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혜 변호사
김다혜 변호사

2023년이 밝았다. 국회의 시간은 회기를 기준으로 흐른다. 제21대 국회의 임기는 내년 5월 29일에 만료되니 제21대 국회의 후반부에 돌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쯤 국회 상임위원회 입법조사관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법안들을 헤아리는 작업을 한다. 국회 임기 만료일까지 처리되지 않은 법률안은 아쉽게도 ‘임기만료 폐기법안’으로 분류될 테니 앞으로 법률안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년 5개월 남짓.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법률안의 생명력은 많은 요소와 연결되어 있는데, 생명력에 온기를 더하는 요소들은 대개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입법 공백을 해소할 필요가 있는지, 민생과 직결되어 정치적인 난제에도 불구하고 여·야에서 앞다투어 발의하고 있는지, 국정과제나 당의 핵심과제로 추진되고 있는지 등이다. 여기까지는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보낸 대부분 시간이 그렇듯이 미리 준비하기 어려운 때가 더 많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특정한 사건을 기반으로 하는 법률안들은 마치 부제와 같이 별명을 달고 발의된다.

법제사법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서 담당하고 있는 법률안 중에도 소위 네이밍 법안들이 꽤나 있다. 네이밍 법안에 대해서 입법조사 업무를 하는 소회는 복잡하다. 대중적인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법안 심사에 탄력을 받는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사건의 극적인 전개에 따라서 법률안의 상세 내용을 살필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건 당사자나 희생자와 연관된 명칭으로 네이밍된 경우에는 해당 네이밍을 더러 사용하고 있는 데에 대한 부채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지난해 단연 몰입했던 법률안은 일명 ‘나의 아저씨 법’이었다. 미성년 상속인을 위한 특별한정 승인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지난 2022년 11월 23일 개정됐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이지안은 미성년자일 때 상속을 단순 승인함에 따라 엄마의 빚을 대물림 받게 된다. 해당 법률안의 의결을 통해서 현실의 지안이들이 성년이 되어 스스로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심사 당시 법률안의 개정 내용부터 설명하자면 갸웃하던 이들도 이 법률안의 별명을 들으면 대번 이해도가 높아졌다. 픽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논픽션에 기반을 둔, 몇 안 되는 불편하지 않은 네이밍 법안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개정의 필요성, 본칙의 규정, 소급 적용의 범위 등 각각 3회에 걸친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의 심사를 하는 등 심도 있는 심사 끝에 의결이 이루어졌다.

2023년에는 어떤 법안들이 법안심사와 의결의 주인공이 될까. 국회에서의 시간을 반추해 보면 안녕하기만 한 국회는 없었다. 다만,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발의되는 소위 네이밍 법률안만큼은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그러한 법안들을 마주한다면 양질의 심사를 지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에 이 글을 기쁜 마음으로 회고하기를 숙원하며 계묘년의 소원지를 마무리한다.

/김다혜 변호사
법학박사·입법조사관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