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현 변호사
손영현 변호사

지난 10월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최기상 의원이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2022. 9. 5.자 22진정0224200결정, 이하 ‘이 사건 결정’)을 제시하며 발달장애인에 대하여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에서 정한 권리보장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1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건 결정 사실을 언론에 알려, 보도된 바도 있다(국가인권위원회 2022. 11. 3.자 보도자료 “발달장애인의 형사 절차상 권리 보호를 위한 수사준칙 마련 등 권고”). 해당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은 필자가 진정한 사건으로서 심한 지적장애(구(舊) 지적장애 3급)로 등록된 피고인이 경찰에서 지적장애로 병역이 면제되었다고 진술하였음에도 발달장애인법을 적용하지 않고 비장애인으로 치부하여 조사가 이루어진 뒤, 기소되었던 사건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의 차별행위를 인정하고 발달장애인 사건 조사 준칙을 마련하고 구성원들에게 교육을 강화할 것 등을 권고한 결정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피고인이 경찰에게 지적장애인이라고 밝혔음에도, 해당 지적장애가 발달장애인법 제2조 정의 규정에 따라 발달장애인에 해당하여, 발달장애인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경찰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였고, 피고인이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지적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음에도, 피고인이 장애인등록증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법정 조력사항에 대해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와 같이 외견상 드러나지 않는 장애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유심히 관찰하여 식별해주지 않으면 그 인권이 제대로 수호되기 어려워, 당사자가 자신의 장애를 알리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해주면 좋겠지만, 이 사건처럼 보호자가 없는 발달장애에 대해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례로, 2007년 허브라는 영화에서 강혜정 배우가 정신지체장애인을 연기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지적장애인등록증을 보이게 되는데, 그 등록증에 대해 “이것을 보여주면 다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서 좋다. 엄마가 꼭 가지고 다니라고 했다”는 말을 하고, 이에 남자주인공이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인식하거나 그에 필요한 행정적인 절차를 이해하고 스스로 행하기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러한 장애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장애인 스스로 장애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발달장애인법을 준수하지 않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이 사건 피고인처럼 지적장애인으로 등록까지 되어 있는 경우에는 경찰이 피고인 주소 관할 동 주민센터에 수사 협조만 얻어 보아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음에도, 이를 해태한 것이어서 더더욱 발달장애인법을 준수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스러웠다.

발달장애인법은 제12조에서 수사기관이 소속 구성원들에게 발달장애인 인식확산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하고, 발달장애인을 조사함에 있어서 피해자인지 피고인인지를 불문하고, 신뢰관계인이 동석하게 해주어야 하고, 특별한 신뢰관계인이 없다면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직원을 동석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동법 제13조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수사할 수 있는 전담 검사 및 사법경찰관이 발달장애인을 조사하게 하고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권리 보장의 시초가 될 수 있는 권리 안내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제6항에서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 규정이 준수되지 않고 작성된 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따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작성된 것’이 아니므로, 증거 동의여부와 무관하게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인다.

이렇게 엄격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권리보호의무가 규정된 법이라도 수사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으면, 그저 글자에 불과하다. 발달장애인법은 2014년 제정되어 2015년부터 시행되었다.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된 2014년에는 2007년 발생한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에서 지적장애인인 피의자를 피고인으로 재판하여 유죄를 선고하였다가, 2013년경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된 이듬해였다. 이러한 사정들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발달장애인법이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고인에 대해서까지 그 의무를 규정한 것은 수사기관이 실체적 진실발견보다 사건의 조기 종결이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고자 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와 같은 입법 취지와 같이 법이 집행되고 있을까? 필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준비하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내용과 장혜영 의원실의 협조로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발달장애인 전담 검사의 수는 2019년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만 2명이었지만, 2022년 1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반면, 우리나라 등록 발달장애인의 수는 2021년 25.5만 명으로 2018년에 비해 약 2만 명이 증가하였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보건복지부 2022년 9월 6일 발표한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참조). 발달장애인의 초동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도, 서울경찰청이 소속 1급지 경찰서에 발달장애인 전담 수사관을 1~2명 이상 지정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필요 인원수를 제대로 산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동작경찰서의 전담 수사관이 4명에 불과한 것을 비롯하여, 실제 발달장애인을 수사하는 일선 경찰서의 전담 수사관도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전담 사법경찰관에 대한 교육도 2021년 1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사이버 강의 형태로 1시간 16분 진행된 것이 전부였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이 사건 결정을 통해 수사에서 발달장애인법이 더더욱 ‘진짜’법이 되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손영현 변호사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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