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8월 대한변호사협회와 조응천 의원이 '변호사 비밀유지권 입법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 2020년 8월 대한변호사협회와 조응천 의원이 '변호사 비밀유지권 입법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범죄를 돕거나 완성하는 등의 범죄혐의가 있다면, 그 변호사는 압수수색은 물론 엄중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와 별도로 절차에 따라 대한변협에서 중징계도 받게 된다. 그러나 변호사가 의뢰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령에 따라 조력한 것에 불과한 경우라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누구든지 체포, 구속될 경우 헌법에 따라 즉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사를 구할 수 없으면 국가가 마련해주어야 한다(헌법 제12조 제4항).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설명을 듣지 못하면 체포·구속되지 않는다. 이는 진범이라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국가 공권력의 강제력에 대항하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실효적 확보를 위하여 대한민국 헌법이 채택한 지상 명령이다.

요 얼마 전, 대한민국은 과연 헌법이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헌법상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무력화시키는 일이었다. 의뢰인의 범죄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수색하는 일이 수사기관의 영장에 의하여 집행된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해를 제거하기 위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은 있어서도 안 되고, 허용되어서도 안 된다. 헌법이 보장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무너뜨리고, 사법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횡행한다면 어느 국민이 법률적 도움을 받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겠는가.

압수수색으로 인해 법이 변호사에 부여한 비밀유지의무까지 지키지 못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의뢰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신뢰 관계가 우선이다. 압수수색으로 자료를 뺏긴다면, 변호사는 의뢰인의 비밀을 유지해 줄 수 없고, 독립성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변호사가 의뢰인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 법정에서 의뢰인의 편에 서서 당당하게 검사와 다투어야 할 변호사를 수사기관에 종속시킴으로써, 공정해야 할 사법제도의 룰이 형해화되는 것이다. 진실 발견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도, 절차적 정의와 사법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헌법재판소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헌법 제12조 제4항에서 보장되고 적법절차를 이루는 핵심 원리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반하면 증거로 쓸 수 없다고도 했다. 의뢰인이 변호사와 나눈 상담내용과 조언은 비밀로 보장되어야 헌법이 정한 변호사의 조력권이 보장된다. 의뢰인이 압수수색을 두려워하여 변호사에게 진실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변호사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OECD 회원국 36개국 중 34개국이 변호사의 비밀유지권(ACP)을 인정하고 부당한 압수수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디지털 등 과학기술에 기반한 수사기술과 기법을 발전시킬 노력을 배가하여야 하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의무와 책임을 변호사와 의뢰인에게 떠넘겨서는 아니 된다. 거래 기업의 법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자문을 의뢰한 변호사의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여 비즈니스 거래와 관련된 자료와 법률자문 내역이 수사기관의 손에 들어가는 나라에 어느 글로벌 기업이 대규모 자본을 한국에 투자하여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는지 진지하게 짚어 봐야 한다.

국회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실질화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변호인의 비밀유지권을 내용으로 한 변호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는 변호사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권익을 두텁게 보호하고,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려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국부를 창출하는 일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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