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 변호사
이문원 변호사

필자가 대학생일 때 기자로 활동했던 학보사는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이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었다. 시대의 부조리에 눈감지 않고 예리한 비판의식을 이어가겠다는 대학생다운 패기가 담긴 표현이었다.

하지만 학업과 기자 활동을 병행하며 밤샘 작업을 이어가던 학생 기자들은 “잠들지 못하는 시대정신” “이제는 그만 잠들고 싶은 시대정신”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자주 했다. 밤새 글을 짜내느라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다크서클과 봉두난발을 훈장처럼 생각하던 낭만적인 시절, 바이라인(By Line)의 이름 석 자는 기나긴 퇴고를 거쳐 좋은 글을 완성하였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10년이 지나 로펌에서 어쏘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필자의 생활은 놀랍게도 달라진 것이 없다. 밤늦도록 준비서면, 검토의견서와 씨름하다가 초췌한 얼굴로 다시 출근해서는, 마찬가지로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 동료와 자조적으로 웃는 것이 일상이다. 수면부족의 고통을 잘 알면서도 만성적 격무에 시달리는 변호사 업계에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것을 보면 필자에게 남모르는 피학적 성향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좋은 글은 밤샘작업에서 나온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오히려 수면부족은 업무의 질에 악영향을 끼친다. 연구에 의하면 열흘 동안 수면 시간을 30% 줄이면, 잠을 원상으로 회복한지 1주일이 지나도 뇌의 주의력과 인지처리 능력이 다 회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면부족 상태에서는 반응시간과 정확도는 물론 집중력도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밤에 취해 완성한 글이 다음 날 아침에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 완벽한 결과물을 위하여 자신을 몰아세우려는 충동도 이해할만 하지만, 오히려 변호사가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의뢰인을 위해서도 좋다.

불가피한 격무는 타인의 법률적 어려움을 대리하는 변호사의 숙명이다. 대부분의 로펌에서 재량근로제가 도입되어 있으므로 가혹하게도 수면시간을 챙길 책임도 규범적으로는 어쏘 자신에게 있다. 그러니 더 적확한 표현이 떠오를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밤이라도 때가 되면 자야 한다. 잠들지 않고서는 법률주장도 시대정신도 제대로 밝힐 수 없다.

/이문원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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