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변호사
김예지 변호사

천재의 서사는 항상 인간을 매혹시킨다. 특히 한 분야에 있어서의 송곳과도 같은 천재성을 가진 이에 대한 이야기는 늘 인기 있는 주제이다. 대표적인 천재 이야기로는 타이거 우즈가 있다. 타이거 우즈는 7개월 때 처음 골프채 스윙을 시작했고 그리고 3살에 샌드트랩을 빠져나오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혁신과 IT 기업들의 영향력 대두와 함께 수학, 공학 및 코딩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에서의 천재 이야기가 각광을 받는 듯하다. 특히 소수의 젊은 천재가 이끄는 혁신적인 IT 조직, 애자일한 조직이 단기간에 성장한 스토리는 국가를 불문하고 화제가 된다.

그에 비해 ‘법 천재’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재미도 덜하다. 아무래도 법의 특성상 그 역량은 미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보다는 현실의 여러 문제와 그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내 변호사의 경우에는 더더욱 ‘법 천재’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다. 조직은 가볍고 빨라지며,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욱 어려워지고, 새로운 사업 모델의 탄생이 빈번한데 그에 대한 법적 규제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 사내 변호사는 천재는 커녕 더욱 뒤처지는 듯한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사업은 스마트하고 미래를 향해 신속하게 진화하는데, 변호사는 여전히 과거의 판례들과 손에 쥐이는 법전을 뒤적여야 하는 괴리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지난주 파산한 세계 제2위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CEO는 20대 천재라고 불리던 샘 뱅크먼 프리드(Sam Bankman-Freid, 일명 SBC)이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상자산거래소가 예상치 못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면서 전 세계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SBC는 FTX를 설립해 세계 4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면서 20대 대표적인 천재 경영자이자, ‘영 앤 리치’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추앙받아 왔다.

파산 후에 지적된 근본 문제들 중 상당 부분은 해당 조직이 ‘고루하고’ ‘지루한’ 기존 절차들과 의사결정 과정들을 많은 부분 생략하고, 무시하고 건너뛰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적확하게 적용되는 법률이 없다 할지라도, 조직이 기존에 통용되는 법적 상식이나 관례를 무시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천재가 이끄는 회사에서도 사내변호사들의 역할은 천재와는 그 방향이 달라야 할 것이 명백하다.

여러 연구자들은 이미 천재에 대한 과도한 추앙이 ‘천재 컬트’라고 불릴 만큼 허상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결국 조직이든 사업이든 세상이든 모두가 빠른 속도로 질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 송곳처럼 파고드는 사람이 있다면 전체적인 그림을 느린 속도로 보아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육상 천재 사이에서 나는 평균대를 조심스럽게 걷는 역할임을 잘 인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김예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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