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 변호사
박재혁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매년 연말 법관평가 결과를 보도자료를 통해 배포하고 있다(보도자료 제2022-45호). 위 보도자료에 의하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08년에 최초로 실시하여 현재는 모든 지방변호사회가 참여하고 있고 법관평가는 “법원의 공정한 재판진행과 절차엄수를 독려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법관료주의에 대한 견제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22년도 법관평가에는 1769명의 회원이 참여하여 총 1만 1253건의 평가표가 제출되었는데,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평가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5명 이상의 회원으로부터 평가받은 데이터만 집계하였다고 한다. 유효한 데이터로 평가된 법관 850명의 평균 점수는 81.80점으로 우수법관 70명과 하위법관 13명이 있었다고 한다. 철저한 재판 준비, 경청과 충분한 배려 등으로 우수법관으로 선정된 법관은 그 명단이 공표되었고, 재판 지연, 고압적 소송진행 등으로 하위법관으로 지적된 법관은 소속 법원장 및 법관 개인에게 그 사실이 통지되었다고 한다.

현행 법관평가에 대한 반론은 이러하다. 사건의 승소 패소 결과에 따라 재판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는데 작성자의 평가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 의문이 있을 뿐 아니라, 악의적 의도로 작성된 익명 평가가 정제되지 아니한 언어로 법관에게 전달되는 경우 재판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법관평가는 공정, 품위, 신속과 적정, 직무능력을 각 항목별로 20점, 30점씩 나누어 ‘매우 우수’에서 ‘매우 미흡’까지 5단계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는바, 이처럼 획일적이고 도식적인 평가 및 그 결과 얻어진 법관의 평균점수라는 것은 재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반론을 이해할 만하다.

법치국가에서는 법원이 거의 모든 분쟁의 해결기관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법원이 우리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또한 가깝게 느껴진다. 이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법원 재판의 정당성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이는 법률적 분쟁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재판의 집행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담보되어 있다는 사실에만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즉, 법원 재판의 권위는 단지 국가의 강제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재판을 구성하는 이유가 설득력을 갖고 있고, 그 판단의 정당성에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국민과 법원의 관계는, 법원이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고 있는가 하는 측면과 국민이 법원판단을 신뢰하고 있는가 하는 상호관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민의 신뢰는 사법부 존립의 근거가 되는 한편, 이러한 국민의 믿음과 신뢰를 지켜나가는 것은 법원의 의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법원재판을 가장 가까이에서 또한 빈번하게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변호사이고, 직업상 다양한 재판부의 재판을 받게 되는 변호사가 법원 재판의 견제자로 나설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 변호사의 고유한 임무가 확인되고, 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하는 법관평가는 법관의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점에서 대국민 사법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현재의 법관평가는 평가의 대상인 법원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법관평가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수법관의 명단은 공개하면서도 하위법관의 명단을 감추고 있는 것부터 그러하다. 법관은 우리 국민의 재산권, 신체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인 점에서 그 직무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법관 직무의 공정성이 공개적인 감시와 비판의 대상으로부터 면제되어서는 아니 되고, 재판작용이 갖는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재판의 공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은 1년 365일 쉬지 않고 작동되어야 한다. 또한 공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방식은 문제 법관에 대한 개별통지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 경우 어떤 법관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또한 그 잘못이 시정되었는지 국민들이 점검할 수 없고, 결국 법관의 과오가 법관 개인의 자정의사에 맡겨져 있다. 법관으로서도 지극히 추상적인 평가항목으로 구성되는 법관평가를 받아 보고 어떤 사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이 있었기에 이러한 평가결과가 나왔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고압적인 재판, 편파적인 재판의 사례들이 시정되지 않는 것은 현재의 법관평가가 법관의 권한남용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법관선발과 동등한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법원 재판을 지켜보는 위치에 있는 변호사들이야말로 사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법관평가의 목적은 평균적인 법관으로서 재판을 감당할 수 있는 전문성, 직무적합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하위법관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이는 평가 대상인 법관의 관점에서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일 수 있고, 그 평가에 승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 평가는 구체적인 재판에서 다루어진 사실관계와 법령적용 등 전반에 관하여 재검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이는 결국 변호사 자신이 대리한 사건을 글로 정리하여 남기는 형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 필자가 대리한 사건을 평석의 형태로 남기려는 경우, 판사의 실명이 공개되면 판사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하여 편집과정에서 이를 삭제하도록 권유받는 경우가 적지 아니한데, 이러한 편집은 우리 사법의 공정성을 해치는 결과가 될 뿐이다. 고위공직자의 직무는 국민적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판결서에 판사가 서명날인 하도록 하는 것은 그 재판의 작성이 어떤 법관에 의하여 이루어졌는지 최소한 남기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후일 재판을 어떤 법관이 담당하였고 그가 어떻게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판단하였는가를 밝히며, 그 과오를 지적하는 것은 인격권의 침해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자료들이 축적된다면 법관평가의 공정성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고, 평가자도 피평가자도 각자의 실명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의적인 평가의 위험도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민주사회를 국가권력의 폭압으로부터 지켜내는 언론의 자유가 권력기관의 치적만 칭송하고 치부는 감추는 것이었다면 민주국가의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법관평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박재혁 변호사
변호사 박재혁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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