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규 전 국제검사협회(IAP) 회장 인터뷰

의정부지청서 미군범죄 전담하며 국제 업무에 눈떠

미국서 '반독점법' 수강... 검찰 내 공정거래법 전문가

2019년 IAP 회장 당선... 국제검사 공조 플랫폼 발족

"변호사로 새출발... 세계평화 이상 실현에 기여할 것"

△황철규 전 국제검사협회 회장이 12일 서초동 변협회관을 찾아 본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황철규 전 국제검사협회 회장이 12일 서초동 변협회관을 찾아 본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국제검사협회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rosecutors, IAP)는 177개국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전세계 35만 명의 검사들이 소속된 유일무이한 국제 검찰 네트워크다. 국제연합(UN) 주도로 각국의 검찰이 협력해 초국가적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1995년 공식 출범했다.

최근 임기를 마친 황철규(사법시험 29회) 전 IAP 회장은 임기 도중 ‘국제 검사 공조 플랫폼(PICP)’를 발족해 초국가적 범죄에 각국 검찰이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마약과 인신매매 등 강력범죄 양상이 점차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범죄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검찰의 역할과 기능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2일 전국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국제형사정의의 실현과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서초동 대한변협회관을 찾은 황 전 회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법조인의 역할에 대해 물어봤다.

문. 검사로서 국제 업무를 많이 다루게 된 계기와, 국제 업무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해 달라.

답. 1997년 6월부터 1년간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그 전후로 총 2년간 의정부지청에서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른 미군 범죄를 전담한 것이 검찰 국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지청장님은 마약수사 등을 통해 국제공조 업무에 능통한 분이었는데, 의정부에서 국내 미군 범죄의 대부분이 발생하고, 많은 미국 법무관들이 근무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기회를 잘 살리라고 조언해 주셨다. 미국 법무관들과 매주 한 차례씩 스터디를 하면서 업무협의는 물론 친분을 돈독하게 쌓을 수 있었다. 이들과 협력하여 미군 범죄 대응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후 틈틈이 국제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최종적으로 전 세계 유일의 검사 간 국제기구인 국제검사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rosecutors, IAP) 회장에 당선되어 최근 3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

법무부 국제형사과장으로 근무하던 200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선거에 최대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예측되던 A씨를 외부와의 접촉 없이 안전하게 미국에서 한국으로 호송해오는 업무를 총괄했었다. 그의 호송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미국 LA 공항은 물론이고 공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모든 비행기에 기자들이 대거 포진해 취재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끝까지 A씨의 신병을 노출시키지 않고 항공편으로 무사히 데려왔다. 이 사건은 당시 큰 화제가 됐는데, 선거 직전의 매우 민감한 시기였음에도 호송 자체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또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장으로 근무하던 2011년, 중국에서 거액을 횡령한 후 한국으로 도주한 중국 국적 범죄인 B씨에 대한 송환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장은 물론 공안부장까지 직접 나서 B씨 송환을 강력히 요청했는데, B씨는 국내에서 유서를 써놓은 채 종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검찰은 국내 모든 법 집행 기관과 긴밀히 협력하여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내연녀 집에 숨어있던 B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건은 이후 한국과 중국의 법 집행 기관들 사이에 보다 견고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문. 독특하게 검찰 내 공정거래법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공정거래법 학위를 취득해 전문가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답. 1997년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떠나기 직전에 부장검사 한 분이 앞으로 공정거래 분야가 유망할 터이니 미국에서 공부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조언에 따라 미국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에서 연수하면서 미국의 반독점법을 수강했다. 귀국 후 공부한 내용을 살리기 위해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했고, 다른 학교의 공정거래 전문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한국 대기업들이 국제 카르텔과 관련한 사건에서 경제 규모에 비해 훨씬 강도 높게 처벌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또 다른 전문분야인 국제형사공조와 연계해 한·미간 국제카르텔 조사에 있어 공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했다.

실무적으로는 2007년 법무부 국제형사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한미 FTA 타결에 따른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미국의 반독점법 위반에 대한 동의명령제도의 국내 도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했었다. 이후 2008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의 전신인 형사6부 부장검사로 일하면서 각종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의 수사 및 기소를 전담했다. 2013년 검사장이 된 후에는 4년 동안 대검찰청 공정거래 전문검사 커뮤니티 좌장을 맡게 돼 검찰 내 공정거래 전문가로 불리게 됐다.

△12일 전국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국제형사정의의 실현과 미래' 세미나에서 황 전 회장이 강연을 하고 있다
△12일 전국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국제형사정의의 실현과 미래' 세미나에서 황 전 회장이 강연을 하고 있다

문. 국제검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 배경과 성과에 대해 말해 달라.

답. 그동안 서구 중심으로 운영돼온 IAP가 다양성(diversity)을 보강하고, 그간 축적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강화하면 국제형사공조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2019년 회장 선거에 도전했다. 당시 다양성 확보에 대한 공감대가 각국 검사들 사이에서 확산됐고, 한국 검찰의 IAP 활동에 대한 기여 및 향후 역할에 대한 기대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당선될 수 있었다.

취임 이후에는 ▲첨단 국제형사공조시스템 구축 ▲전세계 검사 교육훈련 강화 ▲검사 업무수행에 있어 회복적 정의 구현 ▲유엔 회원국 수준으로 회원국 확대 등을 역점 사업으로 설정하고 적극 추진해 성과를 냈다.

'첨단 국제형사공조시스템 구축'과 관련해서는 올해 9월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개최된 제27차 IAP 연례총회 개막식에서 전 세계 검사들 간에 실시간 필요한 정보 등의 교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국제검사공조플랫폼(International Prosecutor’s Cooperation Platform, PICP)'을 출범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또 '글로벌 트레이닝 아카데미(Global Training Academy, GTA)' 프로젝트를 시행해 주요 초국가범죄 분야별로 교육 내용을 체계화하고, 주요국 검찰 교육기관 및 유관 국제기구들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협업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검사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교육 훈련이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아울러 검사의 권한과 책임, 인권 보호와 관련한 교육 내용은 모든 과정에서 필수 과목으로 설정했다. 우리나라 법무연수원도 지난 9월 IAP와 외국 검사에 대한 교육 훈련과 관련해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 'IAP 트레이닝센터'가 조만간 준공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IAP는 탈레반이 정권을 다시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일한 검사들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도 검사들이 위해를 받는 사례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어 진상 규명 및 범죄자 처벌을 촉구해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각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검사들에 대한 구제 및 지원은 그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IAP가 다루는 매우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마지막으로 주요 국제기구 등과 협력 체제를 확대·강화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와 함께 '언론인에 대한 범죄 대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세계 검사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교육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점과, 유럽평의회(COE)와 협력하여 '사이버범죄방지협약 제2차 의정서' 채택과 발효에 기여한 일, 국제형사재판소(ICC)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긴밀한 공동대응 체제를 구축한 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및 세계은행(WB)과 함께 '해외도피 범죄수익 환수에 관한 검사 실무 매뉴얼'을 추진한 일, 그리고 세계변호사협회(IBA)와 수시로 접촉하면서 '부패범죄에 대한 공동 대응방안'을 상의한 일 등을 언급하고 싶다.

문.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 검찰(법조인)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답. 우리나라 법조인들은 국제무대에서 이미 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많은 법조인들이 공공과 민간분야를 넘나들며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의 젊고 유능한 법조인들이 국제무대에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문. 앞으로의 포부와 향후 계획은.

답. 이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검사 시절과는 다른 위치와 시각에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또 그동안 관여해온 국제 업무와 관련된 국내외 기관·기구 인사들과 협력하여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의 이상이 실현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웃음).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