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호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인터뷰

유년시절 우주비행사 꿈꿔... 우주항공법 전문 변호사로 '인생 2막'

로스쿨 시절 美·日·中 3개국 로펌서 인턴십... "너른 시야가 큰 자산"

"상업적 민간 우주개발 활성화... 규제·금융 등 파생시장 확대될 것"

회무 참여 큰 보람... "변호사 업계 목소리 전달하는 대변인직 영광"

1992년 8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프랑스령 기아나(Guiana)에 있는 쿠루 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자체 인공위성을 보유한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온 국민에게 큰 자긍심을 안겨 주었던 우리별 1호의 발사 성공은 이후 국내에서 수많은 '우주 소년'들을 배출하는데 혁혁하게 기여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텔레비전에서 우리별 1호 발사 장면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장면은 공식적인 TV 중계가 끝나고 애국가가 연주될 때 다시 나왔는데, 로켓이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이 너무 보고 싶어 일부러 방송 이 다 끝나기만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이후 제 꿈은 줄곧 우주비행사였고, 초등학교 시절 내내  '우주소년단'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아쉽게도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지금은 항공우주법 전문 변호사로서 나름대로 국내 항공우주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2020년 미국 휴스턴 우주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촬영한 사진. 유 변호사는 어린 시절 우주비행사를 꿈꿨다고 한다  
△2020년 미국 휴스턴 우주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촬영한 사진. 유 변호사는 어린 시절 우주비행사를 꿈꿨다고 한다  

유인호(변호사시험 5회)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항공우주법 전문가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 시절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주관한 논문 대회에서 '항공사고 조사제도의 독립성 확보방안'을 주제로 대상인 국토교통부장관상을 수상했고, 변호사가 된 후에도 학업을 지속해 항공우주법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항공대와 세종대에서 겸임교수로 활약하며 강의와 송무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그가 법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법조인인 작은 아버지(유철민 변호사)와 외삼촌(황성필 변호사)이 그에게 "너는 문과 적성이 맞으니 법대에 가는 것이 어떠냐"며 권유했고, 유 변호사도 그 뜻을 따랐다. 다만 함께 뉴턴(Newton) 잡지를 보면서 과학자를 꿈꿨던 형은 끝까지 이과(理科)에 남았고, 현재는 내과 의사가 되어 형제가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이후 법대에 진학했지만, 그가 법조인이 돼야겠다고 마음 먹은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다. 대학생 시절, 한 의류업체의 불공정 행위를 발견하고 직접 이의를 제기해 시정을 이끌어냈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스무살 무렵 한 유명 의류브랜드가 자사 홈페이지에 매일 로그인을 할 경우 100원씩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따라서 3개월만 꾸준히 로그인하면 만 원에 가까운 현금성 포인트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몇 달 뒤 해당 브랜드는 회원들로부터 아무런 동의를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약관을 변경해 이 같은 포인트 제도를 없앴습니다. 이에 저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약관심사청구를 해서 브랜드의 부당한 약관 변경이 시정되도록 했습니다. 이 무렵 체감했던 강렬했던 '권리구제'의 경험이 저를 법조인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습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경한율사사무소에서 인턴십을 수행할 당시 찍은 사진

호기심이 많았던 유 변호사는 로스쿨 재학 시절에도 다양한 해외 인턴십에 도전하면서 시야를 고르게 넓혔다. 유 변호사는 바쁜 로스쿨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잠을 줄여가며 하루에 5시간씩 일본어와 중국어 공부에 몰두했고, 그 결과 도쿄 아카사카에 자리한 '바스코다가마(ヴァスコ・ダ・ガマ)' 법률사무소와  베이징의 경한(京翰)율사사무소, 미국 LA의 Lim&Rugar LLP 에서 인턴 생활을 마쳤다. 그는 이 당시 체득한 해외 경험과 너른 관점은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큰 자산으로 남았다고 한다.

"해외로펌 인턴십의 장점은 유수의 파트너 변호사님과 함께 생활하며, 짧지만 여러가지 사항을 도제식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년 이상 변호사 활동을 하며 이들이 추구한 가치와 경험들을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입니다. 특히 Lim&Ruger 에서는 연방 검사를 지낸 Pio Kim 변호사님께 소속되어 연수지도를 받을 수 있었고, 설립자인 Richard Ruger 변호사님과 자주 독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법조인으로서 대가의 깊은 연륜과 노하우를 직접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미국 LA에 있는 Lim&Rugar LLP에서 인턴십을 수행할 당시 제9연방항소법원을 방문해 촬영한 사진  

변호사가 된 후에는 유년시절의 꿈과 이어지는 항공우주법 분야에 푹 빠졌다. 국내에서 해당 분야는 주로 대형로펌들을 중심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항공우주 '매니아'였던 유 변호사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관련 사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 

"지난해 여름에는 특이하게 부착되었던 무전기 때문에 비행기 운항이 정지될 위기에 처한 사업자를 대리해 운항정지처분취소소송 및 집행정지신청을 냈습니다. 신속하게 서면을 쓰고 관련 규정을 검토해 의뢰인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적기에 잘 낼 수 있었습니다."

앞서 2020년에는 대한변협이 발간하는 학술지 '인권과정의'에 항공보안법상 자체 보안계획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학계와 실무계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자체 보안계획 위반을 사유로 하는 다수의 과태료 재판에서 해당 논문이 꾸준히 원용되고 있다. 

그는 "항공우주법은 국제적 통일성이 중시되므로, 주로 국제법 영역에서 다뤄져 왔지만, 현실에서는 정부가 사인(기업)의 활동을 통제하는 규제행정법의 속성을 갖는다"며 "예를 들어 항공법은 항공기의 안전한 운항을 위해  다양한 규제기준을 두고 있는데, 안전관리(safety management)를 위한 것이어야 함에도 단순히 제재(sanction)를 위한 기준으로 방향을 잃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고 언급했다.

△KAI(한국항공우주연)와 함께 싱가포르 에어쇼에 참가했을 당시 촬영한 사진
△KAI(한국항공우주연)와 함께 싱가포르 에어쇼에 참가했을 당시 촬영한 사진

최근 유 변호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영역은 우주금융(space finance) 분야다. 우주 활동의 중심이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우주금융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유 변호사는 "우주금융 분야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우주개발 분야는 국가가 독점해온 영역입니다. 엄청난 기술과 비용이 투자되는 만큼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상업용 로켓과 위성이 범용화 되고, 일론 머스크의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 X'처럼 아예 민간영역에서 독자적인 우주개발을 추구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상업적 민간 우주활동이 점차 확대되면서 이와 연동된 파생상품 등 우주금융 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소행성에서 채굴된 광물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상업우주발사경쟁법(Commercial Space Launch Competitiveness Act of 2015) 통과됐습니다. 마치 과거 유럽 왕조가 신대륙에서의 이주민 재산권을 보장하자, 민간 사업자들이 앞다퉈 진출했던 것처럼 상업적 우주활동의 보장은 민간 영역에서의 기술 축적과 도전을 견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유 변호사는 한 명의 변호사로서 회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21년 대한변협 대변인으로 합류해 2년 간 협회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면서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했다.

실무를 병행하면서 공보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고 실수도 많았지만 회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과 소통하는 중요한 직책이므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그가 회무에 참여하는 동안 방점을 두고 진행했던 분야로는 '법률 플랫폼' 대응을 꼽았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서 독립해 자유롭게 직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개 플랫폼을 통해 우회적으로 침투한 자본에 법률가들을 예속시키는 행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변호사의 공공성과 독립성, 자유로운 업무 수행을 방해하고, 법률시장을 사적인 이윤 추구의 장으로 변질시키려는 '가짜 혁신'에 대응하여 합리적인 목소리를 국민과 기자 분들께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복잡한 규제 거버넌스를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혁신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항공우주법 분야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싶다고도 했다. 

"규제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규제의 내용이 변화(완화)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규제기관(조직)의 설계와 민주적 의견수렴(절차적 정의)의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다양한 송무경험과 대학에서의 연구활동 등을 바탕으로 항공·우주산업, 환경·에너지산업 등에 혼재하고 있는 다양한 규제 실패 사례를 해결해가는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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