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현 변호사
한주현 변호사

지난 10월 29일 토요일, 서울 한복판에서 말 그대로 ‘걸어가던’ 사람 150여 명이 죽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대형참사 앞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비난의 주 내용은 피해자들이 ‘유래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외국 문화인 핼러윈을 방탕하게 즐기느라 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피해자 비난의 이유가 재난이 정치문제화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악성 댓글들을 들여다보면 비난의 이유는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악성 댓글의 이면에는 묘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는 절대 저런 재난의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입니다. 악성 댓글은 피해자들을 비상식적이고 시민의식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합니다. 피해자가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불운을 맞닥뜨리게 되었다는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피해자들과는 달리 상식적이고 시민의식이 잘 함양되어 있으므로 나에게는 저런 불운이 닥칠 리가 없어’라는 자기 최면을 겁니다. 참담한 대형참사 앞에서 저절로 생기게 마련인 두려움을 그런 자기 최면으로 애써 걷어내 보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기 최면으로는 재난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을 방탕하게 놀다가 사고당한 사람들로 상정하며 방탕하지 않은 자신에게는 저런 사고가 발생할 리 없다고 읊조려본들 재난을 피할 확률은 낮아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재난은 일상을 영위하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현듯 닥쳐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때도, 세월호 침몰 때도, 이번 이태원 압사 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을 더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들과 나를 애써 구분한다 한들 나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미 울리히 벡 등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했듯 현대사회의 위험은 개개인이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국민안전에 대한 ‘무한책임’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우리 정부에, 사회에, 공동체에 안전을 요구하는 것이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한주현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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