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구조공단 출신 강천규 성지파트너스 변호사 인터뷰

판사 꿈꿨지만 '리더십 강의' 계기로 변호사로 진로 바꿔

연수원 수료 후 구조공단 입사... 창원·인천지부서 맹활약

'슈가맨' 양준일 가수 대리... "악성기사·댓글 줄어 큰 보람"

"개업시장 혼탁... '정직한 상담'이 의뢰인·변호사에 이익"

"믿을수 있는 로펌 만들것... 사회적 책임과 역할 다해야"

사법시험 합격 후 바로 연수원에 입소하지 않고 1년 간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며 견문을 넓혔다. 이 시기가 강천규(사법시험 50회) 변호사의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2008년께 미국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 크릭 리더십 서밋(willow creek leadership summit)에 참여했는데, 당시 캐서린 로(Catherine Rohr)라는 이름을 가진 명문 MBA 출신 연사가 강연에 나섰습니다. 그는 수시로 지역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경영 컨설팅 봉사를 했습니다. 자기가 가진 전문 지식을 나눈 것이죠. 캐서린의 강의를 들은 재소자들은 출소 후 건실한 직장인과 사업가로 자립하는데 성공했고, 이들이 다시 교도소를 찾아 다른 재소자들의 재기를 돕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2008년 시카고 윌로우 크릭 리더십 서밋 연사들. 왼쪽 두 번째가 캐서린 로. 
2008년 시카고 윌로우 크릭 리더십 서밋 연사들. 왼쪽 두 번째가 캐서린 로. 

줄곧 법관을 꿈꿔왔던 강 변호사는 이 강연을 계기로 진로를 바꿨다. 판사가 아닌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직접 호흡하며 살아야겠다"는 게 당시 그의 생각이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에는 법률구조공단에서 공익법무관으로 2년 간 근무했다. 공단을 찾는 의뢰인 중에는 한부모 가족,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성노동자 등 우리 사회 최하층부에 놓인 취약 계층이 유난히 많았다.

"여기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강 변호사는 무릎을 탁 쳤다. 늘 약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그는 구조공단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명나게 일했다. 변호사가 되길 참 잘 했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법무관 근무를 마치면 반드시 공단으로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법무부 인권조사과를 거쳐 복무를 마친 강 변호사는 결심대로 법률구조공단에 다시 입사했다. 그는 연간 9천 건 이상 사건이 접수되는 창원지부와 인천지부에서 구조부장으로 일하며 착실하게 경력을 쌓았다.

"공단에는 민·형사 사건 뿐 아니라 가사와 행정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사건이 밀려 들어옵니다. 저는 구조부장으로서 승소가능성 등을 검토한 뒤 구조 타당성을 판단하는 업무를 맡았어요. 공단이 모든 사건을 다 맡을 순 없으니 공익 요소 등을 고려해서 사건을 진행할지 판단해야 합니다. 예컨데, 형제간의 상속분쟁은 공단 성격과 맡지 않으니 구조 결정을 하지 않습니다. 직접 맡아 처리한 사건 뿐 아니라 구조 타당성을 검토하며 간접적으로 접한 사건들도 모두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다양한 사례를 살피면서 사건을 보는 안목과 예측 능력이 자연스레 길러지거든요."

공단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자, 그는 조심스레 '장애인 목욕센터 운전자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전형적인 산재 사건으로, 억울한 의뢰인을 돕기 위해 그가 전심전력을 쏟았던 소송이었다.

"한 번은 장애인 목욕 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분이 공단을 찾아왔어요. 목욕 대상자가 옮길 때는 운전기사도 요양보호사를 도와 함께 이동 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기사님이 환자를 옮기다가 그만 허리를 삐끗하고 만 거에요. 점점 통증이 심해져 결국 일도 못하게 됐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산재 승인을 거절했습니다. 병원에서 무심코 '자다가 삐었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요양보호사가 '기사님이 환자 이동을 돕다가 비명을 지르는 걸 들었다'고 증언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고, 검찰은 요양보호사를 위증죄로 기소했습니다. 이대로 두면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이후 간절하게 사건에 매달렸습니다. 항소심에서는 법정에서 직접 재연까지 해가며 추가로 수집한 증거를 제출했고, 결국 승소했습니다. 이후 요양보호사의 위증 혐의도 벗겨 끝내 무죄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승소가 확정된 날, 기사님 가족들과 함께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

△법률구조공단 창원지부 근무 시절 재판에서 승소한 뒤 의뢰인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한 강천규 변호사
△법률구조공단 창원지부 근무 시절 재판에서 승소한 뒤 의뢰인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한 강천규 변호사

법무관 생활을 포함해 10년 넘게 구조공단에 몸담았던 강 변호사는 3년 전 개업을 결심했다. 이왕 소명을 다할 요량이면 더 넓은 곳에서 뜻을 펼쳐보자는 취지였다. 정치적 이유로 여러 외압이 작용하는 공단 내부의 갈등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또 근속 기간이 길어지며 젖어든 타성을 떨쳐내려는 마음도 있었다. 

"비유하자면 강 어귀에서만 낚시를 할게 아니라, 바다로 나가 더 큰 그물로 고기를 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법률 조력이 필요한 사람들은 개업 시장에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공단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의외로 '꾼'들을 자주 봅니다. 구조 결정을 통과해야 조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법률지식이 꽤 많은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공단의 존재'조차 모르는 진짜 약자들은 바깥 세상에 더 많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개업 이후 그는 생활 밀착형 사건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매년 9천 건이 넘는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루며 쌓은 내공이 다종다양한 사건에서 가감없이 드러났다. 강 변호사는 법무법인(성지 파트너스)을 설립하며 "믿고 맡길 수 있는, 정말 신뢰할 수 있는 로펌을 만들자"는 모토를 세웠다.

영업에서는 '정직함'이 다소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힘을 믿는다. 그는 정직한 상담이 의뢰인과 변호사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송무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red ocean)이 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변호사 수가 늘면서 수임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진짜배기' 변호사는 얼마나 될까요. 누가 봐도 무리인데,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 수임하는 게 과연 능사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단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법률가 관점에서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라고 판단하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무리하게 소송을 진행하는 것 보다 합리적인 제3의 방식으로 분쟁을 종결하는 것이 의뢰인에게 훨씬 더 도움될 때가 많습니다. 사건 수임에 매몰되지 않고 한 명 한 명의 의뢰인에게 최선이 되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게 변호사의 역할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강천규 변호사는 가수 양준일 씨 사건을 대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슈가맨'으로 인기를 얻은 양준일 씨는 안티팬들의 부당한 공격에 시달려 이런저런 송사에 휘말렸다. 강 변호사는 저작권법 위반과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 당한 양준일 씨 사건을 맡아 수사기관에서 모두 무혐의 판단을 받았다.

"양준일 씨가 반복적으로 고소 고발을 당하고 있어 사안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억울한 측면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대중적 관심을 받는 가수이다 보니 관련 기사도 꾸준히 올라왔는데, 주로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침소봉대해서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연예인들은 이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제대로 도와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치밀하게 법리 검토를 해서 형사절차를 모두 종결시키자, 잇따라 올라오던 악성 기사와 댓글이 크게 줄었습니다. 무혐의 판단 자체보다 부당한 공격이 줄었다는 점에서 더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최근에는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린 한 남성을 대리해 최종 무죄를 받았다. 몇 해 전 붐비는 지하철 객실에서 누군가가 한 여성 승객의 신체를 만지는 일이 발생했다. 여성은 뒤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을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해당 남성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한 손으로는 휴대폰 영상을 보며 다른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다. 그러자 남성은 강 변호사를 찾아왔다. 

"일본 영화 중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8)'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성이 법정에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자마자 머릿 속에 해당 영화가 떠올랐어요. 항소심부터 사건을 맡아 영상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고, 거짓말탐지기 진실반응 결과까지 첨부하여 성실하게 변론한 결과 다행히 무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강 변호사는 로펌을 운영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비전이 세 가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누구나 믿고 맡기고 싶은 사무소를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누구나 다니고 싶은 직장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변호사의 사명에 걸맞는 약자와 동행하는 로펌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금도 가끔씩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러 가고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언젠가는 비영리재단을 설립해 다양한 구제사업과 장학사업을 펼치고 싶습니다. 비록 공단은 나왔지만 객관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분들을 꾸준히 돕고 싶습니다. 개업 시장이 많이 어렵다지만 '정직과 신뢰'를 제1의 가치로 삼고 정면돌파 하고자 합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얄팍한 기교에 기대지 않고 늘 묵묵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습니다."

/허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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