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법상 집행정지제도 도입의 필요성

박시형 변호사
박시형 변호사

이 글은 2022년 11월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의 연구과제로 승인된 “등기법상 집행정지제도 도입에 관한 연구”를 3회차로 축약한 두 번째 글입니다.

1. 등기관 권한의 통제 필요성에 관하여

가. 실무사례

지금의 제도에서 등기관이 권한을 어디까지 남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1) 신탁등기의 신청이 있는 경우 어떤 등기관은 등기를 바로 처리하지 않고 보정을 집요하게 낸다. 부동산개발사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므로 당사자들은 업무가 최대한 빨리 진행되길 바라는데 이러한 당사자들의 처지를 알고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대놓고 요구할 수 없으니 느린 처리와 집요한 보정으로 애를 태운다. 보정을 여러 차례 나눠서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신탁계약서의 간인이 흐리다는 식의 보정을 내기도 한다. 부동산개발사업의 특성상 신탁계약서는 수십 쪽에 달한다. 당연히 덜 선명한 간인이 존재한다. 계약서에 날인하는 당사자도 여럿이라서 보정기간 내에 이들 회사의 법인인감을 다시 불출하여 간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등기관은 동 계약서를 원인증서로 인정할 수 없다는 보정을 내리면서 익일까지 보정하지 아니하면 각하처분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실무에서 신탁등기를 접수하면서 등기관에게 미리 급행비를 건네는 일이 있다.

2) 상속등기의 경우 등기신청서에 피상속인의 동일성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첨부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자료의 범위에 관한 명시적인 기준이 없어 등기관마다 요구하는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등기관이 요구하는 자료를 구하다 보면 그중 일부는 소실되었거나 오류가 발견된다. 그러면 등기관은 피상속인의 동일성이 확인되지 않으니 등기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 등기교합을 할 수 없다고 했던 등기관이 보정서류 아래 봉투를 건네면 바로 등기교합을 해준다.

위 사례들은 어디까지나 일부의 사례이고, 대부분의 등기관은 과중한 업무를 묵묵히 처리하고 있다. 다만 위 사례를 통해 우리는, 등기관이 그 형식적 권한 분장과 무관하게 자신의 권한을 남용할 경우 당사자와 신청대리인이 얼마나 곤경에 처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나. 형식적 심사권과의 관계

등기관의 심사권한범위에 관한 입법주의에는 형식적 심사주의와 실질적 심사주의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등기관의 심사범위를 등기절차상의 적법성에 한하는 형식적 심사주의를 택하고 있다.

형식적 심사주의는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우리나라 현실에서 형식적 심사주의의 장점(적은 인력으로도 신속한 사무처리가 가능한 점)이나마 취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도입 취지와는 무관하게 등기관의 형식적 심사권은 이의신청사건에서 법원이 신청인의 청구를 손쉽게 기각하는 방편으로 작용한다. 즉, 이의신청 사건에 이르러 그 심리를 형식적 심사권 법리에 의탁하면, 법원은 등기관이 내렸던 판단에 대하여 그 심사권의 일탈·남용이 없다는 판단을 손쉽게 내리게 되는 것이다.

다. 통제수단의 부재

앞서 본 것처럼 현행 제도에서는 등기관이 전횡할 여지가 있다. 그러한 경우 등기관 처분이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됨으로써 사후적이나마 그 위법·부당을 지적받는 것이 필요하겠으나, 이의신청의 실익이 없는 제도의 맹점 때문에 등기관 처분에 대한 유일한 사법 판단 절차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라. 법원 결정과의 균형 문제

우리 법제는 법관의 판단에 대하여도 명시적인 집행정지제도 내지 그와 같은 효과를 둔 제도를 다수 운용하고 있다. 집행법원의 재판에 대하여 항고법원이 원심재판의 집행 내지 집행절차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나, 하급심 법원의 결정에 대하여 보통항고를 제기할 때 항고에 대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집행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다. 이러한 제도들은 모두 법관의 판단에 대하여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상식에 근거한 것이다.

2. 비례원칙의 적용

등기관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시 집행정지효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등기사무의 신속한 처리라는 공익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써 입법목적이 일응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집행부정지 원칙에 대한 아무런 예외를 두고 있지 않기에 불복대상 처분의 효력을 저지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이의신청절차에 관해 집행부정지 원칙의 최소한의 예외조차 두지 않은 것은 수단의 적합성과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

그리고 법익균형성도 갖추지 못한다. 집행정지 원칙을 택할 때 발생할 부작용은 정당한 각하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시 신청한 부당한 등기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발생할 제3자의 불편이 될 것이다. 반면 집행부정지를 택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은 부당한 각하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는 사이 다른 등기가 실행됨으로써 진정한 권리자가 입게 될 불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등기, 특히 부동산등기의 목적물은 그 당사자의 주요 재산인바 진정한 권리자의 보호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며, 이는 제3자의 불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3. 재판청구권 보장의 관점

헌법상 재판청구권에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고 함은 ‘법관이 사실을 확정하고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뜻이고, 그와 같은 법관에 의한 사실 확정과 법률의 해석적용의 기회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제약이나 장벽을 쌓아서는 아니 되며, 만일 그러한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한다면 헌법상 보장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우리 헌법상 허용되지 아니한다(헌법재판소 2002. 2. 28. 선고 2001헌가18).

물론 재판청구권과 같은 절차적 기본권은 원칙적으로 제도적 보장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이 인정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헌법재판소는 재판청구권의 입법형성권의 한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헌법 제27조 제1항 ‘재판청구권’의 보장에 있어, 권리구제절차에 관한 구체적 형성을 완전히 입법자의 형성권에 맡기지는 않는다. 입법자가 단지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형식적인 권리나 이론적인 가능성만을 제공할 뿐 권리구제의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권리구제절차의 개설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재판청구권은 (중략) 소송절차의 형성에 있어서 실효성 있는 권리보호를 제공하기 위하여 그에 필요한 절차적 요건을 갖출 것을 요청한다. 비록 재판절차가 국민에게 개설되어 있다 하더라도, 절차적 규정 등에 의하여 법원에서 접근이 합리적인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는 방법으로 어렵게 된다면, 재판청구권은 사실상 형해화될 수 있으므로, 바로 여기에 입법형성권의 한계가 있다.”

등기사무가 갖는 사법행정사무로서의 특수성이 국민의 권리구제에 대한 흠결을 정당화하는 관념은 물론 아닐 것이다. 위 헌법재판소의 판시내용과 같이 처분에 불복하는 당사자의 권리구제는 단순히 등기관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이라는 형식적인 불복제도를 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불복제도와 아울러 등기신청인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미리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절차적 요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4. 법리형성 수단의 부재

법원(法源)이란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 적용하여야 하는 기준과 자료를 말한다. 민법 제1조는 법원(法源)의 순서를 법률, 관습법, 조리 순으로 규정한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위 조에 열거된 법원 외에, 판례가 법률의 해석과 흠결을 보충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등기관의 처분은 법관의 재판을 거치지 않은 채 신청인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등기법에서의 법원 개념은 ‘등기관이 그의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 적용하여야 할 기준과 자료’를 뜻하는 의미가 더해져야 하겠다.

그런데 지금의 등기법제에서는 이의신청이 활용되기 어렵고, 이의신청사건이 없는 이상 판례도 쌓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지금으로서는 등기법 분야의 입법의 흠결과 공백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등기예규와 등기선례뿐이나, 등기예규와 등기선례를 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회신을 받을 수 있는 시점도 신청 후 몇 달이 지나서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시행한 “등기관 처분에 대한 이의절차 개선방안 연구” 중 등기관 처분에 대한 이의사건 담당 법관들에게이의사건 처리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이의사건 처리가 업무상 부담으로 작용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설문에는 법관 14명 중 10명이 부담된 적이 있다고 답하였고, 부담이 된 원인으로는 위 10명 중 8명이 이의사건 심리에 필요한 업무자료 부족을 꼽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시형 변호사

법무법인 선경

대한변협 등기경매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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