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현 변호사
한주현 변호사

출산 50일 후쯤부터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저녁 7시부터 진행되는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다. 아기가 보통 저녁 7시 전에 잠들었기 때문에 강의 듣는 것이 무리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큰 오해였다. 하루는 강의가 있는 날이었는데 아기가 잠들지 않아 1시간 넘게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 사이 어느덧 시간은 저녁 7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 날 강의는 내가 꼭 듣고 싶었던 주제였기 때문에 화가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의 일정이 아기라는 예측할 수 없는 요인으로 인해 방해받은 느낌이 들었고 문득 아기가 미워졌다.

그날 나는 내 시간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출산 전에는 일정을 잘 배분하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무지한 생각이었다. 아기는 내가 정해둔 시간 안에만 들여다보면 되는 집안일, 취미생활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내 일상의 중심에 뿌리를 딱 박아두었기에 내 시간 전체를 온전히 내어줘야 하는 존재였다. 내 시간이 나의 것이 아님을 인지한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육아는 오히려 쉬워졌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질도 높아졌다. 온전히 혼자 아기를 봐야 하는 날은 육아 외의 모든 일정은 미뤄두었다. “엄마는 온전히 너의 것이야. 너는 엄마의 일정을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엄마의 일정 그 자체란다” 라는 마음으로 아기를 보니 아기가 내가 생각한 스케쥴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초조해지거나 화가 나는 일은 더는 생기지 않았다.

그때 나의 심리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 강의라도 들으면서 자기개발을 해야한다”. 적지 않은 여성변호사님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거나 하게 되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출산 전후의 시간이 ‘뒤처지는 시간’이라고 느끼는 것 말이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 시기는 나의 감정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다채로워지는 시기였다. 무언가를 달성하거나 무언가를 얻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그냥 아기라는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기야말로 나 자신이 전례 없이 발전하는, 말 그대로 ‘자기개발’의 시기였던 것이다.

/한주현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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