라 그 기업의 재무구조를 투명성 및 건전성의 관점에서 보게 될 것이다. 재무제표상에 표시되어 있는 각 수치들을 분석하고, 특히 차입금의 규모, 구조, 계획과 유상증자를 통하여 조달한 자금의 사용처, 분식회계 여부, 우발채무의 실현 여부 등 재무상태의 건전성 여부를 바라볼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기업 즉,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주체들이 가진 다양한 관점 내지 프레임의 차이, 그리고 각각의 분석 툴(Tool) 즉, 프리즘에 따라 분석과 평가를 위하여 선택하는 요소들 역시 판이하게 된다.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은 수 없다. 위와 같은 다양한 주체의 관점과 서로 전혀 다른 요소들에 대한 평가의 결론이 항상 같을 수 있을까? 만일, 다르다면 누구의 분석과 평가가 올바른 것인가? 혹은 어떤 분석과 평가가 다른 것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실제로 어떤 기업들을 평가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분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여 법률가로서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토론을 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와 같이 분석 대상인 기업들에 접근하는 기본적인 관점과 분석 툴은 물론 그에 사용하는 용어조차 전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떤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논거가 서로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항상은 아니지만 유사한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토론 과정에서 분석 대상이 된 기업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적절한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이 점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협업하는 변호사 나아가 법률가를 요구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모두 ‘아니다’ 이기 때문이다.

/민홍기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에이펙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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