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법무법인등과 동일 또는 유사명칭 불가

변협 등록 법무법인 1933곳… 우리말·한자 등 다양

"철학 담으면서 기억하기 쉽게"… 대표들의 애환

△ 다양한 법무법인 등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로이어스타워의 모습
△ 합동법률사무소 은하수(11층) 등 다양한 법무법인 등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로이어스타워의 모습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시인의 '꽃')."

이름은 정체성을 표상한다. 법무법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변호사들이 사무소를 낼 때 명칭 때문에 고민을 거듭한다. 의뢰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서도 쉽게 기억될 수 있는 이름을 짓기 위해서다.

변호사는 단독으로 법률사무소를 개설하거나 다른 변호사 등과 함께 법무법인·법무법인(유한)·법무조합·공동법률사무소·합작법무법인 등을 설립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법무법인은 1983년 5월 11일 법무부 인가를 받은 '법무법인 대양종합'이다. 대표는 지난해 작고한 고(故) 김춘봉(군법 2기) 변호사가 맡았으며, 구성원은 7명이었다. 대양종합은 2003년 해산했다. 

변호사 수가 늘면서 법무법인 숫자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등록 법무법인은 1395곳, 법무법인(유한)은 74곳, 공증인가합동법률사무소는 38곳, 공동법률사무소는 426곳으로, 도합 1933곳이다(11월 30일 기준). 올해 새로 개설된 로펌만 176곳(해산 3곳 포함)에 달한다.

이름을 정할 때 기존 법무법인과 같거나 유사한 명칭은 피해야 한다. 2017년 대한변협은 "동일 또는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는 법무법인 등이 늘어날 경우 법률소비자에게 혼란을 초래한다"며 법무법인 작명에 관한 제한 기준을 마련했다. 변협 회칙 제39조, 제40조, 제40조의2는 로펌 형태와 관계 없이 '이미 법무부 인가를 받은 법무법인 등과 이름이 같거나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법원은 "(법무법인 명칭에 관한) 변호사법 관련 규정들은 법무법인을 구성하는 구성원의 수, 구성원의 경력 등을 제한함으로써 조직적·전문적인 법률 조력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라며 "기존 법률사무소 또는 법무법인 명칭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거나 명칭으로 말미암은 영업상 이익을 법률상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2019구합76207).  

이어 "변호사법에서 법률사무소의 기존 명칭을 보호하거나 동일·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는 신규 법무법인의 설립인가 처분으로 인해 입게 되는 영업상 손실 등의 불이익은 간접적·사실적 이해관계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법무법인 명칭에 대한 법률상의 이익을 부정했다. 

변호사들은 법무법인 이름을 짓는 기준으로 "의뢰인이 기억하기 쉬우면서도 철학이 담긴 이름"을 꼽는다. 

가장 보편적인 법무법인 명칭은 2~3글자로 된 한자 이름이다. 공간(空間), 창조(創造), 인의(仁義), 천명(天命)과 같이 직관적으로 내포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설립자의 주관적 경험과 고유한 내러티브를 갖춘 이름도 있다.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사법시험 25회) 대표변호사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김규동 시인께서 1930년대 할아버지 김하윤 선생이 함경북도 종성에서 운영하시던 '세창의원' 이름을 물려받을 것을 권유하셨다"며 "'세상을 번창하게 한다'는 뜻의 세창(世昌)이 마음에 들어 1992년 세창 법률사무소를 개업했고, 1999년 법무법인으로 형태를 바꿀 때도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했다.

△ 법무법인 라움 간판
△ 법무법인 라움 간판

최근에는 아웃바운드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외국어로 된 로펌 명칭을 선호하는 추세다. 법무법인 굿플랜(good plan), 머스트노우(must know), 에이케이(AK), 씨케이(C.K.), 심플(simple), 랜드마크(landmark)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무법인 라움'의 부종식(사시 47회) 대표변호사는 "마치 아이 이름을 짓는 것처럼 한참 고민하다가 소속 변호사들에게 공모해서 만장일치로 나온 '라움(RAUM)'을 택했다"며 "독일어로 공간(room)이라는 뜻인데 부동산을 전문으로 하면서도 한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면서 일하자는 취지에 모두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해마루' 등 순수 우리말로 된 법무법인 명칭도 늘고 있다. 가나다, 이룸, 기쁨, 하늘누리, 벗, 뜻, 동그라미, 해미르, 사랑, 좋은생각, 좋은사람 등의 이름은 순우리말로 되어 있어 아기자기하면서도 높은 대중적 소구력을 갖는다.

연고에 따라 특정 지역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법무법인도 있다. '대구, 서면, 광명, 경북, 범어, 신촌, 부산, 일산, 대구, 광주로펌, 남산' 등이 그 예다. 대부분 해당 지역에 존재하는데, 인터넷에서 '지역명'과 '법무법인'을 동시에 검색했을 때 상단에 노출되는 이점이 있다.

'은하수 합동법률사무소'의 김도완(변호사시험 3회) 대표변호사는 "아무리 이름이 좋아도 의뢰인들이 기억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도산사건을 주로 처리하다보니 숨막히는 채무로 힘들어하는 의뢰인들을 생각하며 사무소 명칭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은하수를 보면서 희망을 갖는 것처럼 저희 사무실과 함께 희망을 갖고 사건을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이름을 '은하수'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형상화 한 로고와 법률사무소 명칭을 표시한 '법률사무소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간판
△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형상화 한 로고와 법률사무소 명칭을 표시한 '법률사무소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간판

'법률사무소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최원규(변시 3회) 대표변호사는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이름을 지으려고 보니 이미 다른 사무실들이 짧고 명료한 이름을 선점하고 있었다"며 "우리의 정체성을 드려내면서도 듣는 사람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냇가에 나무를 심었을 때 나무를 물과 너무 가까이 심으면 뿌리가 썩고, 너무 떨어져 있으면 메마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언제나 흐르는 물로부터 수분을 공급받고 가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며 "우리의 힘이 스스로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을 늘 기억하면서 변호사 역할을 통해 공의(公義)와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겠다는 소망을 담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국 변호사 이름이 포함된 법무법인 명칭 때문에 논란을 겪었던 사례도 있다. 

국제중재 전문가인 김갑유(사시 26회) 변호사는 지난 2019년 태평양을 나와 법무법인 피터앤김(PETER&KIM)을 설립했다. 피터는 유럽에서 국제 중재인으로 활약 중인 '볼프강 피터' 변호사의 이름을 따왔다.    

외국변호사 성(性)이 포함된 법무법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변호사법 제23조 제2항의 '국제변호사를 표방하거나 그 밖에 법적 근거가 없는 자격이나 명칭을 표방하는 내용의 광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됐으나, 변협은 2020년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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