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개최된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 : 대법원)
지난 10월 개최된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 : 대법원)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문서제출명령의 범위를 확대하고 제출명령 불이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가 진행되었다.

열거된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문서 점유자의 일반적 제출의무를 규정하고,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불복수단을 즉시항고에서 이의신청으로 변경해 즉시항고에 의한 집행정지 효력을 없애며 문서제출명령 발부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심리요인을 제거함으로써 문서제출명령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골자다. 또 제출명령을 불이행할 경우에는 문서의 기재에 대한 신청인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증명할 사실에 관한 당사자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게 하고 뒤늦은 문서제출은 각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문서제출명령의 실효성을 높이는 내용이 담겨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수정의견이다. 법원행정처의 수정안은 현대형 소송에서는 문서 외에도 전자적 형태로 저장된 정보(ESI, Electronically Stored Information)와 도면, 영상, 음성 등 다양한 형태의 증거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제출명령의 대상을 문서 이외의 자료로 확대하였다.

또한, 문서 등 자료의 제출의무자에 해당 문서 등 자료에 대한 소유권이나 점유권을 불문하고 관리자, 보관자도 포함시켰다. 그리고 개정안이 열거하고 있는 제출면제사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제출의무를 면제할 것이 아니라, 자료제출로 침해되는 법익이 제출로 인한 법익보다 크다는 비례성 요건을 추가로 충족한 경우에만 제출의무를 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증거개시의 범위를 한층 확대하였다.

법원행정처의 수정안은 나아가 이른바 ‘In Camera’ 절차를 도입하고 비밀유지명령 및 그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규정을 도입함으로써 법원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제출명령을 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기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증거가 법원에 현출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제출명령에 대한 불복수단을 즉시항고에서 이의신청으로 변경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의신청에 관한 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불복할 수 없다는 명시적 규정을 두었다. 자료제출명령에 대한 제재에 있어서도 임의적 제재가 아니라 필요적 제재로 변경함으로써 법원의 소극적 심리요인을 제거하였고, 제재수단 또한 다양화하여 제출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바로 패소판결을 선고할 수 있게 하거나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시키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료제출명령의 실효성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소송이 제기되거나 제기될 것이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향후 소송에서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에 대한 보존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에도 자료제출명령 불이행의 경우와 같은 제재를 가하게 함으로써 증거자료를 폐기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동안 대한변협을 비롯한 변호사업계는 현재의 증거조사방법만으로는 증거가 구조적으로 편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고, 실체적 진실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명책임에만 기대 재판을 하는 것은 국민의 사법불신을 초래하고 실질적으로 공정한 판결에 이르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그리고 그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주창해 왔다.

이에 대법원도 대한변협의 제안으로 2021년 11월부터 법원행정처 내에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연구반을 발족하여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고, 지난 10월 12일 제23차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그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문서제출명령제도의 개선은 물론, 진실의무와 증언녹취제도(deposition)의 도입까지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법원행정처가 법사위에 전달한 이번 수정의견 역시 그동안 추진해 온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연구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법사위의 이번 심사대상이 문서제출명령제도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이었기에 그 범위가 자료제출명령에만 국한돼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공감해 첫발을 내딛게 된 점을 크게 환영하고, 앞으로 진실의무의 도입과 증언녹취제도의 도입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져서 증거를 감추는 자가 이기는 재판이 아니라 진실이 승리하는 재판, 그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재판으로 거듭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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