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디스커버리 연구반' 활동 김원근 변호사 인터뷰

"증거 편재로 인한 불만 해소에 도움… 美 항소비율 10% 미만"

"증거 교환은 당사자끼리, 판사는 감독만… 업무량 대폭 감소"

"법조전문화에 디스커버리는 필수… 로스쿨 도입취지 살려야"

"재판 효율성 증가 예상… 증거법·변호사보수제도 개정 필요"

김원근 변호사가 1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디스커버리제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원근 변호사가 1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디스커버리제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재판 양 당사자가 소송 전 증거를 모두 공개한 뒤 재판을 시작하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의 국내 도입이 본격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15년간 직접 리걸 프랙티스(legal practice)를 수행해온 김원근(사법시험 30회) 변호사가 "디스커버리 제도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지난달 12일 회의를 열고, 지난해 발족한 디스커버리 연구반(팀장 박진수 부장판사)의 연구 결과에 따라 제도 도입 안건을 통과시켰다. 연구반은 디스커버리 제도가 증거의 편재 현상을 해소하고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는 동시에 변론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

디스커버리 연구반에 참여했던 김 변호사는 1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디스커버리 제도는 변호사들이 중심이 되는 증거조사시스템"이라며 "이 제도의 이론 뿐 아니라 실무적 부분을 법조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처음 법정실무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우리나라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증거조사 방법인 디스커버리 제도"라며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로스쿨에서 교육하고 재판 실무에도 적용한다면 국내 법률가들의 해외 무대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변호사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법률실무를 익힌 후, 미국으로 건너가 2007년부터 미국 버지니아·메릴랜드·워싱턴D.C. 변호사로서 직접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대한변협에서 디스커버리 관련 입법안 작성 업무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김원근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디스커버리 제도의 기본 취지는 무엇인가.

‘진실 발견’이다. 우리나라의 종래 재판 제도나 법 원칙은 입증책임 뒤에 증거를 숨겨놓고 있다. "증거를 주면 (내 의뢰인에게) 불리하니까 증거를 줄 수 없다"고 하면 누구도 증거를 달라고 강제할 수 없다. 그래서 증거의 편재(偏在)가 있고, 그런 상황에서 재판을 받으면 불만이 생긴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제도를 시행하면 증거 공개를 거부할 수 없어, 불만이 해소된다.

디스커버리와 관련된 미국 소송 절차를 설명해달라.

미국 소송은 증거조사(discovery)와 집중심리에 의한 최종재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증거는 당사자간에 자율적으로 주고 받는다. 증거조사를 제대로 끝내면 변론을 여러 번 열 필요가 없다. 증거조사가 끝나면 바로 집중심리방식의 최종 재판을 진행한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진행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절차다.

디스커버리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과 조기종결되는 사건 비율을 알려달라.

증거조사는 전체 소송절차의 절반 정도 기간을 차지한다. 조기종결 비율은 50% 이상이다. 사실관계가 모두 나오니 최종재판을 하지 않고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 외 증인신문'으로 상대방 당사자와 증인들을 다 불러서 진실을 확인하고 문서도 받아본다. 그래서 1심이 끝나면 법률 이슈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판을 더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래서 미국의 항소 비율은 10% 미만이다.

디스커버리 제도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가 있는가.

제소 전 증거조사는 '중대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한다. 제소 이후 소장심사도 엄격하다. 우리나라에 '소장 각하'는 있지만, 담보를 하지 않는 등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만 각하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소장에 나와있는 주장만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심사해서 소장을 기각시키기도 한다. 20% 정도는 소장 단계에서 기각된다고 보면 된다. 불필요한 증거조사를 막아야 하는 큰 회사 입장에서는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또 소권을 남용하면 '법정모독'으로 엄벌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분별한 소 제기, 고소고발을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디스커버리 제도 운용에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전자문서를 기준으로 하면 어떤지 확인해달라.

법정에 가는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진실 발견을 할 수 있다. 또한 효율적인 재판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효용을 생각한다면 비용 면에서도 더 절감된다. 문서제출 관련해서도 평소 시스템이 잘 돼있으면 증거 정리와 전달에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

증거조사에 소요되는 변호사 비용 관련해서는 증거조사를 생략 혹은 간단하게 하고 곧장 최종재판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정외 증인신문에서 속기록 작성 등 관련 비용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속기록을 법원에 조서로 제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메모나 녹음파일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자 정보는 양이 방대해서 추리는 과정에 많은 비용과 노력이 소요되는 것은 맞다. 따라서 이전에는 관련성만 있으면 무제한으로 증거조사를 인정해줬으나, 2006년 법 개정에 따라 증거의 가치와 증거를 내주기 위한 비용을 비교하는 비례성 원칙을 도입했다.

사회적 약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할 때 디스커버리 제도 때문에 부담이 있진 않은지.

변호사 비용부담에 관한 기본구조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나 근로자들이 기업이나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을 할 때 승소비율이 아니라 변호사가 투입한 노력을 기준으로 변호사 비용을 계산하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현행제도를 고쳐서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이 패소하면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법정 외 증인신문에 대해 설명해달라.

법정 외 증인신문은 하루 7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가능하다. 법정 외 증인신문은 다른 증거조사 방법보다 제한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장 요긴하게 활용된다. 비단 관련성이 없어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할 만한 자료는 모두 질문할 수 있다. 변호사가 법정 외 증인신문을 많이 활용해서 증거를 찾아내야만 디스커버리 제도가 잘 정착될 수 있다. 법정 외 증인신문을 활용되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을 하는 사례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전자문서의 제출이나 송부촉탁은 어떻게 운영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당사자끼리 교환하고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문서만 추려서 법원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서량이 방대해서 일일이 법원에 제출하게 되면 법원이 관리를 하기 힘들고, 중요한 자료가 새어나갈 염려도 있어서 증거조사 단계에서는 당사자들끼리 문서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기밀 위험이 있는 문서라면 '보호 신청'을 해서 해당 문서를 제외하고 자료를 송부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보호되는 문서의 범위와 관련해서는 자율적으로 합의서를 만들고 한정된 범위에서만 자료를 제출하게 하면 된다.

▶검찰 등 수사기관 관련해서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가.

수사기관에는 '객관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조사과정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 피고인에게 유죄를 받기 위한 기관이 아니고 공익을 위한 진실 발견을 하는 곳이고, 그게 정의라고 생각한다.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고소인이나 고발인에게 불리한 증거도 피의자, 피고인과 공유해야 한다. 수사하는 사람이 예단과 편견을 갖고 증거를 숨기거나 조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진실 발견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객관의무를 '헌법상 의무'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활성화 되면 불필요한 형사 고소·고발도 많이 사라질 것이다. 사기, 횡령, 배임 등은 변호사 당사자들이 증거조사를 통하여 진실을 찾아내서 법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경찰은 흉악범죄에만 집중해야 한다.

로스쿨 시대에 디스커버리 제도의 의미는.

로스쿨은 국제화·전문화를 위한 제도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 시스템은 달라진 게 없다. 영어 잘하는 로스쿨 학생이 많지만 시스템이 옛날 그대로면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법원에서 운영해야 로스쿨에서도 학생들에게 관련 교육을 시킨다. 우리나라 사법제도를 국제화, 선진화 시스템으로 개선하고 운영하는 게 국제화·전문화에 아주 중요하다.

증거를 숨기면 어떻게 찾아낼 수 있나.

상대방 당사자는 물론이고 기업의 경우 실무직원과 전자문서 전담직원을 상대로 '법정외 증인신문'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숨겨놓은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어디선가 숨겨놓은 증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에서는 만약 증거를 숨긴 사실이 밝혀지면 변호사 비용과 숨겨진 정보를 찾아내는 데 드는 기술자 비용까지 다 물어줘야 한다. 전자문서의 경우 찾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니 더 강력한 징계 사례가 많다.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시 법관 업무 부담은 어떻게 되나.

법관이 감독 관리 역할을 하게 되므로 업무량이 줄어든다. 현재 우리나라는 법관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전담해서 사건을 주도하고, 변호사들은 판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디스커버리 제도에서는 당사자들이 증거조사를 자율적으로 하고 과정에서 이슈가 있을 경우에만 판사가 판단하게 되므로 판사의 업무량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변호사 역할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변호사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증거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의뢰인을 위한 효과적 변론을 하는 소송 주체가 될 것이다. 법조 유사직역에 법정대리권을 줄 수도 없고, 달라고도 못하게 될 것이다. 법정 외 증인신문이나 증거제출명령 등 증거조사과정은 굉장히 높은 난이도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호사 간에도 역량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서 법조 전문화가 자동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사내변호사 역할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업에서 평소 자료 정리를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소송을 대비해서 영업비밀 보호와 '변호사·의뢰인 비닉특권'을 중심으로 기업 정보와 문서를 사전에 리뷰하는 등 역할을 하게 된다.

합의부(증권, 환경, 제조물책임)에 한정해서 디스커버리 제도를 적용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액사건을 제외하고 모두 디스커버리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원 부담이 줄어 모든 사건이 빨리 처리되면서도 실체적 진실 발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증거조사제도 도입관련해서 우리나라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법정외 증인신문에서 작성되는 속기록은 법원에 조서로 제출되는 것이 아니다. 필요시에만 당사자들이 만들어 보관하면 된다. 증거조사에서 증인신문이나 당사자 신문을 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절차를 집중심리방식에 의한 최종재판에서 다시 할 수 있다. 실체적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 혹은 탄핵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의 차이만 있다.

최종재판에서는 모든 내용이 녹음되기 때문에 공개되지만 증거조사과정의 자료들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또 문서제출명령도 당사자 간에 주고 받은 자료 중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자료들만 추려서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시 함께 도입해야 할 제도나 절차를 말해달라.

실체법적으로는 증거법을 제정하고, 소송비용 부담 및 변호사 보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증거법은 디스커버리 제도의 가장 큰 축이다. 미국에서는 어떤 문서는 얼마 동안 보관해야 하고, 이런 사건에서는 이런 증거를 상대에게 줘야 한다는 등 내용까지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구체적인 증거법제도가 없다. 그래서 증거능력인정이나 증명력 문제에서 판사 재량이 너무 많다. 변호사·의뢰인 간 비닉특권과 영업비밀보호 등도 다 증거법에 포함해야 한다. 특히 전자적 방법으로 보관된 문서와 정보의 경우 원본의 개념이 종이문서와 다르고 위조나 변조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증거법이 필요하다.

변호사 보수제도는 사회적 약자가 변호사를 선임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약자가 패소하면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다만 변호사가 사건에 투입한 노력을 합리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승소가액이나 승소비율에 따라서 변호사비용을 정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절차법적으로는 주기적으로 여는 변론을 없애고, 증거조사 절차와 집중심리 두 절차를 기본으로 재판제도를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증거신청권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맡겨야 한다. 상대방에게 증거 신청을 바로 하면 되는데 판사 승인을 얻어야 하는 현재 재판제도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돼 효율적이지 않다. 판사의 판단이 필요할 경우 당사자들 간에 의견을 주고 받다가 변론을 열어 문제된 이슈와 관련증거를 한꺼번에 제출하고 심리해서 판단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현재 재판방식은 증거수시제출을 근간으로 변론을 여러 번 열고 있다 무의미한 변론을 여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시간지연 문제가 심각하다. 증거조사 제도하에서는 모든 증거가 한 번에 제출될 수 있으므로 재판부도 집중심리를 할 수 있어서 신속하고 효과적인 재판제도의 운영이 가능하다.

 

/ 정리=임혜령 기자 

<김원근 변호사 프로필>

●1963년 출생 ●단국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30회 합격 ●사법연수원 제22기 수료 ●대한민국 변호사(1998~2003년) ●미국 버지니아 변호사시험 합격 및 자격 취득(2006) ●미국 메릴랜드 주 변호사 시험 합격 및 자격 취득(2014) ●미국 워싱턴 디시 어메리칸대학 법과대학 상사중재 2개월 과정 수료(2014) ●미국 워싱턴 D.C. 변호사 자격 취득(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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