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다지행 법률사무소 최주희 변호사 인터뷰

유년기 가정형편 어려워... '가출팸'과 어울리기도

23살에 무작정 상경... 3년 반 만에 사법시험 합격

"보호소년 처우 열악... 교화·재사회화 위한 지원을"

"적선지가필유여경... 사회에서 받은 은혜 갚을 것"

△최주희 다지행 법률사무소 변호사 
△최주희 다지행 법률사무소 변호사 

최주희(사법시험 52회·사진) 변호사는 모진 겨울 추위에도 잎을 떨구지 않고 끝끝내 꽃을 피우는 인동초 같은 삶을 살았다. 온화하고 따뜻한 인상 너머 숨길 수 없는 강골(强骨)의 기개가 느껴진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썩 좋지 않았어요. 어머니 혼자 저를 키우셨는데, 아무래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바깥으로 돌아다니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당시에는 비행 청소년으로 불리던 '가출팸(family)'들과 어울리기도 했고요. 무서운 일을 겪을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궂은 환경 속에서도 공부에서는 한 번도 뒤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총명했던 그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성적 만큼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딱 한번,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던 중학교 2학년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저만 바라보셨던 어머니를 실망 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사춘기를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어요.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가 온 것이죠. 비록 큰 사고를 치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성적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나름의 방황을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에 진급하자, 최 변호사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한다. 그 시기 장학금도 받았는데, 액수가 한 달치 월세와 맞먹었다. 도전 정신이 생긴 최 변호사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경북 청도에 있는 기숙학교를 나왔습니다. 해당 지역에 연고가 있던 '귀뚜라미 보일러' 재단에서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꾸준히 장학금을 기탁해 왔어요. 저도 당시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늘 빚진 마음이 있어 보일러 만큼은 꼭 귀뚜라미를 사용합니다(웃음)." 

고교 졸업 후에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지방 사립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성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최 변호사는 수능이 400점 만점이던 2003년도에 385점이라는 고득점을 얻었다. 이 점수면 이른바 '스카이(SKY)'로 불리는 명문대 진학도 너끈히 가능했다.

하지만 딸이 먼 타지로 떠나는 것을 내켜 하지 않은 데다, 하루 빨리 직업적 안정을 얻기 원하던 어머니가 인근 대학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여기서 고집을 부리면 아예 대학 진학 자체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판단에 그는 어머니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슬며시 오기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실력을 입증하면 되지."  

최 변호사는 여러 고민 끝에 사법시험을 치르기로 마음먹고 23살에 무작정 상경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던 대도시 서울의 매력에 빠져 놀기만 했다.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에는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러다 24살부터 구의동 인근 독서실에서 테이프 강의를 들으며 고시 공부에 몰두했고, 1차 시험을 38등으로 통과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2010년 마침내 제5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 시절에는 법률 이전의 사회적 합의 과정이 궁금해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에 편입하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되도록 빨리 개업하기 원했다. "모든 전문직의 숙명은 개업"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보다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연고지 대구로 내려와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고용변호사와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 등을 거쳐 2019년 8월 지금의 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명칭은 다지행(多知行). 10살 무렵 법륜스님이 손수 지어준 법명으로 "많은 지혜를 실천한다"는 뜻이다. 

"변호사로서의 업의 본질은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늘 최선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의뢰인이 처한 상황을 지혜롭게 살피고, 타당한 솔루션을 제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변호사의 의무입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변호사는 마지막 희망이자 보루이니까요." 

타고난 성실성과 끈기, 그리고 남다른 안목으로 최 변호사는 지역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사무소는 매년 확장됐고, "보통내기가 아니다"라는 입소문이 퍼져 의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나날이 삶이 안정돼 갔지만, 최 변호사는 어둡고 힘들었던 과거를 잊지 않았다. 당장은 어렵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제2, 제3의 '최주희'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검찰 시보를 할 때 포천의 한 위탁 보호시설을 방문했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터무니 없이 좁은 공간에 7~8명의 보호 대상자를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임산부도 있었는데, 이러한 환경에 방치되면 과연 교정의 효과가 나올까 싶을 정도였어요. 저 또한 힘겹게 공부하며 성장을 해왔던 터라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크게 소년보호시설 또는 소년의료보호시설에 위탁하는 위탁처분(1호, 6호, 7호)과 수강명령(2호), 사회봉사명령(3호), 보호관찰(4호, 5호), 소년원 송치(8호, 9호, 10호)로 구분된다. 소년원은 소년교도소와 완전히 다른데, 소년원은 마음대로 퇴소할 수 없는 일종의 기숙학교 형태로 운영된다. 반면 미성년자 신분으로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징역형을  선고 받으면 가는 곳이 소년교도소다. 

하지만 보호처분 대상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다. 오히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고, 청소년 범죄에 강력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엄벌주의가 대중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엄벌주의가 능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살면서 사고 한번 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요. 미숙했던 시절 단 한번의 실수로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걸 방관하거나 지켜보는 게 합리적인 처사일까요.  형사정책 차원에서 잠재력이 무궁한 청소년들을 제대로 교화해서 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소년 범죄가 오롯이 청소년 자신의 과오에서 전적으로 기인하는 것으로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최 변호사는 특히 제대로 된 보호시설을 확보하고, 처우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8139원으로 책정된 소년원 일일 급식비는 비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아이들은 혼자서 개인 생활을 하는 데 더 익숙합니다. 그런데 한 방에 8명씩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마찰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호 소년들의 재기를 돕고자 한다면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집'같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식비입니다. 일일 식비가 8139원이라면, 한 끼에 고작  2700원 꼴이라는 셈입니다. 2700원으로 영양가 있는 식사를 마련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성장·발달기에 제대로 된 식사조차 공급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교화를 돕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부와 언론이 이주 외국인 인권에 기울이는 관심의 10분의 1 만큼이라도 이들에게 기울인다면 결코 이러한 일은 발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가정법원 판사로 봉직하며 청소년 선도 활동에 기여해 온 천종호(사시 36회) 부장판사가 설립한 '만사소년'의 활동에 주목하며 최근 후원을 하고 있다. 만사소년은 위기 청소년의 재사회화를 돕는 청소년회복센터를 지원하는 사단법인이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다. 매년 여유가 될 때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기부 활동을 늘려온 최 변호사는 한 번도 꺾이지 않고 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 장학재단을 설립해 자신이 받은 만큼 사회에 되돌려주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저 또한 사회에서 받은 은혜가 큽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변호사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만큼, 또는 저보다 더 많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이 땅에서 수없이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나의 어려움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 큰 의지가 됩니다.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천종호 부장판사의 '만사소년' 후원 문의 (051-923-1019, 국민은행 '사단법인 만사소년' 122101-04-196707)  

/왕성민 편집위원,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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