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특허심판의 임의적 전치주의 채택과 특허 권리범위 확인심판 폐지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지난 9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특허심판의 임의적 전치주의 채택과 특허 권리범위 확인심판 폐지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변리사가 출원한 특허의 무효심판 인용률이 무려 42%(2020년 기준)에 이르는 등 변리사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선 특허 등 소송 영역에서 변리사에게 무작정 소송대리권을 주자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나와 있다. 헌법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 제도를 두고 있다. 분쟁에 대한 소송대리는 원칙적으로 변호사의 대리권을 인정하는 민사소송법이 기본법이고, 특허법도 민사소송법을 준용하고 있다. 그런데 뜬금없이 변리사법을 개정하여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안겨준다면, 소송절차의 기본법인 민사소송법의 변호사소송대리 대원칙을 무너뜨리고 분쟁 절차에 관한 체계를 망가뜨리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그것뿐인가. 특허심판 제도를 보자. 특허심판을 거치지 않고는 법원에 분쟁을 제기할 수 없다. 특허심판원의 무효심판을 반드시 거치게 하는 강제적 심판 전치제도 때문이다. 침해소송과 중복되는 권리범위 확인심판제도까지 채택·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중소 벤처 기업이 창의적인 기술로 취득한 특허권을 행사하려고 하면 변리사를 통하여 특허무효 심판, 소극적 권리범위 확인심판을 따로따로 제기한다. 누가 피해를 보는가. 중소 벤처 기업은 특허 심판 단계에서 복잡한 다수의 분쟁 절차로 인해 소송비용과 인력, 시간을 이중으로 낭비하고 있다. 특허분쟁은 법원에서 단일한 특허침해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해외에서도 찾기 힘든 강제적 심판 전치주의와 권리범위 확인심판이라는 두 가지 제도를 두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겉으론 국민을 위한다지만 속으론 변리사를 위한 제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원칙으로 돌아가자. 법원의 특허침해 소송 절차에서 특허침해 및 특허권의 유무효 판단을 한번에 모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특허 등 침해소송은 기술에 관한 것이긴 하나 일반 민사소송의 종합적 법률 지식이 요구되는 사법영역이다. 보전을 위한 가처분에는 집행법적 전문성이 필요하고 손해배상청구는 형사소송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전 단계로 강제적 심판 전치 제도는 법원의 소송과 중복되고 권리범위 확인심판 제도는 시간과 비용만 가중시키는 불필요한 제도이다. 결국 중소 벤처 기업의 비용 부담만 늘리고 영세기업의 재판받을 권리가 훼손되고 만다. 신속한 재판을 통해 국민을 구제하려는 헌법에 반하는 것은 물론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한 취지와 목적을 되새겨야 한다. 기술 과학, 의학 등 이공계 출신 로스쿨 입학생 수가 최근 13년간 총 2920명에 이른다. 법률과 기술지식을 융복합한 전문가들이 변호사로 쏟아지고 있다. 물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보호를 위하여 엄격한 로스쿨 교육과 변호사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변호사가 되어 소송대리를 할 수 있다. 그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변리사가 소송대리를 하겠다는 것은 건축사가 건설소송을, 의사가 의료소송을 대리하겠다는 것보다 더 못한 논리로 소송절차 원칙의 근간을 뒤흔드는 역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나서 변리사의 밥그릇 챙기기를 옹호하는 모습에 모두 분개하고 있다. 중소 벤처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특허심판 강제 전치주의와 권리범위 확인 심판제도를 폐지하는 등 특허심판 절차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소송대리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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